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토요일 (부활 성야) ( 김옥상 2006/03/24 )

2007. 12. 26. 오후 12:04:21

글자
김옥상
2006/03/24
 
초세기 교회 안에서 빠스카 축제는 수난과 죽음, 부활, 그리고 성령의 파견을 포함하는 그리스도의 온전한 구세사에 대한  일치의 기념제사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빠스카 축제는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심 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되찾아주신 빠스카 어린양의 완전한  구원의 성취를 기념하는 것이다.
  빠스카 전례는 초기에 밤에 거행되었다. 소아시아 지방 혹은 이집트에서 쓰여진 것으로 보이는「사도서한」(Epistula Apostolorum)은 2세기경에 있었던 축제의 밤 전례에 대한 증언을 담고 있다. 250년경의 저술가인 Tertullianus는 부활전야를 'Abnoctantem'(밤새도록 밖에서 지내는 예절)이라 불렀으며, 「사도규정」 (Apostolic Constitutions)은 신자들이 토요일 저녁에 자리에 모여 부활주일 새벽까지 전야전례를 지속했다고 전해준다.  
  그러므로, '부활전야'라는 명칭에도 불구하고, 부활전야는  현대적 의미로서의 부활축제 전날이라는 의미가 아니고 오히려 고전적 의미로서 한 해 중의 가장 중요한 축일 밤의 전례인 것이다. 즉, 부활성야는 부활을 위한 준비가 아니고 부활의  진정한 기념제 그 자체인 것이다. 이런 의미로서 성 아우구스띠노(Augustinus)는 빠스카 전야를 '모든 전야의 어머니'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그는 이 날을 일년 중 가장 중요한 전야   혹은 '밤의 불침번'(출애 12, 1 참조)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1951년 비오 12세는 부활 전례를 원래의 제자리에 복귀시켜 시간의 경과에 따라 모호해진 본래의 의미를 강조하였다. 이 축제를 밤에 지내는 이유는 부활이 어둠을 이긴 빛의 승리를 기념하는 축제이기 때문이다. 또다른 이유는 부활주일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특별한 방법으로   기념하며, 이 부활이 밤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도 거론될 수 있는 이유는 구약의 과월절로부터 그 원형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출애 12, 8-10).
새 불의 축성
새 불을 축성하는 예식은 8세기경 프랑스에서 시작되었으며 10세기 경에 독일에서 정형화되었다. 이 예식은 부활성야 전례의 한 부분으로 보기보다는 그 준비예식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예절이 의미하는 바는 새 불이 돌로부터 얻어지듯 모퉁이 돌로 현양된 그리스도로부터 생명의 빛이 나옴을 의미하는 것이다. 새 불의 축성은 부활초의 빛의 행렬을 준비하는 예절로서 부활전례 중 가장 먼저 거행된다.

