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상
2006/04/21
(인터넷에서 퍼온글입니다. 글쓴이가 ‘paxnobis’ 라고만 되있었습니다)
Ⅰ.들어가는 말
미사는 그리스도의 행위이며 교계적 질서를 갖춘 하느님 백성의 행위이며 교계적 질서를 갖춘 하느님 백성의 행위로서, 세계 교회와 지역 교회와 각 신자들의 교회 생활의 중심을 이룬다. 미사야말로 하느님이 그리스도와 함께 이 세상을 거룩하게 하시는 행위의 절정이며, 또한 연중을 통하여 미사로써 구원의 신비가 기념되고 재현된다. 때문에 교회의 전례 안에서 미사는 신앙의 원천이자 바로 정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말은 곧 미사가 구원론적인 것이며, 창조 종말론적인 의미라는 뜻이다. 실상 미사는 그리스도 신자들의 가장 기본적인 생활 양태이며 양식이다. 이런 깊은 뜻을 가지고 있는 미사는 일정한 양식을 통해 이루어지고, 신자들은 미사 양식에 따라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십자가의 제사를 몸소 느끼게 된다. 이제 우리는 미사 전례에 대한 전반적인 것들을 살펴봄으로써 미사 안에 담긴 의미를 알아보고 그 뜻을 깊이 새겨보고자 한다.
Ⅱ.하고자하는 말
1. 미사의 명칭
미사는 그 내용이 풍부해서 한 마디로 그 명칭을 표현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각 시대마다 중점을 두는 부분에 따라 미사에 대해 여러 가지 명칭이 부여되어 왔다. 먼저 사도시대에는 「빵나눔」이라는 용어가 미사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빵나눔」이란 말은 유다인들이 식사할 때 빵을 나누는 동작을 표현한 것으로 유다 파스카 예식을 시작하는 첫 번째 동작이었지만, 사도 시대에는 그리스도교 예식 거행을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다(루가24, 35; 사도2, 24~26; 사도20, 11; 사도27, 35; 1고린10, 16; 1고린11, 23?26). 다음으로 「주님의 만찬」이란 명칭도 사용되었는데, 바오로 사도에 의하면 이 명칭은 성찬례(미사)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규범이며 출발점이 되고 있다(1고린11, 20). 「주님의 만찬」은 최후만찬 때와 같이 주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면서 주님을 기념하는 식사였을 것이다. 이 명칭은 미사의 식사적 특성을 잘 드러내기 때문에 종교개혁 이래 개신교에서 즐겨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사도시대 때의 미사의 명칭인 「빵의 나눔」, 「주님의 만찬」은 한결같이 미사의 식사적 특성을 드러내고 있다. 2~3세기에는 교부들에 의해 그 시대의 성체성사 신학을 반영하는 용어들이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감사」라는 의미의 희랍어 「에우카리스띠아」(Eucharistia)와 「찬미기도」의 의미를 가진 「에울로기아」(Eulogia)가 미사의 명칭으로 쓰였는데 모두 외적행동과 내적기도의 합치를 강조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구약시대부터 「감사한다」와 「찬미한다」를 같은 뜻으로 썼다. 감사와 찬미는 서로 보충하는 공통된 생각으로서 미사의 의미를 잘 드러내 주는 용어이다. 4세기에는 제사적인 측면을 나타내는 「제사」, 「봉헌」, 「제물」 등의 명칭이 많이 사용됐고 교부들의 문헌과 동?서방 전례에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문맥에 따라 성찬, 성찬음식, 봉헌행위 등 여러 가지 의미로 쓰였다.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에서는 미사의 제사성을 부인했기 때문에 일체의 제사적 명칭을 배격했으나, 가톨릭에서는 계속 제사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5세기에 와서는 오늘날 우리가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미사」(Missa)라는 용어가 로마 관습으로부터 들어오게 되었다. 「미사」(Missa)라는 뜻은 라틴어로 「파견」, 「보냄」이란 뜻인데, 로마에서는 이 용어를 황제 공식 알현이나 원로원 회의, 군대 행사 등의 집회를 마감하며 선언하는 공식 파견사의 용어로 사용하였다. 교회에서도 전례 모임에 이 용어를, 즉 예비신자 파견, 교회에서 거행된 모든 예식의 폐회식이나 폐회선언, 성무일도의 마침기도와 저녁기도의 끝부분, 강복으로 끝나는 모든 예식, 성찬 등에서 다양한 용도와 의미로 사용하였다. 그러던 것이 5세기 중엽 이후부터 축복으로 끝나는 예식 중 대표적 예식인 미사에서 고유적으로 쓰이기 시작하여 미사의 고유명칭이 되었다. 「미사」라는 명칭은 어원이나 말의 뜻으로 보아 성찬의 의미를 드러내기에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나 오랫동안 성찬의 대표적인 명칭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그 고유 명칭이 됐다. 미사에 대한 여러 가지 명칭들은 모두 미사의 중요한 요소 중 무엇인가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미사의 명칭을 모두 모아보면 자연히 미사가 지닌 풍부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2.로마 미사전례의 구성요소
1)개회식
가)입당송
5세기경에 옛 로마의 대성전에서 주례자인 교황이나 주교는 미사 성제를 지내려 성당으로 긴 행렬을 했는데 이 행렬 때에 모든 신자들은 다 함께 한 시편 전체를 읊었다. 그러나 7, 8세기에는 성당과 제의실의 구조로 된 긴 행렬이 없어지고 짧은 행렬이 시행됨으로써 입당송이 한 구절이 되었고, 간소한 미사 성제에도 입당송을 부르게 되었다. 시편이나 다른 성서에서 한 구절을 택하여 불렀다. 입당송이나 다른 노래로 대치할 경우에는 입당송을 외우지 않는다. 입당송은 대제관이신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이끄시고 하느님 아버지께서 감사와 찬미의 제사를 드리려 성전으로 들어옴을 환영하는 것을 뜻하며, 우리 모두는 우리의 구원이요 왕이신 그리스도와 그를 대리하는 주례자의 입당을 성대히 영접함을 뜻한다. 신자들이 모인 다음에 사제가 제대로 나올 때 입당 노래를 시작한다. 이 노래의 목적은 미사 성제를 시작하며 집회자들의 일치를 강화하고 신자들이 전례시기와 축제의 신비를 깨닫도록 그 마음을 준비시키고 사제와 봉사자들의 행렬에 가담하게 하는 것이다.
