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 해설] 10.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냐

2005. 7. 25. 오전 7:5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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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냐 (마태 12, 46-50)

 

예수님께서 아직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분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그분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있었다.  그래서 어떤 이가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분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당신께 이야기한 사람에게, 누가 내 어머니이며 누가 내 형제들이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나서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또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이다.

 

[해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충격을 주기 위해 당신 어머니의 역할까지도 제한된 의미밖에 지니지 못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 계신다. 우리 역시 그것이 어떤 것이든 거기에 집착하지 않으려는 흔연한 자세를 가질 때 비로소 소명에 몰입할 수 있다. 이 말은 우리의 역할에 따른 의무를 무시해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독차지하겠다는 태도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역할이나 생활방식의 강요가 아니라 역할에 대한 강박적인 태도를 버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태도는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데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었다. 예언자로서의 그의 역할은 메시아를 지목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는 예수께 제자들을 보내  당신이 메시아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물었을까? 이 거룩한 사람도 상대방을 엉뚱하게 잘못 짚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예수께서는 요한이 메시아에 대해 가지고 있던 선입견에 부합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요한은 금욕주의자였지만 예수는 아니었다. 요한의 제자들은 율법을 지켰으나 예수의 제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실제로 예수께서는 랍비의 관습 가운데 많은 것을 무시했다. 그분은 성서를 거의 언급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저쪽 사람들은 성서를 자기의 가르침의 토대로 삼았다. 랍비들은 공개적으로 여자를 거론하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여자들과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누었고 친하게 지내셨다. 이렇게 모범벅인 역할을 고집하는 사랍들은 규칙을 지키고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는 데 주의를 기울였으며, 사람보다 법을 우선시했다. 어쩌면 요한은 자신은 금욕주의적 이상에 너무 매달린 나머지 나자렛 예수가 정말 메시아일까? 하는 의문을 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자기 사명의 신빙성에 대한 이 고뇌 어린 의구심을, 금욕주의자로서의 자기 역할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그의 집착을 치유하는 방편으로 이용하셨다. 사실 이러한 집착은 하느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며, 순수한 신앙의 하느님은 당신이 누구이신가를 떠올리는 우리의 생각을 끊임없이 차단하신다. 예수께서는 요한의 제자들이 던진 질문에 너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 내가 바로 메시아이다. 라고 하심으로써, 그 옛날 이사야가 메시아께서 행하리라고 예언한 그런 종류의 기적을 행하시어, 말보다는 행동으로 요한을 안심시켰다.

 

예수께서는 당신 제자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이냐?하고 물으셨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은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들임을 알게 해주셨다. 그리고 영적 여정은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벗어던지는 것이므로, 우리의 역할을 잃어 버렸다고 해서 자신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단지 그렇게 생각할 뿐이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이때조차도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어 당신을 내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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