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거울을 들여다 보면 젊은 제 모습은 없어지고,
거울 속에 엄마가 들앉아 계신다고 한다 .
그래서 나이 들어가며 자주 거울을 보게된다고 ,
다른 사람은 안그런데 그러니까 다른 사람은 돌아가시면 세월 속에 삭아
잊혀지는데 엄마는 매일 부활하시고 뜨겁고 간절한 목소리로 많은 말씀을 하신다.
그러기에 나는 비로소 엄마한테서 부활 체험을 하게된다.
엄마는 도라지 꽃을 좋아하시는데,
산소에 도라지 꽃을 한포기 심어드리고 싶었다.
빛나게 살지도 못하면서 사는게 그리도 바빠 고향 선산에 묻힌 엄마 한번 뵈러 가는게
쉽지 않았다 시부모님은 일년에 두번은 가게되었지만,
어느해 여름 작정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바람이 부는 들판을 걸어 저수지와
대밭과 작은 절을 지나 산소에 당도하니
산소 둘레에 야생 도라지 꽃이 여럿 피어있었다.
종처럼 생긴 보라색 도라지 꽃속으로 여름 산 개미가 부지런히 드나들고 있었다.
개미에게 엄마 안부를 물어보니 걱정 말라며 그냥 하던일을 계속하고 있다.
고마웠지요 그 도라지 꽃이
엄마와 나를 위하여 지가 절로 나서 피고 지는것이,
나는 그때부터 엄마 산소를 명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한동안 내가 허공을 딛고 있는것 같았다.
미안해서 정말 엄마한테 미안해서 나 어떻게 사나
살아 있어 우울한 행복이라더니,
나 골치 아파서 나 가슴아파서 어떻게 살까
엄마한테 못한것만 생각나고 잘한것은 도무지 생각이 나야지
오일 장이 서는날
우리한테 풀빵 한봉지를 안기기 위해 점심을 굶고 머리에 짐을 이고
자갈길 40리를 걸었죠
저는 어릴적에 그렇게 생긴 풀빵인줄 몰랐습니다.
엄마의 생명을 간식으로 먹었습니다.
참 철대가리가 없었죠
엄하시기만 하고 인정머리가 없는 아버지 밑에서 우리 칠남매 끌어안고
맨날 칼바람 부는 겨울 들녁이였죠
엄마 장례식날 나는 엄마 처럼 안산다고 소리치며 울었습니다.
그런데요 자꾸 조금씩 엄마처럼 살고 있더라구요
엄마는 보리밥만 먹이다가 시집을 보내 미안하다고 했어요
엄마는 바보같이 왜그런것이 미안할까 했는데 제가 자식을 키워보니
어릴적에 어디 구경 못보내고 못입히고 한것 보다 먹고 싶어서 껄떡 거릴때
입에 맞는 무엇을 못먹인게 젤 마음이 아픕디다 만은 ,
엄마 보리밥을 먹인것은 미안한것이 아니예요 속옷을 사면 새것일때 저를 입히고
그다음엔 동생을 받아 입히고 구멍이 많이 나고 늘어진 속옷을 몇겹을 덧데어
기워 엄마가 입었습니다.
제가 미안한것은요 엄마는 원래 그런것만 입는 사람인줄 알았습니다.
아 가제 손수건과 박하 사탕도 생각납니다 .
할머니가 외출하실때 노자돈과 같이 챙겨서 할머니 가방속에 넣어드렸습니다.
우리는 그걸 하나 얻어 먹고 싶어서 르완다 난민처럼 그렇게 손을 흔들고 엄마를
잡아 끌며 난리 버거지를 쳐도 사탕 하나 안주셨고 할머니가 뒤뜰 툇마루에서
엄마 몰래 주셨습니다 .
엄마, 세월이 한참 지났지요
제가 요새 가방에 사탕을 넣고 다닙니다 .피곤하거나 기침 날때 입안에서 녹일려고요
연필을 깍지 끼워서 쓰게하고 헌옷을 받아 입히고 보리밥을 먹이고
2십리 둑길을 걸어서 학교엘 다니게 하신것은 잘하신 일입니다.
그걸 바탕으로 오늘 이만큼이라도 바로 설수 있습니다.
엄마 고마워요 !
2십리 둑길을 걸어면서 어린것이 사색을 많이 했습니다.
그길은 차를 타고 달리기엔 아깝고 미안합니다.
친구들과 엄마 이야기가 나오면 ,
너희 어머니도 돌아가시면 그때 다시 얘기하자고 합니다.
얘기가 안되는 부분이 있어요
엄마 걱정 놓으십시요 새해에는 좀 긴장하고 살겠습니다.
엄마 맘에 들도록
(2005. 12. 30 02:52: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