나)인사
①제대와 감실에 대한 인사
사제와 봉사자들이 제대 앞에 와서 감실과 제대에 경의를 표한다. 사제가 제대에 오르는 즉시 허리를 굽혀 제대에 입을 맞춘다. 제대는 그리스도, 모퉁이 돌, 교회의 기초임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최초의 제대는 최후 만찬 때의 식탁이었다. 6세기 경부터 돌로 만들어야 한다는 규정이 생겼고, 반드시 자연석을 사용한다. 제대 위에는 성인의 유해를 모신다. 그러므로 사제의 입맞춤은 예수 그리스도와 천상의 성인들과의 완전히 일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어서 사제와 신자들은 십자성호를 긋는다. 지금 드리는 미사는 성삼위를 상기시키는 뜻이 들어있다. 그리고 사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신자들에게 인사한다. 이로써 여기 모인 공동체에 주님의 현존하심을 선포하는 것이다.
②신자들과의 인사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주님으로 인해서 형성된 무리이다. 주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 공동체는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아닌 것이다. 따라서 미사를 거행하는 공동체는 시작부터 자신들의 신원이 어디에 근거하는 것인지, 어떠한 공동체여야 하는지 재확인하고 자각한다. 그 작업은 사제가 팔을 벌려 행하는 몸짓과 함께 외치는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라는 말, 그리고 그에 응하는 신자들의 “또한 사제와 함께”라는 말로 이루어진다. 함께 나누는 몸짓과 대화 구조의 상징을 통해서 공동체는 “공동체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과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하는 공동체”라는 의미를 표현하고 체험하는 것이다.
다)참회
미사 개회식에서 수행되는 참회 과정은 두 가지의 의미를 지닌다. 첫째,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가운데 하느님과의 화해 그리고 공동체의 형제들과의 화해요청이고 둘째, 이러한 화해가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로 말미암아 가능해진 것이기에 그분을 대리하는 사제이자 공동체를 대표하는 사제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안에서 자신들을 희생하며 바치는 봉헌이 그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 두 가지 의미는 하느님의 뜻에만 따르는 공동체의 의지 즉 하느님께로 향하기 위한 공동체의 회개 즉 자아포기라는 단 한가지 것의 표현인 것이다(1베드 2,5 참조). 이런 식의 참회예절 역시 지극히 상징적이다.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자비와 용서의 신비가, 그 신비에 대한 신앙의 신비가 거룩한 말과 가슴을 치는 행위로써 표현되고 체험되기 때문이다. 8세기까지는 땅에 엎드려 묵묵히 그 자세만을 취했지만 9세기경부터 죄 고백의 양식이 들어왔다. 현재는 세 가지 양식이 제시되어 있는데 그 중 하나를 골라서 한다.
라)대영광송
대영광송은 그 원천을 아마 4세기경의 그리스어나 시리아어의 아침 기도에서 부분적으로 더듬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로마에서는 500년경 성탄절의 노래로 사용하게 되었고, 서구에서는 거의 지금과 같은 형식으로 미사 중에 부활절을 비롯해서 기타 주일이나 순교자 축일에도 주교나 사제의 선창으로 모든 신자가 함께 노래한다. 현재는 사순절과 대림절을 제외한 주일미사와 지역에 따라 축일에 ‘자비송’에 이어 노래하고 있다.
마)본기도
사제는 침묵 중에 드리는 우리의 기도를 한데 모아 우리의 대리자로서 하느님께 바친다. 이 때문에 사제는 옛날부터 기도하는 사람의 자세를 본받아 두 팔을 펴고 기도한다. 본 기도는 미사의 첫 번째 기도이다. 그러므로 그날의 지향에 따라 기도가 선택되며, 공동체 전체의 기도를 요약한다. 비록 간단한 몇 마디로 바치기는 하지만 우리들의 간절한 소망이 잘 정립되어 완성된 결정체와도 같다. 또한 사제가 두 팔을 펴고 기도하는 이유는 십자가상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처럼 성부께 기도한다는 의향이 들어있다. 이것은 두 가지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우는데, 그 하나는, 사제의 기도가 모든 신자와 교회 전체의 기도라는 양면성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두 번째는 그리스도가 기도하신 것처럼 사제도 기도한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와 똑같이, 사제는 성령 안에서 성부께 기도한다.
2)말씀의 전례
가)말씀의 전례가 주는 의미
말씀의 전례는 성체성사가 행해지는 성찬전례의 준비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성찬의 전례만이 미사의 핵심이라는 뜻은 아니다. 본래 말씀의 전례가 없는 성찬의 전례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결국 그 두 가지 전례는 미사전례를 위해서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는 중요한 전례들인 것이다. 참고로 말씀의 전례만으로 특정한 예절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밝힌다.
나)독서
독서 부분은 옛날 유다인들의 경신례 관습에서 온 것이다. 히브리 사람들은 안식일에 회당에 모여 율법이나 예언의 말씀을 낭독하고 그것을 해설하였다. 교회의 초창기에는 독서의 수효와 길이가 고정되지 않았다. 150년경에 기술한 순교자 유스티노의 글을 보면, 독서자는 시간이 허용되는대로 계속 봉독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는 세 가지 독서를 규정하고 주일날 신자들에게 봉독 한다. 그 순서도 엄격히 규정되어 있다. 첫째는 구약성경이다. 그러나 부활시기에는 사도행전으로 대체될 수도 있다. 두 번째는 사도들의 편지와 저술이다. 제2독서는 전반적으로 구원사건을 체험한 첫 세대 그리스도인들이 체험한 구원의 신비를 삶을 통해서 온 몸으로 증거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한 마디로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살아야 할 신앙생활의 원본을 듣고 체험하게 해주는 내용이다.
맨 마지막으로 복음성경을 봉독한다. 독서 부분에서 가질 우리들의 자세는 하느님의 말씀을 생생하게 경청하는데 있다. 하느님이 직접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어야 한다.
다)화답송
유대인들의 회당 예식을 계속 이어가던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전통적으로 성서 낭독에 시편이나 찬가를 노래함으로써 하느님 말씀에 응답하였다. 로마에서는 독창자나 차부제가 제1독서가 끝난 후 독서대에 다가가서 독서대의 한 계단 (gradus=층계 혹은 계단) 아래에 서서 시편을 노래하였는데 이를 '층계송' (Graduale) 이라 하였다. (그래서 옛날에는 한국에서도 이 노래를 '층계송'이라 하였다) 시편 구절은 독창자에 의해 불리어졌고 신자들은 주로 시편 자체에서 가져 온 짧은 후렴으로 응답하였다. (지금은 선창자의 시편 구절 낭송을 신자들이 후렴으로 받는다 하여 한국 교회에서는 이를 '화답송'이라 개명한 듯 하다) 한 때는 매우 화려한 선율이 발전하였고, 시편 자체는 생략되기도 하였으며 시편의 노래는 잘 훈련된 성가대에 의해 연주되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시편 응송은 특별한 중요성을 가지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복구되었다. 원칙적으로 시편응송은 노래로 불리어져야 한다. 그리고 모든 회중이 환호적인 후렴을 노래하면서 참여하게 되어 있다. 시편은 독서들 중의 하나와 문맥상으로나 영성적인 관련을 가지고 있다. 많은 경우에 어떤 전례 시기를 위해서는 전통적인 시편을 사용하기도 한다. 말씀 전례는 첫 번째 독서 후의 이 노래가 불리어질 때 더 큰 생명력을 가지게 된다. 시편 독창자는 시편 구절을 아주 단순한 선율로 읽더라도 노래로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만약 음악을 구할 수 없거나 노래할 마땅한 사람이 없을 때에는 시편 구절을 사람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천천히 감정을 넣어 잘 읽어야 할 것이다. 이 노래 (화답송)는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기능을 가진다는 것을 우선 생각하고 노래하거나 낭송해야 한다.
