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 해설] 1.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2005. 7. 14. 오후 1:22:19

글자

(다음은 박영식, 손용환, 정태현, 토마스 키팅 신부님들의 저서들을 요약 정리

 

한 것입니다. 잘 묵상하시면 저 멀리 밝은 등대가 켜져있을 것입니다. 성서

 

구절은 새번역 성서에서 가져왔습니다. 편저자는 어느 수사님입니다.

 

달님반 자매님 형제님들에게 하느님의 은총이 가득하기를 빕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마태 1, 18-19)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폭로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해설] 아브라함이 상속받을 가능성을 포기함으로써 신앙을 가진 모든 사람들의 조상이 되었던 것처럼, 요셉도 마리아와의 결혼계획을 포기하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마리아의 남편이 되었다. 이것은 마리아를 잃었다가 다시 찾았다는 이야기다. 이는 성전에서 예수를 잃었다가 다시 찾은 일에 필적한다. 요셉은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 살기로 작정하고 있었으나, 마리아의 불가사의한 임신으로 계획이 깨어지자 그는 자신의 일생을 위해 세워둔 장래를 포기해야 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후에 요셉은 예수를 잃었다가 성전에서 되찾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의 신비에 보다 깊이 참여하는 행위에 해당한다. 태초부터 세말까지 하느님을 찾는 진실한 탐구자라면 누구나 내적인 죽음과 부활이라는 이 신비로운 과정을 수없이 반복해 살아야 하리라.

 

요셉이 지녔던 마리아에 대한 사랑과 마리아와 함께 삶을 살아가고자 했던 꿈이야말로 하느님으로부터 선사받은 두 가지 크나큰 신앙으로, 겉보기에는 하느님께서 배려하신 상황 때문에 둘 다 잃어버린다. 이것은 그가 하느님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위해 포기해야 했던 두 개의 눈이었다. 그는 이상 그 자체가 되기 위해 자기 개인의 이상을 포기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표이자 조건이 되고 있기도 하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위대한 이상을 주셨다. 여기서 우리란 위대한 이상인 목적에 스스로를 투신하는 남녀들을 말한다. 이상은 평범한 삶에 방향을 설정해주고 목적을 준다. 사람은 사막이나 초원 또는 바다이들은 영적인 글에서 일상생활을 상징하는 표상들이다를 지날 때 영적 기쁨을 주는 오아시스나 항구 등 다양한 안식처를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은 사람을 꾀어내는 엄청난 유혹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자신의 고생스런 여정이 드디어 끝나고 힘들기 그지 없었던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얻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안식처는 서둘러 떠나지 않으면 독약처럼 해로운 자리가 되고 만다. 영적 위안은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을 때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서둘러야 하는가? 완전한 포기야말로 이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뛰어넘어 현실을 포용하는 유일한 길이다. 바꾸어 말해서 이상향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으로 이상향에 도달해야 하는가에 대한 자신의 생각들을 모조리 떨쳐버릴 필요가 있다. 아브라함은 일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하느님으로부터 이런 말씀을 들었다.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거라. 그곳, 내가 너에게 일러주는 산에서 그를 나에게 번제물로 바쳐라 (창세 22,2). 이 말을 달리 표현하면 이렇게 된다. 너의 위대한 이상, 네 영적 여정의 궁극 목표와 어떻게 해서 거기에 도달할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내가 일러주는 장소로 가거라. 그리고 거기에서 그것을 내게 희생제물로 바쳐라.   이상향에 도달하고자 하는 몸부림은 그보다 못한 것에 만족하지 않는 한 실망을 안겨주는 것은 물론 심하면 깊은 절망에 빠뜨리기도 한다. 그것은 죽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나의 세계는 반드시 깨져야 한다! 그리고 그와 함께 나 자신도 깨져야 한다! 나의 소명 개념, 나의 영적여정 개념, 나의 교회 개념, 나의 예수 그리스도 개념, 심지어는 나의 하느님 개념까지도 깨져야 한다. 예수께서 손수 걸머지셨던 인간상황이라는 난제는 단순히 우리의 죄악들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사악한 조건우리에게 이상을 체험하기보다 그저 이상에 관해 심사숙고하게 만드는 모든 것이다.

 

댓글 2

  • 2005년 7월 14일 오후 3:49

    저~~총무님, 우리 신약입문 새로 시작하는 거야요??? 열심히 해야지!!!

  • 2005년 7월 14일 오후 5:12

    네, 내적인 죽음과 부활의 수없는 반복, 그와 함께 나 자신 깨부수기 이 여름 땀 푹푹 흘리며 노력해 보겠습니다..주님께 간구하며..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