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상
2006/10/27
히브리어로 된 알렐루야는 '야훼를 찬미하라' 혹은 '하느님을 찬미하라'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알렐루야 노래는 복음에 대한 환호송이다. 다시 말해 복음 환호송은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영접하는 노래이다. 환호하며 그 분을 반기는 표현은 말로써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반드시 노래로 하는 것이 좋겠다. 우리들이 알렐루야를 노래할 적에 어떤 빠르기와 느낌을 가지고 노래하여야 하는가 생각해보자. 즐거운 일이 있고 기쁠 때 우리는 말씨가 빨라지고 소리가 높아지는 것을 느낀다. 하느님의 말씀을 영접하는 기쁨과 말씀에 대한 사랑이 알렐루야 노래를 통하여 강하게 느낄 수 있어야 하겠다. 그래서 알렐루야를 부를때는 가능한 빠른 속도로 불러야 하겠다. 처음에 ‘알렐루야’를 부르고 다음에 쉬듯이 하면은 노래가 늘여지게 된다. 가능한 3번의 알렐루야를 한 숨에 부르도록 해야 할 것이다.. 어떤 알렐루야를 노래하든지 생기 있고 빠르게 노래하는 것이 좋겠다.
선창자나 성가대의 발성이 나빠 가사를 알아듣지 못하게 노래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적당하시 않은 곳에서 숨을 쉬거나 말을 끊는 것도 상당히 문제다. 먼저 한국말이 되도록 불러야 하겠다. 독창자나 성가대가 노래할 때, 평상시 우리가 말을 할 때와 같이 끊을 곳에서 끊어야 하겠지만, 너무 짧게 마구 끊어서 하면은 안되겠다. 어느 부분에서 숨을 쉴것인가를 미리 정한 다음 노래하면 좋겠다. 물론 신자들이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똑똑하게 발음하여야 하겠다. 화답송이나 알렐루야에서의 독창자는 그리 소리가 크지 않더라도 소리가 곱고 정확하게 부를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성악가가 마치 오페라의 '아리아'를 부르듯이 노래하는 것은 미사 전례에는 맞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성가 못 부르는 성가대일수록 신앙심을 강조한다. 신앙심은 모든 신자가 지녀야 할 기본적인 것이기에 성가대원이 자랑할 것은 못 된다. 신앙심 위에 음악적인 기술이 함께 할 때 그 성가대는 제 구실을 하는 것이다.
알렐루야 노래는 복음에 대한 환호송이다. 다시 말해 복음 환호송은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영접하는 노래이다. 환호하며 그 분을 반기는 표현은 말로써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반드시 노래로 하는 것이 좋겠다. 우리들이 알렐루야를 노래할 적에 어떤 빠르기와 느낌을 가지고 노래하여야 하는가 생각해보자. 즐거운 일이 있고 기쁠 때 우리는 말씨가 빨라지고 소리가 높아지는 것을 느낀다. 하느님의 말씀을 영접하는 기쁨과 말씀에 대한 사랑이 알렐루야 노래를 통하여 강하게 느낄 수 있어야 하겠다. 그래서 알렐루야를 부를때는 가능한 빠른 속도로 불러야 하겠다. 처음에 ‘알렐루야’를 부르고 다음에 쉬듯이 하면은 노래가 늘여지게 된다. 가능한 3번의 알렐루야를 한 숨에 부르도록 해야 할 것이다.. 어떤 알렐루야를 노래하든지 생기 있고 빠르게 노래하는 것이 좋겠다.
선창자나 성가대의 발성이 나빠 가사를 알아듣지 못하게 노래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적당하시 않은 곳에서 숨을 쉬거나 말을 끊는 것도 상당히 문제다. 먼저 한국말이 되도록 불러야 하겠다. 독창자나 성가대가 노래할 때, 평상시 우리가 말을 할 때와 같이 끊을 곳에서 끊어야 하겠지만, 너무 짧게 마구 끊어서 하면은 안되겠다. 어느 부분에서 숨을 쉴것인가를 미리 정한 다음 노래하면 좋겠다. 물론 신자들이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똑똑하게 발음하여야 하겠다. 화답송이나 알렐루야에서의 독창자는 그리 소리가 크지 않더라도 소리가 곱고 정확하게 부를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성악가가 마치 오페라의 '아리아'를 부르듯이 노래하는 것은 미사 전례에는 맞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성가 못 부르는 성가대일수록 신앙심을 강조한다. 신앙심은 모든 신자가 지녀야 할 기본적인 것이기에 성가대원이 자랑할 것은 못 된다. 신앙심 위에 음악적인 기술이 함께 할 때 그 성가대는 제 구실을 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