라)복음낭독
복음 성경 봉독은 ‘말씀의 전례’에 있어서 그 중심을 이룬다. 신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말씀하시는 것으로 생각하고 존경을 표시하기 위해 일어선다. 초기에는, 동쪽을 향해 세워진 성당에서는 북쪽을 향해서 복음이 봉독 되었다. 이는 춥고 어두운 북쪽에는 암흑의 권세인 악마와 악습이 만연한 것으로 생각했고, 그러한 암흑의 권세를 복음의 말씀으로 몰아낸다는 의미로 생각한 데서 유래한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사상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으며 오히려 하느님 백성을 향하여 그들에게 희소식을 전하는 데 역점을 둔다.
마)강론
하느님의 심오한 신앙 진리를 담고 있는 성서를 설명하는 강론은 본래 신앙의 수호자인 주교만이 할 수 있었다. 후대에 와서 부제와 사제들에게 주교는 이 권한을 위임하였다. 오늘날에도 적어도 부제품을 받아야만 강론을 할 수 있다.
바)신앙고백
성서봉독과 복음봉독 그리고 그에 대한 해설들을 통해서 선포된 하느님의 구원신비를 듣고 난 후 그에 대한 공동체의 응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신앙고백이다. 이 신앙고백은 그리스도인이 맨 처음 세례로써 자신을 신앙인의 무리에 들게 해주신 하느님께 자신의 공동체신앙을 고백할 때 표현했던 내용들과 근본적으로 같다. 말하자면 세례신앙고백과 미사 중 고백하는 신앙은 내용에 있어서 하나인 것이다. 따라서 미사 중에 신앙을 고백하는 것은 또한 세례 때의 신앙을 재확인하면서 고백하는 셈이다.
사)보편지향기도
신자들의 기도의 지향에 있어서 여러 차원의 공동체에 언급할 수 있도록 ‘공동 기원집’의 지향은 네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다. 첫째 부분은 모든 교회를 위한 기도이다. 여기서 말하는 ‘교회’란 그리스도의 몸인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란 뜻이므로 하느님 백성이 된 사람, 즉 모든 신자, 교회 전체, 세계의 모든 교회를 위한 기도이다. 둘째 부분은 전인류로 시야를 넓혀 아직 하느님의 백성이 안 된, 즉 그리스도의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을 위한 기도이다. 그것은 전세계의 모든 민족, 국가, 각종 종교를 믿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평화나 구원을 기원하게 된다. 셋째 부분은 아주 구체적인 긴급하고 필요한 일을 위한 기도인데, 그것은 모든 차원의 공동체를 위한 구체적인 것이면 된다. 넷째 부분은 우리들의 공동체를 위한 것, 예컨데 본당이나 지역 공동체 또는 각종 단체 등, 여기에 속해 있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이다. 신자들의 기도로 초대하는 말과 끝맺는 기도는 집전 사제의 임무이다.
3)성찬의 전례
가)성찬의 전례 및 예식의 특징
미사 안에서 후반부에 속하는 성찬 전례는 말씀의 역할로부터 단절되는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말씀선포에 대한 목적 중의 하나이자 시작이 되는 말씀과 성찬(감사)은 사람들을 성찬의 축제에로 이끌어 주기 때문이다. 물론 성찬례는 그 자체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가 온전히 일치와 상호 관계를 이룰 때 미사는 구원의 성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미사 중에 빵과 술의 형상 안에 이루어지는 성체와 성혈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죽으심을 보여 주고 주님의 부활에 대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게 해주며 다가오는 우리의 부활을 말해주고 있고,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 상호간의 일치를 상징하고 있다. 대문에 사제는 적어도 몇 명의 신자들의 참여 없이는 성찬 제헌을 거행하지 말아야 하고, 사제는 성찬 제헌 거행을 위하여 기도로써 합당하게 준비하고 거행 후에는 하느님께 감사하기를 궐하지도 말아야 한다고 교회법전은 밝히고 있다.
나)예물 준비
성찬 전례는 먼저 예물 준비로 시작된다. 예물 준비라는 표현은 제대를 준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봉헌 성가,예물 봉헌,예물 기도까지의 예식을 가리키기 위해 만들어낸 말로서, 성찬전례의 첫 부분을 이룬다. 이 예식에서 많이 사용되는 용어는 ‘봉헌하다’ 또는 ‘바치다’라는 말인데, 이 말들은 자칫 이 부분이 감사 기도에 앞서 제물이 봉헌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교황 비오 5세(1566~1572)의 ‘미사 경본’에는 아직 축성되지 않은 예물에 대해 ‘흠 없는 희생물’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다. 그래서 새 미사 경본에서는 봉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도 예물 준비 예식을 단순화,명료화 하여 감사 기도로 시작되는 제물 봉헌의 의미가 약해지지 않도록 고려하였다. 초대교회와 2세기의 의식은 지극히 간단했다. 그 후 세월이 흐르고 교우들이 증가함에 따라 봉헌 행렬과 기도가 덧붙여졌고, 성대한 행렬을 지어서 제대 위에 예물을 바치게 되었다. 그러다가 중세 초기에는 봉헌 행렬이 사라졌다. 누룩 없는 빵이 준비되고, 신자들의 가정에는 구울 수 없게 하였다. 이외에도 여러가지 예식이 추가되었다. 그러나 모든 교우들이 빵을 함께 나누는 정신은 점차 쇠퇴하였다. 그러나 미사의 본래 의미를 상실했다는 뜻은 아니다.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로 변하여 우리들의 참된 영생의 음식이 된다는 진리는 결코 변하지 않았다. 포도주에 물을 몇 방울의 물을 떨어뜨리는 것은 아주 오래된 전통이다. 물은 신자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아듣는다. 물과 포도주를 분리할 수 없는 것과 같이, 믿음을 통하여 맺어진 그리스도와 우리와의 일치는 이토록 견고하여, 무엇으로 분리시킬 수 없음을 상징한다.
