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나병환자를 고치신 예수 (마태 8, 1-4)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자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다. 그 때에 나병 환자 한 사람이 다가와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를 만지시며,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바로 그의 나병이 깨끗이 나았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해설]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나병환자를 만지자 그의 병은 곧바로 나았다. 가시적으로 보면 예수께서는 루가복음에 기록된 대로 나병환자를 치유하셨다. 하지만 성서의 의미는 이 가시적인 것을 뛰어넘어, 인격 치유에 목표를 두는 하느님의 능력이라는, 비가시적인 실재에까지 확대된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의 기적이 단지 육신의 치유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적 감각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죄의 뿌리에서 떨어져 나가는 내적 치유와 해방에는 세 단계가 있는데, 교회 교부들은 이를 영적 감각이라 불렀다. 영적 후각이 첫 번째 은총이요, 영적 촉각의 한결 심오한 은총이 그 두 번째요, 그리고 영적 미각이 가장 큰 것이 세 번째 은총이다. 이와같은 영적체험은 저마다 하느님의 현존에 끌리는 매력, 하느님의 현존에 다가가는 접근, 하느님의 현존을 누리는 통교를 표상한다.
영적 후각은 기도와 고독과 침묵에 끌리는—사랑에 찬 집중력으로 고요히 머물러 하느님을 기다리는—내적 견인력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견인력은 그리스도께서 오랜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때라도 우리를 그분께로 이끌어간다. 즉 하느님의 현존이 우리 내면에서 감미로운 향기처럼 피어올라 우리를 매료시키듯이 하느님께로 향하는 내적 견인력을 체험한다는 뜻이다.
영적 촉각은 하느님께 내적인 껴안김을 체험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성령께서 우리의 영 한 가운데에다 진한 입맞춤을 하고 우리네 영의 입에 해당하는 의지에다 생명의 숨결을 불어 넣으시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존재가 하느님을 하나의 견인력으로 뿐만 아니라 눈앞의 현존으로서 체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심오한 통교가 미각의 유추작용을 통해 표출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시편 작가는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보고 맛들여라.” (시편 33, 9)는 말로 우리에게 이 은총에 마음을 열도록 촉구하고 있는데, 그것은 다른 인격체와 가까워지거나 어루만지는 손길을 받는다거나, 그분의 내밀한 존재 속으로 파고드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그리고 이처럼 내밀한 차원에서 체험할 수 있는 상대는 바로 우리 안에 거처하시는 하느님 뿐이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