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 해설] 16. 예언자는 고향에서 존경을 받지 못한다.

2005. 7. 31. 오후 12:56:02

글자

16. 예언자는 고향에서 존경을 받지 못한다. (마태 13, 53-58)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들을 다 말씀하시고 나서 그 곳을 떠나셨다.

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시어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그러자 그들은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지?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모두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이 모든 것을 얻었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그 곳에서는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않으셨다.

 

[해설] 이 대목은 예수께서 당신의 고향에서 받으신 푸대접을 묘사하고 있다. 그분의 친척과 친지들은 그분을 이해하지 못했다. 여기 이 사람은 그들과 같은 동네에서 자라난 사람이요, 그들과 함께 회당에 다녔던 사람이며, 목수로서 생계를 꾸려가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놀라운 일을 행하는 사람으로 변해서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비유들을 이야기 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가 아는 사람이 별안간 유명인사가 되면 으례히 거북한 기분이 들기 마련이다. 바오로 사도가 당시에 알려진 세계를 두루 다니며 하느님 나라를 전하고서 얻은 것은 무엇인가? 조난사고와 투옥, 돌팔매질, 배척, 박해, 거짓형제들의 배신 등등이다. 우리의 하느님은 예측이 불가능한 분이다. 이 비유가 지적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실제로 이 비유는 우리 어린 시절부터 지니고 자라온 기대, 사회의 관습은 물론 우리의 종교집단마저도 부추기고 있는 기대와는, 다른 일련의 기대에 부합하도록 우리의 마음을 조율하도록 애쓰고 있다. 하느님 나라는 예수께서 당신 집안 사람들에게 당하셨고, 바오로가 자신의 약점 속에서 체험했던 그런 종류의 반대와 배척, 실망, 재난 속에서 활발하게 작동한다. 하느님 나라는 평범한 생활의 기복 속에, 해묵은 약점들이 반복해서 드러나지만 이들을 극복하지 못하는 나날의 일과 속에 현존한다. 하느님 나라의 존재는 하느님이 우리를 돕고 계신다는 아무런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도 꾸준히 나아가고, 꾸준히 사랑하고, 꾸준히 희망하려는 우리의 노력 속에서 드러난다. 하느님은 우리의 궁지, 혼란, 갈등, 실패와 행동을 같이 하신다. 하느님은, 평생토록 하느님을 섬기고 나서 되돌아보니 하느님을 섬겼다는 흔적이 아무것도 남지 않은 듯이 보이는 서글픈 회상 속에 자리하신다.

 

예수께서도 이와 똑같은 상황을 체험하셨다. 깊은 믿음의 자세는 우리 눈에 보이거나 피부로 느껴지는 하느님의 활동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며, 일상생활 사건들 속에서 미약한 신호로 나타나는 하느님의 메시지도 능히 감지한다. 만일 우리가 나날의 생활 속에서 하느님 사랑의 신비와 온전히 결합되고자 한다면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한량 없어야 한다. 우리가 하느님께서 인간의 판단이라는 편협한 울타리에 순응해 주시기를 바라면서 미리부터 품고 있던 선입견과 미리 포장해 놓은 가치체계에서 일단 벗어나기만 한다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바오로는 말한다. 나는 그리스도의 권능이 내게 머무르도록 하려고 더없이 기쁜 마음으로 나의 약점을 자량하려고 한다. 하느님의 권능은 우리가 하느님의 활동에 대한 우리의 편협한 생각들에서 벗어나 그분의 나라가 우리 안에서 펼쳐지도록 만드는 정도에 따라 그만큼 커지게 되어 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