다)감사송
감사송은 사제가 그날의 축복에 알맞는 것을 선택해서 사용한다. 감사송이라고 번역된 라틴어의 ‘쁘레파씨오(praefatio)’는 마침 영광송도 포함한 감사기도의 전체 표지였다. ‘쁘레(prae)’는 시간적으로 앞서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공간적인 앞으로서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 앞에서 하느님의 구원사업을 말한다’는 의미이다. 오늘날에는 그날 복음에서 봉독된 주님의 사건과 관련된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을 감사하는 서정적인 찬미 노래로 되어 있으며, 축성기원문을 중심으로 하는 감사기도와 유기적인 관련을 지니도록 많은 감사송이 만들어졌다. 본래 이 감사송으로써 미사 성제가 시작되었다. 예수께서도 최후 만찬 때에 빵과 포도주를 들고 성부께 ‘사례’하신 후 성찬을 나누셨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사례하는 감사의 기도’이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어 우리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수난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적을 회상하며, 피를 우리에게 주심을 감사하고, 이러한 위대한 사업을 하시도록 당신 아드님을 보내 주신 천주 성부께 감사하는 것이다. 로마 라틴 전례는 축제의 시기나 현의를 부각시켜 집중적으로 감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감사송이 많은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라)성찬 기도
우리들이 미사의 신비 속으로 더욱 깊이 들어가려면, 성령이 하시는 역할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거룩한 변화 전에, 즉 성체를 축성하기 전에 사제는 천주 성부께 간구하여 이 제물 위에 성령을 보내 주십사 하고 기도 드린다. 이 기도를 바치면서 사제는 제물 위에 십자가를 긋고 두 손으로 제물을 덮는다. 이때 복사는 종을 침으로써 미사의 절정인 성변화 시간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것이다. 성령께 기도하는 시간은 비록 순간적이지만 그 속에 담긴 말은 전 교회의 간절한 소망을 한데 모은 것이다. 사제의 청원은 성당의 제대를 중심으로 모인 모든 신자들이 소망과 일치하는 청원이다. 성찬기도는 4가지 양식이 있는데
제1양식은 4세기 말에 성 암브로시오가 쓴 “성사에 관한 강화”에 제1양식의 주요 부분이 그대로 인용되고 설명되어 있음을 볼 때 대략 4세기 중엽부터 4세기 말에 걸쳐 확정되어 온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다가 5세기에 이르러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것과 같은 양식으로 고정되어 쓰였으며 그 후 그레고리안 성가의 창시자인 대 그레고리오 교황이 이 제1양식을 로마양식으로 확립한 이래 이른바 전통적인 로마양식으로 전해진다.
제2양식은 제1양식보다 짧다. 이유는 히폴리투스가 215년 경에 쓴 ‘사도전승’에서성찬 기도 중 없어서는 안될 요점을 정리해 놓은 내용이 있는데 그가 정리해 좋은 요점들이 근간을 이루는 것이 제2양식이기 때문이다.
제3양식은 로마양식인 제1양식의 특징을 간직하면서도 그 양식의 부족한 점을 보충하는 가운데 암브로시오 전례(혹은 밀라노 전례: 로마 고대전례의 하나로 이탈리아 밀라노 지역에서 사용되어 오던 것)와 6세기~11세기에 스페인과 포르투갈 지역에서 사용되었던 톨레도 전례(혹은 모자라빅 전례) 등을 살려 새로운 표현을 빌려 구성한 양식이다.
제4양식은 동방교회의 전례 전통을 투영시킨 것이다. 희랍어로 되어 잇는 성 바실리오의 성찬기도를 라틴어로 옮기면서 문장과 표현을 가다듬은 것이다.
마)성찬 제정 및 축성
“그리스도께서 최후 만찬 때 제정하신 제사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위로써 이루어진다.”(미사 경본의 총지침 55항) 이 같은 로마 교회의 가르침은 성령 청원을 통하여 성변화가 일어난다는 동방 교회의 교부들의 입장과는 차이가 있으나, 파스카 신비의 기념으로서 감사 기도의 전체 성격을 고려한다면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다. 축성 순간에 성체와 성혈을 들어올리는 행위는 미사는 제사이며 이 순간에 주님이 제대 위에 내려온다는 중세 신앙과 성체를 보고 싶어하는 신자들의 열망에 부응한 산물이다. 한편 성체 축성 후 바로 들어올리는 것은 성체 변화는 성혈 변화 이후에 이루어진다는 일부 사람들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서체 축성은 성체 변화 말씀 이후에 즉각 이루어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바)기념,봉헌
성찬 제정 말씀 중 “나를 기억하며 이를 행하라”라는 명령에 따라 그리스도에 대한 기념을 새롭게 한다. 여기서 말하는 기념이란 과거를 기억하는 차원에 그치지 않고 과거의 사건을 지금 이 자리에서 현재화 하는 것을 또 지금 이 예식에 참여하는 내가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내 것을 만든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미사에 참석한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기념하는 가운데 성부에게 깨끗한 제물을 봉헌한다. 즉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와 결합한 신자들 모두는 그리스도 안에서 산 제물이 도기를 기도하며, 성부의 뜻을 죽기까지 따랐던 그리스도처럼 성부와 일치된 삶을 사는 영적 제사를 봉헌한다.
사)주님의 기도
하나의 기도 초대문이 주님의 기도를 인도한다. 이 초대문은 아빠를 신뢰하는 아이 같은 믿음으로 한없이 크고 전능하신 하느님을 부른다는 것이 자명한 일은 아님을 깨닫게 한다. 주님의 기도는 우리에게 새로운 하느님과의 관계를 선사하시고 이 기도를 가르쳐 주신 예수님의 ‘신적 가르침’을 필요로 한다. 이에 우리는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감히 부를 수 있다. 주님의 기도의 처음 세 가지 간청은 내용상 앞의 감사기도와 관련시켜서 볼 수 있다. 여기서 하느님의 이름, 곧 하느님의 본질이 그 분의 거룩함 안에서 인정되고 찬양 받았으며 그리스도의 제사를 통해 하느님께 ‘모든 영광과 영예가 표해진’ 것이다. 여기서 파스카 신비의 현재화로 하느님 나라의 도래가 준비된 것이다. 여기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이르는 순종으로 아버지 뜻에 따르는 최고의 순종이 바쳐진 것이다. 주님의 기도가 미사 전례에 받아들여지는 데에 더욱 결정적인 구실을 한 것은 물론 특히 두 가지 간청이 영성체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고 보았다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곧 빵과 용서를 비는 간청이 그것이다.
아)주님의 기도 후 부문
이 기도문은 주님의 기도에서도 이미 드러난 것처럼 그리스도교 신앙이 창조신앙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종말신앙이라는 것을 재차 확인시켜준다. 현대 인류공동체가 모든 악의 힘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하느님의 지배로 평화가 모든 이에게 미치기를 바라는 종말론적인 기대를 넣어서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 드린다. 이것을 매듭짓는 교우들의 환호인 “주님께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있나이다”는 노래로 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사이다. 그러므로 회중이 자연스럽게 노래로써 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주님의 기도에 이어지는 후속기도도 사제가 노래로써 하도록 되어 있다.
