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예수님!
어제 고해성사를 보고 나니 몸도 마음고 가볍고 날아갈것 같습니다.
오늘은 일찍 눈도 떠지고 주님께서 저의 발걸음을 수요일 열린미사에 초대해주셨습니다. 주님께 감사.^^
성남에서 일찌감치 명동을 향한 버스에 올라타고 즐거운 마음으로 학교로 향해 갔습니다.
한데 이상한 일은 똑같은 버스를 타도 출근길엔 웬지 마음이 무겁기만 하였는데 오늘은 출근길과
똑같은 버스를 탔는데 왜이리 마음이 즐겁고 성가로 콧노래까지 나오는걸까요? 
이른 새벽미사 그것도 명동 복음화 학교에서 하는 열린미사에 오늘 초대되신분은 28명이었습니다.
다른 선배님 말씀에 의하면 그동안 25명도 채 않되었다고 하셨는데 미사 참례자가 점점 늘어가는 모습에
우리모두 주님께 감사를 드릴수 있었습니다.
오늘 미사중에 들은 강론 내용을 잠시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유다의 이야기는 베드로와 견주어 굉장히 즐겨 묵상하게 됩니다.
이것은 내 안에 일어나는 신앙의 갈등과 충돌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베드로와 유다는 둘다 예수님을 배반합니다.
유다의 배신은 한 인간적으로 보면 멋있게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중 한사람이었습니다. 또 가난한 사람을 도왔
던 예수님을 존경하며 따라다녔던 제자중의 한사람이기도 했습니다.
베드로의 배신은 끊임없이 무너지면서도 늘 예수님에게 시선을 놓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는 너무나 자기 생각에만 집착을 하였고 자기의 왜곡에 갇혀 있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자기안에 고립되고 내적 호흡이 이루어지지 않는 모습을 엿볼수 있습니다.
유다는 혁명가이었고 예수님을 통한 해방을 꿈꾸었습니다. 그러나 왜? 예수님은 내 계획대로 가질 않는지? 오
히려 의문을 갖습니다.
예수님이 아무런 말없이 사형장으로 끌려 가는 모습을 보면서 끝까지 스승을 배반하게된 자신을 반성하며 결국
엔 자살을 하게 됩니다.
주님과의 영적 호흡을 하지 못한 유다,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산 유다에게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겠다
고 말씀을 하시게 됩니다.
우리가 태어났을때 하느님과의 내적 통교를 하지 않으면 그분과의 관계속에 놓여 있지 않으면 성찬의 식탁에
앉아있어도 "그런 네 말이다.(자기 고립된 메아리 일뿐)" 라는 말을 들을수 밖에 없습니다.
나의 지향이 나의 자신에게로 넘어가는 유혹앞에서 다시 일어날수 있는 것은 오직 주님을 향하는 믿음을 통하
여 이루어질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