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잔잔해진 풍랑 (마태 8, 23-27)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제자들도 그분을 따랐다. 그 때 호수에 큰 풍랑이 일어 배가 파도에 뒤덮이게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다가가 예수님을 깨우며, “주님, 살려 주십시오.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하였다. 그러자 그분은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하고 말씀하셨다. 그런 다음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그 사람들은 놀라워하며 말하였다. “이분이 어떤 분이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해설] 이 사건은 우리가 영적 여정에서 시련과 난관에 부딪혔을 때 겪는 개별적인 체험을 반영하고 있다. 우리는 이따금 광풍에 휘말린 채 가라앉는 뱃전에서 물을 퍼내는 데 기도시간을 허비해 버리기도 하고 또 때로는 공포에 사로잡힌 나머지 성스러운 낱말을 머리에 떠올리지 못할 때도 있다. 왜냐하면 생각이 바람과 파도에 묻혀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도와 주소서!” 하고 소리친다. 이 짧지만 더없이 적절하고 효과적인 기도야말로 지금까지 나온 기도 가운데서 가장 훌륭한 기도라고 할 수 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했듯이 도움을 청하는 우리의 절박한 부르짖음에 응답하신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마치 따뜻한 품에 안기듯이 감미로운 평화가 찾아올 때면 우리는 비로소 하느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현존을 의심했던 것을 부끄러워한다. 그것은 마치 예수께서 혼란속에 있는 우리에게 “평화를 너희에게 주노라.” 하시거나 폭풍을 향해 “잠잠해져라.” 하시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잠잠해져라.” 하시면 모든 것이 잠잠해지듯이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곧바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운 이유는 무엇인가? 과연 그들은 예수님을 깨울 필요가 있었던 것일까? 그렇다! 예수께서 곧바로 “왜 그렇게들 겁이 많으냐?” 하시는 것을 보면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도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을 때나, 관상기도를 속에서도 이러한 질문을 받는다. 그리고 혼란기를 거쳐 두려움에 휩싸여 예수님을 깨우고 그분이 주시는 놀라운 평온을 체험하고 나서는 기운을 되찾는다. 만약 예수님을 깨우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래도 보호를 받았을까? 그렇다! 이 복음이야기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도 바로 예수께서 온갖 폭풍 속에 현존하시므로 두려워 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예수께서는 또다시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물으신다.
우리가 그분을 깨우는 이유는 그분의 현존을 믿지 않고, 은밀하게 도와주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치유해 주시기를 기대하는 마당에 그분의 치유가 의식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를 치유해 주시지 않는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때때로 하느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는 것은 우리의 신앙을 한 차원 높이기 위해서이다. 다시 말해 배에 들어온 물을 예수께서 퍼내 주시기를 바라는 제자들처럼, 우리가 바라는 대로 하느님께서 응답하신다면 우리는 보다 깊은 차원에서 그분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게 될 것이다. 하느님의 도우심은 우리가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건, 또는 아무리 폭풍우가 몰아친다 해도 결코 외면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하느님께서 폭풍 속에 현존하시며 우리를 보호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고 따를 때 우리는 많은 것을 누리게 된다.
때때로 하느님이 부재중이라고 느낄 때도 있지만 그분은 어디에도 가시지 않는다. 다만, 하느님은 선잠을 주무시고 계심에도 잠에 곯아떨어진 것처럼, 그래서 우리를 근심걱정 속에 방치하고 계시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주무시는 목적은 당신이 결코 우리 곁을 떠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늘 도와주고 계신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시는 데 있다. 바로 이것이 순수한 사랑이다. 이같은 신념, 즉 우리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생각하건 예수님께서는 작은 배에 함께 타고 계시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음으로써 우리는 느긋하게 모든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있는 것이다.
“왜 그렇게들 겁이 많으냐?” 예수의 이 물음은 배에 타고있던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던져지는 물음이기도 하다. 예수께서는 “도대체 동기가 무엇이냐?”고 사건을 통해, 또 기도시간을 통해 끊임없이 우리에게 묻고 계신다. 만일 우리가 감추어진 동기를 확인할 수 있다면 바로 그것이 우리의 두려움이라는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무의식 속의 가치체계를 변화시킬 수만 있다면 우리는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