자)평화의 인사
평화의 인사는 모든 교회를 위한 평화와 일치의 기원을 그때, 그 장소에 모인 구체적인 공동체 위에 구체화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본당의 교회, 또는 미사를 집전하는 예배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평화와 일치를 나타내고 확인하는 기도이고 인사이다. 사제에게만이 아니라 모두가 모여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하느님 아버지께 축제를 지내는 그 회중 가운데 그리스도가 현존하고 지배하고 있음을 의식하고 대답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하느님 아버지께 축제를 드리고 있는 신자 전체의 사제 그 자체 위에, 그리스도의 지배를 통한 주의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서 이다.
차)빵을 쪼갬
최후의 만찬 때 우리 주님께서는 빵을 들어 축복하신 후,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오늘의 우리들도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그대로 빵을 떼어 나누고 있다. 빵을 나누는 행위는 하느님의 어린양을 노래하거나 기도하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오늘의 미사 예식에서 사제는 동그란 큰 제병을 조심스럽게 둘로 나누어 성반 위에 둔다. 그리고 둘로 나눈 어느 한쪽에서 또 다시 조금 떼어 내어서 성작 속에 넣으므로써 빵을 나누는 예식을 마감한다. 이 예식은 역사적 형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영성체로서 그리스도 자신이신 같은 한 생명의 빵을 받아 모심으로써 한 몸을 이룬다는 사실을 표시하는 것이다. 성찬례의 빵은 그리스도와 그리고 그리스도인들 서로간의 일치를 나타내고 강화한다는 점이 드러난다. 이러한 만찬기사의 보도에서 보듯이 “빵 나눔” 예식은 미사 전례의 가장 근원적인 예식 가운데 하나이다. 유다인들은 식사 때 큰 빵을 들고 찬양기도를 바친 다음 나누면서 사랑과 일치를 다졌다. 그러한 배경에 따라 사도교회는 빵 나눔에 상당히 큰 비중을 두었다.
카)하느님의 어린 양
보통 빵을 사용하던 시기에는 빵을 나누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으므로 이 예식을 원만하게 진행하기 위하여 도입된 것이 이 노래이다. 이 찬가는 “하느님의 어린 양”이란 말로 시작하는 것처럼 아버지인 하느님이 아니고 하느님의 아들을 찬미하는 노래이다. 세례자 요한이 그리스도를 제자들에게 소개하였을 때 “보라, 하느님의 어린 양”이라고 말한 것과 같이 그리스도를 향한 기도이고, 또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를 되풀이하며 영성체할 마음의 준비를 하는 기도이다.
타)영성체
사제가 먼저 성체와 성혈을 영한다. 그러나 공동 집전자들이나 부제 혹은 성체 분배자가 제대에 있으면 그들에게 먼저 성체를 나누어 주고 그런 다음 성체를 영한다. 사제는 공동체의 신자들에게 성체를 나누어 줄 때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하고 신자들은 “아멘”하고 답하면서 받아 먹는다. 나눔의 성찬 안에서 체험할 수 있는 중요한 의미는 다음과 같다. 첫째, “그리스도의 몸” 즉 먹거리라는 성사로 당신 자신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신비 둘째, “아멘”이라는 말을 통해서 그 신비를 받아들인다는 신앙 셋째, 사도 바오로가 “우리가 그 빵을 떼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어 먹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빵은 하나이고 우리 모두가 그 한 덩어리의 빵을 나누어 먹는 사람들이니 비록 우리가 여럿이지만 모두 한 몸인 것입니다.(1고린 10,16~17)”라고 표현한 것처럼 나누어진 한분 주님과 몸과 피를 통한 공동체의 일치가 그것이다. 그래서 이 성찬을 초대교회 때부터 ‘아가페(agape)'식사라고 해왔다. 이 아가페 식사는 공동체가 세상 안에서도 증거하며 살아야 할 그러한 식사이다.
파)영성체 후 기도
성체를 모시고 하느님께 받은 은혜에 대하여 감사함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예수께서도 최후 만찬 후에 제자들과 함께 ‘알렐루야’ 시편을 바치셨다. 미사 성제 때 마지막 바치는 기도는 이처럼 감사의 정이 깃들인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영성체의 효과를 우리에게 듬뿍 주시기를 청하는 것이며, 늘 감사의 생활로 신앙을 실천할 힘을 간구하는 것이다.
4)폐회식
가)강복
사제의 말로 주어지는 미사의 맺음인 강복은 교회공동체의 정기적 집회인 주일미사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기회에 거행되는 전례 집회의 해산 때, 회중이 사회에 파견되어 각자의 사명을 다하는 데 필요한 하느님의 힘과 은총을 교회가 전달한다는 것을 보증하는 ‘말씀’과 ‘표징’이다. 옛날에는 주교님들이 미사 성제를 마치고 성당을 나가시면서 신자들에게 손을 들어 십자가를 그어 강복을 주셨고 후에 강복하는 말을 삽입하였다. 9세기경에 사제들도 제대를 떠나기 전에 강복을 주게 되었다. 이 마지막 강복의 말씀은 여러 가지 형태로 발전해 오다가(예컨데 요한 복음 첫머리를 읽음) 1955년에 현재의 규정대로 실시하게 되었다.
나)파견
미사 성제 시작에 입당송이 있듯이 미사 성제 거행이 끝났음을 성대하게 선포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미사(missa)라는 말도 유래한다. 이러한 선포 내용에는 성찬에 초대 받아 그리스도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적 일치를 이루어 미사 성제로써 힘을 얻은 우리는 공동체적 사명 의식 속에서 세상에 나가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분의 복된 소식을 모든 이에게 전하기 위하여 사도로서 파견된다는 것을 명심케 하는 것이다.