부활초
부활초 예식은 부활성야 전례의 가장 중요한 부분에 거행되어 영광 중에 현양되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교회의 전례 중   가장 깊은 감명을 준다. 이는 우리에게 어둠을 이긴 빛의    승리, 그리스도와 그의 구원을 위한 승리를 생각하게 한다.  이러한 의미는 사제에 의해 어둠을 이기며 성당 안으로 행렬해 들어갈 때 확실히 드러난다. 이는 부활의 생생한 극적 표현인 것이다. 사제는 "그리스도의 광명"(Lumen Christi)이라는 말로 부활을 알리고 신자들은 "천주께 감사"(Deo Gratias)라는 외침으로 현양되신 주님을 맞이한다. 신자들은 부활 초로부터 부활의 빛, 그리스도의 광명을 나누어 받는다. 이는 우리 모두가 부활의 영광에 초대되었고 이에 참여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우리 모두는 빛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부활초가 제단에 도착하면 사제는 아름다운 찬미가인 Exultet을 노래한다. 고대의 성찬기도의 형태 안에서 이 찬미가는 죽음과 죄, 지옥의 능력을 이기신 그리스도 왕의 승리를 표현한다. 즉 빠스카 축제의 모든 의미들이 이 Exultet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리스도는 죽음을 이기신 생명의 빛, 진리의 빛, 구원의 빛인 것이다.
또 다른 주일과는 예외적으로 부활성야에는 9개의 독서 (구약 -  7개, 신약 - 2개)를 봉독한다. 이는 인간 구원을 위해 인류 역사에 개입하신 구원사건에 관한 말씀을 듣는 것이 부활성야 전례의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사목적 이유에서 구약의 독서를 3개(혹은 2개)로 줄일 수는 있지만, 출애굽기  14장만은 절대로 생략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이날 어둠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자녀, 빛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는 성세 예식을 거행 하는 것도 그 의의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부활이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남을 의미한다.  이것은 잠시 숨이 끊어졌다가 다시 살아나는 소생이나 죽은 몸이 다른   몸으로 태어난다는 소위 환생이 아니다.  완전히 죽은 사람이 신비로운 몸을 띄고 살아나 다시는 죽지 않는 것을 나타낸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분이 참된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증거한다 (마태 28, 6 ; 요한 20, 16-29). 이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이다."  
  그리스도 신자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신앙  고백이 "사랑은 죽음과 같이 강하다"(아가 8, 6)라는 말이 참되다는 확신이 표현이 된다. 부활은 그 자체가 죽음에 대한 사랑의 절대 우세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장차 그리스도의 같이 부활하리라는 희망을 안겨준다.
  부활에 대한 설교는 초대교회부터 모든 설교의 중심이요 원천이며 모퉁이 돌이었다(1고린 15, 11). 신앙의 존망은 부활신앙에 달려 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못했다면 우리의 설교도 헛되고 여러분의 신앙도 근거 없는 것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은 헛된 것이 되고 여러분은 아직도 죄 중에 있을 것입니다" (1고린 15, 14-17 ; 15, 19)라고 사도 바울로는 부활신앙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이러한 부활에 대한 확신은 초세기 사도들에게 발현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형성되었다.
  부활하신 예수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신다.   예수의 발현은 지상생활을 몇 주간 연장하셨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제자들과 교회를 당신의 새로운 존재 양상 안에 출발시키시는 것을 의미한다. 즉 - 비록 보이지 않는다하여도 - 항상 현존하신다는 표징이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 가운데  계신 새로운 조물주이시다. 예수의 발현은 '영원한 현존의 암시'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중요한 두가지 점이 있다. 첫째는 엠마우스로 가는 두 제자의 이야기(루가 24, 13-35)로 이는 당신을 알게 하는 성체성사를 암시하는 것이다.
  둘째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불어넣어 주신 것이다  (요한 20, 22-25). 이로써 제자들은 이 영을 통하여 예수를   만날 수 있게 되었고, 사죄권과 베드로의 사목직도 이때 비로소 제자들에게 주어졌다.  그러므로 이 현존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성령이 베풀어주시는 신앙의 결단에 의한 것 뿐이다.
  이러한 신앙의 결단은 초세기에 신앙공동체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들은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시어 현존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이 공동체를 형성한 것이다. 초대 공동체는   예수 자신 안에서 수립되어 지속되는 공동체로서의 자각을  가지고 있었다. 즉 하느님이 나자렛 예수 안에서 작용하시어 이루신 복음과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그리고 부활 후에 당신의 영을 파견하시어 설립하신 공동체로 자신들을 이해했던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신앙 공동체에는 필연적으로 선교의 의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예수의 복음이 그의 죽음으로 좌절되는 듯 했으나, 그의 부활과 현현(顯現)은 이를 물리치고 예수를 죽음에서 살리시어 새 창조를 이루신 하느님의 위대한 승리를 드러내 주었다. 이런 이유에서 모든 부활 이야기나 부활에 관한 성서 대목에는 파견의 사상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신비적이며 압도적인 만남이 파견사상의 내용으로 전달되어 제자들의 의식을 직접적으로 감동시켰다(갈라 1, 15-16). 그래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의 선교에 관한 교령」 5항에서 "주께서는 한 번 당신 죽음과 부활로써 당신 안에 우리 구원의 신비와 만물의  신비를 완수하시고 천상천하의 모든 권한을 다 받으시어(마태 28, 18) 하늘로 오르시기 전에 당신 교회를 구원의 성사로서 창립하셨으며, 당신이 성부께로부터 파견되신 것처럼 사도들을 온 세상에 파견하셨다(요한 20, 21 참조).  또한 주께서는 사도들에게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선포하여라" (마르 16, 15)고 명하셨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앙과 구원을 전파할 의무를 지는 것이다"라고 가르친다. 우리는 이제 빠스카의 어린양이 흘리신 피를 통해  죄와 죽음과 불의의 권세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아들 그리 스도와 한 형제가 되었으며 천상 행복의 상속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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