15. 보물과 진주와 그물의 비유 (마태 13, 44-54)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비슷하다. 어떤 사람이 그 보물을 발견하자,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또 하늘 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비슷하다.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또 하늘 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비슷하다. 그물이 가득 차자 사람들이 그것을 물가로 끌어올려 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모으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천사들이 나가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 내어,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
[해설] 이 비유들은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활동과 현존의 발견이며 행복에 대한 것들이다. 하느님 나라를 발견하면 다른 보물은 하찮아 보이며 그 어떠한 것도 필요하지 않음을 알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가치의 초점 맞추기이다.
예수께서는 다른 비유에서도 이 초점 맞추기를 같은 시각으로 말씀하시는데, 그것은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현존을 발견함으로써 주어지는 선물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 현존을 깨닫고 따르지 않으면 효력은 발생하지 않는다. 행복의 열쇠는 확실하게 성장으로 나아가는 것이며, 인간의 기능과 잠재력을 변형시켜 모든 활동을 통합하고 관장하는 하느님의 현존이다. 참된 자기는 우리 안에서 특이한 독창성을 통해 작용하는 신적 현존이다. 지향이란 우리 안에 있는 보물에게로, 우리 안의 하느님의 현존과 활동을 감지하는 깨달음인 값비싼 진주에게로 향하는 방향설정이다.
지금까지의 비유에서 사람들은 조금씩 보물을 캐거나 진주를 사거나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가 발견한 가치를 아는 까닭에 완전하게 한 번에 투신했다. 이렇게 하느님 나라는 발견하고 선택하고 추구하기만 하면 우리의 온갖 행위의 원천이자 하느님의 씨앗이 성장할 수 있는 비옥한 대지가 된다. 지향성은 우리 안에 내재하는 신적 에너지와 같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 기도에서 그리스도를 향해 투신하고 진주를 사고 하느님 나라를 캐내는 원초적인 의향에 몰두하기만 하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현존과 활동에 동의하기만 하면, 하느님께서 지향하는 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뜻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에페 1,5) 라는 사도 바오로의 말처럼 하느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이러한 의향은 우리의 명민함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하느님 나라로 부르고 계시는 하느님의 지향을 따르는 순종이다. 이렇게 우리가 하느님의 지향에 초점을 제대로 맞추고 따르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선행과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주도자가 아니라 동의하기만 하면 받는, 우리에게 위임된 신적 생명의 수령인일 뿐이다.
이제 우리는 바다에 그물을 던져 온갖 종류의 물고기를 잡아 올리는 비유에 이르렀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물이 가득 찰 때까지 어부는 그물을 끌어 올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하느님 나라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계시이다. 하느님나라는 포장지에 각자의 이름을 적어 배달되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 나라는 진화하고, 인간조건은 물고기와 바다에 버려진 온갖 쓰레기로 가득 찬 그물과 같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어두운 밤에 쓰레기를 처분하시듯 좋은 것은 그릇에 골라 담고 나머지는 내버리신다. 각 개인의 역사와 성장 단계에서 가치있는 것은 간직하고 쓸모없는 것들은 내버리신다. 이러한 분리작업은 성령께서 우리의 무의식을 정화하는 성령사업이 일정한 궤도에 도달했을 때, 결정적으로 추수할 때가 되었을 때 비로소 시행된다. 우리가 무엇을 하건 그것이 사랑이라는 지향에서 나오지 않으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