Ⅲ.나가는 말
우리는 지금까지 미사 성제에 대한 것을 알아보았다. 성찬례는 모든 전례와 마찬가지로 감각적 표지로 이루어지며, 하느님 현존의 가시적인 표징으로서 그 행위마다, 그 말마디마다 각각 커다란 의미를 함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때문에 미사 중 제사를 드리는 사제가 말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은총의 목소리이며, 사제가 행하는 한 동작 한 동작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해방시켜주시고자 하는 사랑의 모습인 것이다. 이렇듯이 미사는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미사 성제에 대한 의미를 얼마나 알고 있으며, 그 안에 담긴 신비를 얼마나 체험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그저 의무이니까 맹목적으로 미사에 참례하고 있지는 않는지 그리고 영성체 역시 형식적으로 하고 있지는 않는지 반성해 보아야 하겠다. 레포트를 통해 미사에 담긴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미사는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구원 신비를 다시금 되새기고, 지금 이 자리에서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다. 미사를 통해 주님의 그 사랑을 깊이 깨닫고 미사 한 부분, 한 부분에 담긴 의미를 생각하며 정성스럽게 미사에 참례해야 하겠다. 이런 습관을 통해 훗날 내 자신이 미사 성제를 드리게 될 때, 그 미사는 더 깊은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Ⅰ.들어가는 말
미사는 그리스도의 행위이며 교계적 질서를 갖춘 하느님 백성의 행위이며 교계적 질서를 갖춘 하느님 백성의 행위로서, 세계 교회와 지역 교회와 각 신자들의 교회 생활의 중심을 이룬다. 미사야말로 하느님이 그리스도와 함께 이 세상을 거룩하게 하시는 행위의 절정이며, 또한 연중을 통하여 미사로써 구원의 신비가 기념되고 재현된다. 때문에 교회의 전례 안에서 미사는 신앙의 원천이자 바로 정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말은 곧 미사가 구원론적인 것이며, 창조 종말론적인 의미라는 뜻이다. 실상 미사는 그리스도 신자들의 가장 기본적인 생활 양태이며 양식이다. 이런 깊은 뜻을 가지고 있는 미사는 일정한 양식을 통해 이루어지고, 신자들은 미사 양식에 따라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십자가의 제사를 몸소 느끼게 된다. 이제 우리는 미사 전례에 대한 전반적인 것들을 살펴봄으로써 미사 안에 담긴 의미를 알아보고 그 뜻을 깊이 새겨보고자 한다.
Ⅱ.하고자하는 말
1. 미사의 명칭
미사는 그 내용이 풍부해서 한 마디로 그 명칭을 표현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각 시대마다 중점을 두는 부분에 따라 미사에 대해 여러 가지 명칭이 부여되어 왔다. 먼저 사도시대에는 「빵나눔」이라는 용어가 미사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빵나눔」이란 말은 유다인들이 식사할 때 빵을 나누는 동작을 표현한 것으로 유다 파스카 예식을 시작하는 첫 번째 동작이었지만, 사도 시대에는 그리스도교 예식 거행을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다(루가24, 35; 사도2, 24~26; 사도20, 11; 사도27, 35; 1고린10, 16; 1고린11, 23?26). 다음으로 「주님의 만찬」이란 명칭도 사용되었는데, 바오로 사도에 의하면 이 명칭은 성찬례(미사)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규범이며 출발점이 되고 있다(1고린11, 20). 「주님의 만찬」은 최후만찬 때와 같이 주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면서 주님을 기념하는 식사였을 것이다. 이 명칭은 미사의 식사적 특성을 잘 드러내기 때문에 종교개혁 이래 개신교에서 즐겨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사도시대 때의 미사의 명칭인 「빵의 나눔」, 「주님의 만찬」은 한결같이 미사의 식사적 특성을 드러내고 있다. 2~3세기에는 교부들에 의해 그 시대의 성체성사 신학을 반영하는 용어들이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감사」라는 의미의 희랍어 「에우카리스띠아」(Eucharistia)와 「찬미기도」의 의미를 가진 「에울로기아」(Eulogia)가 미사의 명칭으로 쓰였는데 모두 외적행동과 내적기도의 합치를 강조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구약시대부터 「감사한다」와 「찬미한다」를 같은 뜻으로 썼다. 감사와 찬미는 서로 보충하는 공통된 생각으로서 미사의 의미를 잘 드러내 주는 용어이다. 4세기에는 제사적인 측면을 나타내는 「제사」, 「봉헌」, 「제물」 등의 명칭이 많이 사용됐고 교부들의 문헌과 동?서방 전례에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문맥에 따라 성찬, 성찬음식, 봉헌행위 등 여러 가지 의미로 쓰였다.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에서는 미사의 제사성을 부인했기 때문에 일체의 제사적 명칭을 배격했으나, 가톨릭에서는 계속 제사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5세기에 와서는 오늘날 우리가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미사」(Missa)라는 용어가 로마 관습으로부터 들어오게 되었다. 「미사」(Missa)라는 뜻은 라틴어로 「파견」, 「보냄」이란 뜻인데, 로마에서는 이 용어를 황제 공식 알현이나 원로원 회의, 군대 행사 등의 집회를 마감하며 선언하는 공식 파견사의 용어로 사용하였다. 교회에서도 전례 모임에 이 용어를, 즉 예비신자 파견, 교회에서 거행된 모든 예식의 폐회식이나 폐회선언, 성무일도의 마침기도와 저녁기도의 끝부분, 강복으로 끝나는 모든 예식, 성찬 등에서 다양한 용도와 의미로 사용하였다. 그러던 것이 5세기 중엽 이후부터 축복으로 끝나는 예식 중 대표적 예식인 미사에서 고유적으로 쓰이기 시작하여 미사의 고유명칭이 되었다. 「미사」라는 명칭은 어원이나 말의 뜻으로 보아 성찬의 의미를 드러내기에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나 오랫동안 성찬의 대표적인 명칭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그 고유 명칭이 됐다. 미사에 대한 여러 가지 명칭들은 모두 미사의 중요한 요소 중 무엇인가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미사의 명칭을 모두 모아보면 자연히 미사가 지닌 풍부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2.로마 미사전례의 구성요소
1)개회식
가)입당송
5세기경에 옛 로마의 대성전에서 주례자인 교황이나 주교는 미사 성제를 지내려 성당으로 긴 행렬을 했는데 이 행렬 때에 모든 신자들은 다 함께 한 시편 전체를 읊었다. 그러나 7, 8세기에는 성당과 제의실의 구조로 된 긴 행렬이 없어지고 짧은 행렬이 시행됨으로써 입당송이 한 구절이 되었고, 간소한 미사 성제에도 입당송을 부르게 되었다. 시편이나 다른 성서에서 한 구절을 택하여 불렀다. 입당송이나 다른 노래로 대치할 경우에는 입당송을 외우지 않는다. 입당송은 대제관이신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이끄시고 하느님 아버지께서 감사와 찬미의 제사를 드리려 성전으로 들어옴을 환영하는 것을 뜻하며, 우리 모두는 우리의 구원이요 왕이신 그리스도와 그를 대리하는 주례자의 입당을 성대히 영접함을 뜻한다. 신자들이 모인 다음에 사제가 제대로 나올 때 입당 노래를 시작한다. 이 노래의 목적은 미사 성제를 시작하며 집회자들의 일치를 강화하고 신자들이 전례시기와 축제의 신비를 깨닫도록 그 마음을 준비시키고 사제와 봉사자들의 행렬에 가담하게 하는 것이다.
