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일 권 제 구 장
하느님 내 천주시여,
내가 어렸을 때 불행하고 딱한 일들을 얼마나 치러야 되었었습니까. 올바른 생활이랍시고 철없는 것에게 제시된 것은 사회에서 출세를 하고, 그러려면 인간의 명예와 헛된 부귀에 종 노릇 하는 웅변학이 뛰어난만큼 이의 스승을 붓좇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문학을 배우러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으나, 그것이 무슨 소용이 닿는 것인지 철부지가 알 수 없었습니다. (역주: 여기, 아구스틴은 문학 내지 학문 무용론을 말함이 아니다. 다만 어린이의 머리에 가혹한 부담을 주고, 귀한 시간을 낭비하던 교육방법을 비난함인 것이다. 저자는 그의 작품들에서 진정한 학문을 강조하고, 공부에 열중하기를 권장한다.) 그리고 학습이 굼뜨게 되면 매를 때리는 것이었느데 어른들은 이것을 잘하는 일로 여기었고, 우리 이전에 살던 허다한 사람들이 어려운 길을 걸어갔던 것처럼 우리도 아담의 후예에게 물려진 수고와 고통을 겪으며 그 길을 가야만 했었습니다.
그즈음 주여, 우리는 당신께 기도하는 사람들(역주: 그의 선생들이 누구들이었는지는 이름을 대지 않으므로 알 수 없다.)을 만나게 되었고, 그들한테서 배워서 제법 당신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비록 우리 감관에 나타나지는 않으실지라도 당신은 위대하신 그 누구,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도와주실 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어린 대로 내 보호, 안식처이신 당신께 기도하기 시작하였고, 당신을 부름으로써 내 혀의 매듭을 풀고, 그리고 작은 애가 작지 않은 정으로 당신께 빌면서 학교에서 매맞지 말게 해줍소사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를 가르치시려고 들어주지 않으실 적에 어른들은 웃었고, 어떠한 불행도 자식이 당하는 것을 원치 않는 내 부모까지 그러하였습니다. 그때의 내게 있어선 그것이 여간 큰 불행, 그리고 뼈아픈 일이 아니었습니다.
주여, 혹시 어느 늠름한 마음이 대단한 애정을 당신께 품고 — 혹시라고 아룁기는, 우둔하여 그럴 수도 있삽기 말씀입니다 — 그렇게도 대단한 애정을 품고 있다 하여 온 세상 사람들이 벌벌 떨며 모면하려 애쓰는 그 형틀이나 쇠갈쿠리나 가지가지 이런 따위의 형벌을 가벼이 여기고, 마치 우리 부모네가 그 자식들이 선생한테 매맞는 것을 웃어 넘기듯 이를 지독하게 무서워하는 자들을 비웃을 수가 있겠습니까?
정말 우리의 공포도 이에 못지 않았고, 이에 못지 않게 그것을 모면하고자 빌었었습니다만 (역주:“글은 피라야 들어간다”는 로마의 속담이 있듯이, 매질, 채질, 곤장질로 교육을 시키던 풍습은 호라씨우스, 오뷔디우스 같은 문인들의 글에서 엿볼 수 있고, 아직도 나뽈리의 박물관에는 어린이를 공중에 매달고 몽둥이 세례를 주는 벽화가 남아 있음.) 우리가 요구당하는 것보다 글쓰기, 읽기, 익히기에 모자랐으므로 죄를 범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주여, 당신이 그만한 나이에 넉넉토록 주신 우리의 재주나 기억력이 아주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노는 것에 정신이 팔린 때문이었고, 그 때문에 무섭게 구는 어른들한테서 톡톡히 벌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놀음놀이도 어른이 하면 일이라 부르고, 아이들이 하면 그 어른들의 책벌을 받고, 그래도 아이들에겐 그 누구에게나 동정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사리를 잘 판단하는 사람이면 내가 어려서 공치기 놀음을 하고, 그 놀음 때문에 학습 진도에 방해가 된다 하여 매질을 찬성하지는 아니할 것입니다. 어른으로서 하면 더 잘못 노는 것이니까요. 사실 나를 매질하던 그 사람 역시 별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교사끼리 하찮은 논쟁을 하다가 (역주: 한가로운 라틴 사람들은 말재롱으로 세월을 보냈었고, 말주변 따라 이름이 높아지고, 재산도 붙는 것이었다.) 지면, 공치기를 하다가 동무한테 졌을 때의 나보다도 훨씬 더 푸르락붉으락하며 질투를 이겨내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