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일 권 제 팔 장
나는 유년기로부터 걸어오면서 소년기로 (역주:저자와 옛 사람들은 사람의 한평생을 일곱 때로 나누었으니 날 때부터 7세까지가 유년기, 7세에서 14세까지가 소년기, 이때부터 28세가 청년기, 50세까지가 성년기, 60세까지가 장년기, 80세까지가 노년기, 죽을 때까지가 퇴령기로, 서반아 세빌랴의 교부 이시도로가 중세 유럽에 이를 널리 쓰이게 하였음.) 접어든 게 아니오니까. 그보다는 이것이 내게 와서 유년기에 이어졌다는 것이 옳겠습니다. 그것은 물러가지 않았습니다. 갔다면 간 곳이 어디이겠습니까. 그렇지만 이미 그것은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미 나는 말할 줄 모르는 갓난이가 아니라, 말하는 어린이었으니까요.
나는 이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말을 배웠는지는 다음에 안 일이옵니다. 그건 얼마 뒤 글을 배울 대처럼 일정한 교육법의 순서를 밟아서 어른들이 내게 말을 가르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 하느님이여, 당신이 내게 주신 정신을 가지고 내 스스로 한 것이었습니다. 마음속 뜻을 나타내려 끙얼거리고, 갖가지 소리를 내며 별의별 짓을 다 해보는 때였습니다. (철나기 시작하는 어린이의 이성이 모방과 독창으로 활동을 하는 모습. ‘하르막’마저 이 깊은 심리 통찰에 놀라 저자의 정신의 독창력과 위대성을 높이 평가한다.) 생각을 다 표현할 수도, 맘먹는 사람에게 모조리 표현할 수도 없을 때이었습니다.
그들이 어느 물건의 이름을 부를라치면 나는 그것을 생각하여 기억하고, 그들이 말소리를 내며 무엇을 보고 몸짓을 하면 그것이 곧 가리키는 말소리인 줄 즉각 알아차리었나이다.
그들의 의사를 몸짓에서 판단할 수 있었던 것은 이것이 모든 민족의 공통된 언어로서 안색과 눈짓과 다른 지체들의 동작이, 그리고 목소리는 무엇을 청하거나 가지거나 버리고 피하는, 맘속의 감정을 표시해주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같이 여러 마디의 말들을 제자리에다 맞추는 것과 거듭거듭 귀동냥 하는 데서 차츰 그 뜻을 알게 되어, 음성기호에 익은 입을 가지고 나도 내 의사를 그것으로 표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리하여 내 주변에 있는 이들과 의사 소통의 표시를 교환했삽고, 이로부터 부모의 권위와 어른들의 가르침에 매여 있으면서 나는 인생의 풍랑 거친 사회로 깊숙이 들어가게 된 것이었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