나)인사
①제대와 감실에 대한 인사
사제와 봉사자들이 제대 앞에 와서 감실과 제대에 경의를 표한다. 사제가 제대에 오르는 즉시 허리를 굽혀 제대에 입을 맞춘다. 제대는 그리스도, 모퉁이 돌, 교회의 기초임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최초의 제대는 최후 만찬 때의 식탁이었다. 6세기 경부터 돌로 만들어야 한다는 규정이 생겼고, 반드시 자연석을 사용한다. 제대 위에는 성인의 유해를 모신다. 그러므로 사제의 입맞춤은 예수 그리스도와 천상의 성인들과의 완전히 일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어서 사제와 신자들은 십자성호를 긋는다. 지금 드리는 미사는 성삼위를 상기시키는 뜻이 들어있다. 그리고 사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신자들에게 인사한다. 이로써 여기 모인 공동체에 주님의 현존하심을 선포하는 것이다.
②신자들과의 인사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주님으로 인해서 형성된 무리이다. 주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 공동체는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아닌 것이다. 따라서 미사를 거행하는 공동체는 시작부터 자신들의 신원이 어디에 근거하는 것인지, 어떠한 공동체여야 하는지 재확인하고 자각한다. 그 작업은 사제가 팔을 벌려 행하는 몸짓과 함께 외치는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라는 말, 그리고 그에 응하는 신자들의 “또한 사제와 함께”라는 말로 이루어진다. 함께 나누는 몸짓과 대화 구조의 상징을 통해서 공동체는 “공동체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과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하는 공동체”라는 의미를 표현하고 체험하는 것이다.
다)참회
미사 개회식에서 수행되는 참회 과정은 두 가지의 의미를 지닌다. 첫째,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가운데 하느님과의 화해 그리고 공동체의 형제들과의 화해요청이고 둘째, 이러한 화해가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로 말미암아 가능해진 것이기에 그분을 대리하는 사제이자 공동체를 대표하는 사제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안에서 자신들을 희생하며 바치는 봉헌이 그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 두 가지 의미는 하느님의 뜻에만 따르는 공동체의 의지 즉 하느님께로 향하기 위한 공동체의 회개 즉 자아포기라는 단 한가지 것의 표현인 것이다(1베드 2,5 참조). 이런 식의 참회예절 역시 지극히 상징적이다.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자비와 용서의 신비가, 그 신비에 대한 신앙의 신비가 거룩한 말과 가슴을 치는 행위로써 표현되고 체험되기 때문이다. 8세기까지는 땅에 엎드려 묵묵히 그 자세만을 취했지만 9세기경부터 죄 고백의 양식이 들어왔다. 현재는 세 가지 양식이 제시되어 있는데 그 중 하나를 골라서 한다.
라)대영광송
대영광송은 그 원천을 아마 4세기경의 그리스어나 시리아어의 아침 기도에서 부분적으로 더듬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로마에서는 500년경 성탄절의 노래로 사용하게 되었고, 서구에서는 거의 지금과 같은 형식으로 미사 중에 부활절을 비롯해서 기타 주일이나 순교자 축일에도 주교나 사제의 선창으로 모든 신자가 함께 노래한다. 현재는 사순절과 대림절을 제외한 주일미사와 지역에 따라 축일에 ‘자비송’에 이어 노래하고 있다.
마)본기도
사제는 침묵 중에 드리는 우리의 기도를 한데 모아 우리의 대리자로서 하느님께 바친다. 이 때문에 사제는 옛날부터 기도하는 사람의 자세를 본받아 두 팔을 펴고 기도한다. 본 기도는 미사의 첫 번째 기도이다. 그러므로 그날의 지향에 따라 기도가 선택되며, 공동체 전체의 기도를 요약한다. 비록 간단한 몇 마디로 바치기는 하지만 우리들의 간절한 소망이 잘 정립되어 완성된 결정체와도 같다. 또한 사제가 두 팔을 펴고 기도하는 이유는 십자가상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처럼 성부께 기도한다는 의향이 들어있다. 이것은 두 가지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우는데, 그 하나는, 사제의 기도가 모든 신자와 교회 전체의 기도라는 양면성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두 번째는 그리스도가 기도하신 것처럼 사제도 기도한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와 똑같이, 사제는 성령 안에서 성부께 기도한다.
2)말씀의 전례
가)말씀의 전례가 주는 의미
말씀의 전례는 성체성사가 행해지는 성찬전례의 준비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성찬의 전례만이 미사의 핵심이라는 뜻은 아니다. 본래 말씀의 전례가 없는 성찬의 전례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결국 그 두 가지 전례는 미사전례를 위해서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는 중요한 전례들인 것이다. 참고로 말씀의 전례만으로 특정한 예절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밝힌다.
나)독서
독서 부분은 옛날 유다인들의 경신례 관습에서 온 것이다. 히브리 사람들은 안식일에 회당에 모여 율법이나 예언의 말씀을 낭독하고 그것을 해설하였다. 교회의 초창기에는 독서의 수효와 길이가 고정되지 않았다. 150년경에 기술한 순교자 유스티노의 글을 보면, 독서자는 시간이 허용되는대로 계속 봉독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는 세 가지 독서를 규정하고 주일날 신자들에게 봉독 한다. 그 순서도 엄격히 규정되어 있다. 첫째는 구약성경이다. 그러나 부활시기에는 사도행전으로 대체될 수도 있다. 두 번째는 사도들의 편지와 저술이다. 제2독서는 전반적으로 구원사건을 체험한 첫 세대 그리스도인들이 체험한 구원의 신비를 삶을 통해서 온 몸으로 증거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한 마디로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살아야 할 신앙생활의 원본을 듣고 체험하게 해주는 내용이다.
맨 마지막으로 복음성경을 봉독한다. 독서 부분에서 가질 우리들의 자세는 하느님의 말씀을 생생하게 경청하는데 있다. 하느님이 직접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어야 한다.
다)화답송
유대인들의 회당 예식을 계속 이어가던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전통적으로 성서 낭독에 시편이나 찬가를 노래함으로써 하느님 말씀에 응답하였다. 로마에서는 독창자나 차부제가 제1독서가 끝난 후 독서대에 다가가서 독서대의 한 계단 (gradus=층계 혹은 계단) 아래에 서서 시편을 노래하였는데 이를 '층계송' (Graduale) 이라 하였다. (그래서 옛날에는 한국에서도 이 노래를 '층계송'이라 하였다) 시편 구절은 독창자에 의해 불리어졌고 신자들은 주로 시편 자체에서 가져 온 짧은 후렴으로 응답하였다. (지금은 선창자의 시편 구절 낭송을 신자들이 후렴으로 받는다 하여 한국 교회에서는 이를 '화답송'이라 개명한 듯 하다) 한 때는 매우 화려한 선율이 발전하였고, 시편 자체는 생략되기도 하였으며 시편의 노래는 잘 훈련된 성가대에 의해 연주되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시편 응송은 특별한 중요성을 가지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복구되었다. 원칙적으로 시편응송은 노래로 불리어져야 한다. 그리고 모든 회중이 환호적인 후렴을 노래하면서 참여하게 되어 있다. 시편은 독서들 중의 하나와 문맥상으로나 영성적인 관련을 가지고 있다. 많은 경우에 어떤 전례 시기를 위해서는 전통적인 시편을 사용하기도 한다. 말씀 전례는 첫 번째 독서 후의 이 노래가 불리어질 때 더 큰 생명력을 가지게 된다. 시편 독창자는 시편 구절을 아주 단순한 선율로 읽더라도 노래로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만약 음악을 구할 수 없거나 노래할 마땅한 사람이 없을 때에는 시편 구절을 사람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천천히 감정을 넣어 잘 읽어야 할 것이다. 이 노래 (화답송)는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기능을 가진다는 것을 우선 생각하고 노래하거나 낭송해야 한다.
