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상
2006/07/22
어제 이종철신부님과 함께 하였던 귀중한 시간을 되새기며, 토요일 오후의 한가한 시간을 샬롬홈페이지와 함께 보내고 있습니다. Alma Redemptoris 가 반복적으로 돌아가고 있지만, 싫치 않음은, 어제 신부님의 말씀과 같이 정성을 다한 음악의 아름다움에 저절로 빠져들어가기 때문이겠지요. 샬롬성가대는 물론 음악을 전공하여 합창을 하는 성가대는 아니지만, 항상 좋은 성가를 하고 싶은 욕심이 꿈틀대고 있는데, 여러가지로 역부족인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우선 저의 모자람이 그렇고, 단원들 대부분 함께 연습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모으기가 너무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 외에 연습장소라든가, 환경등등…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마음에 있는 것 같습니다. 성가대가 잘 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이 신앙적이 생각이어야 한다는 것은 저의 오래된 경험이면서 확신입니다. 일반 사회의 합창도 물론 그러하겠지만, 특히 교회의 성가대는 서로를 충분히 사랑하고 아끼면서 양보하고 그럴 때 비로서 합창을 할 수 있는 마음이 모아진다고 생각합니다. 지휘자의 부족함을 지적하기보다는 이해하고, 단장의 통솔력에 반박하기보다는 협조하는, 다른 단원들의 실수를 포용하는 그런 샬롬의 모습이 되어질 때, 아름다운 성가를 부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제 잠깐 불렀던, 252장(성모여 우리 위해)을 다시 한번 생각해봅시다.
“거룩하시고 인자 하오신 우리 성모마리아
사랑 하오신 우리 어머니
우리 위해 빌으소서 성모여”
성모님에 대한 찬양으로 시작하여, 성모님을 통하여 주님께 우리의 간절함을 전구하여 주시기를 바라는 기도입니다.
사전 연습 없이 불렀었지만,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노래중에 성모님이 보이냐고 하시던 신부님의 말씀을 항상 마음에 간직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음악은 노랫말에 음을 맞추어 만들어 집니다. 더구나 우리들이 부르는 성가는 대부분 성서의 말씀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성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성서의 말씀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행위입니다. 그러한 거룩함을 전달하는 우리들의 마음에 사랑이 담겨져 있지 않다면, 성가를 부르는 행위가, 그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더구나 다른 사람의 마음에 담겨질 아름다움이 어찌 나오겠습니까?
샬롬의 단원 여러분들, 항상 부족한 저와 함께 하여 주심에 감사 드리며, 진정으로 성가를 사랑하는 어린양의 모습을 닮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거룩하시고 인자 하오신 우리 성모마리아
사랑 하오신 우리 어머니
우리 위해 빌으소서 성모여”
성모님에 대한 찬양으로 시작하여, 성모님을 통하여 주님께 우리의 간절함을 전구하여 주시기를 바라는 기도입니다.
사전 연습 없이 불렀었지만,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노래중에 성모님이 보이냐고 하시던 신부님의 말씀을 항상 마음에 간직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음악은 노랫말에 음을 맞추어 만들어 집니다. 더구나 우리들이 부르는 성가는 대부분 성서의 말씀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성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성서의 말씀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행위입니다. 그러한 거룩함을 전달하는 우리들의 마음에 사랑이 담겨져 있지 않다면, 성가를 부르는 행위가, 그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더구나 다른 사람의 마음에 담겨질 아름다움이 어찌 나오겠습니까?
샬롬의 단원 여러분들, 항상 부족한 저와 함께 하여 주심에 감사 드리며, 진정으로 성가를 사랑하는 어린양의 모습을 닮아가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