라)복음낭독
복음 성경 봉독은 ‘말씀의 전례’에 있어서 그 중심을 이룬다. 신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말씀하시는 것으로 생각하고 존경을 표시하기 위해 일어선다. 초기에는, 동쪽을 향해 세워진 성당에서는 북쪽을 향해서 복음이 봉독 되었다. 이는 춥고 어두운 북쪽에는 암흑의 권세인 악마와 악습이 만연한 것으로 생각했고, 그러한 암흑의 권세를 복음의 말씀으로 몰아낸다는 의미로 생각한 데서 유래한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사상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으며 오히려 하느님 백성을 향하여 그들에게 희소식을 전하는 데 역점을 둔다.
마)강론
하느님의 심오한 신앙 진리를 담고 있는 성서를 설명하는 강론은 본래 신앙의 수호자인 주교만이 할 수 있었다. 후대에 와서 부제와 사제들에게 주교는 이 권한을 위임하였다. 오늘날에도 적어도 부제품을 받아야만 강론을 할 수 있다.
바)신앙고백
성서봉독과 복음봉독 그리고 그에 대한 해설들을 통해서 선포된 하느님의 구원신비를 듣고 난 후 그에 대한 공동체의 응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신앙고백이다. 이 신앙고백은 그리스도인이 맨 처음 세례로써 자신을 신앙인의 무리에 들게 해주신 하느님께 자신의 공동체신앙을 고백할 때 표현했던 내용들과 근본적으로 같다. 말하자면 세례신앙고백과 미사 중 고백하는 신앙은 내용에 있어서 하나인 것이다. 따라서 미사 중에 신앙을 고백하는 것은 또한 세례 때의 신앙을 재확인하면서 고백하는 셈이다.
사)보편지향기도
신자들의 기도의 지향에 있어서 여러 차원의 공동체에 언급할 수 있도록 ‘공동 기원집’의 지향은 네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다. 첫째 부분은 모든 교회를 위한 기도이다. 여기서 말하는 ‘교회’란 그리스도의 몸인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란 뜻이므로 하느님 백성이 된 사람, 즉 모든 신자, 교회 전체, 세계의 모든 교회를 위한 기도이다. 둘째 부분은 전인류로 시야를 넓혀 아직 하느님의 백성이 안 된, 즉 그리스도의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을 위한 기도이다. 그것은 전세계의 모든 민족, 국가, 각종 종교를 믿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평화나 구원을 기원하게 된다. 셋째 부분은 아주 구체적인 긴급하고 필요한 일을 위한 기도인데, 그것은 모든 차원의 공동체를 위한 구체적인 것이면 된다. 넷째 부분은 우리들의 공동체를 위한 것, 예컨데 본당이나 지역 공동체 또는 각종 단체 등, 여기에 속해 있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이다. 신자들의 기도로 초대하는 말과 끝맺는 기도는 집전 사제의 임무이다.
3)성찬의 전례
가)성찬의 전례 및 예식의 특징
미사 안에서 후반부에 속하는 성찬 전례는 말씀의 역할로부터 단절되는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말씀선포에 대한 목적 중의 하나이자 시작이 되는 말씀과 성찬(감사)은 사람들을 성찬의 축제에로 이끌어 주기 때문이다. 물론 성찬례는 그 자체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가 온전히 일치와 상호 관계를 이룰 때 미사는 구원의 성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미사 중에 빵과 술의 형상 안에 이루어지는 성체와 성혈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죽으심을 보여 주고 주님의 부활에 대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게 해주며 다가오는 우리의 부활을 말해주고 있고,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 상호간의 일치를 상징하고 있다. 대문에 사제는 적어도 몇 명의 신자들의 참여 없이는 성찬 제헌을 거행하지 말아야 하고, 사제는 성찬 제헌 거행을 위하여 기도로써 합당하게 준비하고 거행 후에는 하느님께 감사하기를 궐하지도 말아야 한다고 교회법전은 밝히고 있다.
나)예물 준비
성찬 전례는 먼저 예물 준비로 시작된다. 예물 준비라는 표현은 제대를 준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봉헌 성가,예물 봉헌,예물 기도까지의 예식을 가리키기 위해 만들어낸 말로서, 성찬전례의 첫 부분을 이룬다. 이 예식에서 많이 사용되는 용어는 ‘봉헌하다’ 또는 ‘바치다’라는 말인데, 이 말들은 자칫 이 부분이 감사 기도에 앞서 제물이 봉헌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교황 비오 5세(1566~1572)의 ‘미사 경본’에는 아직 축성되지 않은 예물에 대해 ‘흠 없는 희생물’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다. 그래서 새 미사 경본에서는 봉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도 예물 준비 예식을 단순화,명료화 하여 감사 기도로 시작되는 제물 봉헌의 의미가 약해지지 않도록 고려하였다. 초대교회와 2세기의 의식은 지극히 간단했다. 그 후 세월이 흐르고 교우들이 증가함에 따라 봉헌 행렬과 기도가 덧붙여졌고, 성대한 행렬을 지어서 제대 위에 예물을 바치게 되었다. 그러다가 중세 초기에는 봉헌 행렬이 사라졌다. 누룩 없는 빵이 준비되고, 신자들의 가정에는 구울 수 없게 하였다. 이외에도 여러가지 예식이 추가되었다. 그러나 모든 교우들이 빵을 함께 나누는 정신은 점차 쇠퇴하였다. 그러나 미사의 본래 의미를 상실했다는 뜻은 아니다.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로 변하여 우리들의 참된 영생의 음식이 된다는 진리는 결코 변하지 않았다. 포도주에 물을 몇 방울의 물을 떨어뜨리는 것은 아주 오래된 전통이다. 물은 신자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아듣는다. 물과 포도주를 분리할 수 없는 것과 같이, 믿음을 통하여 맺어진 그리스도와 우리와의 일치는 이토록 견고하여, 무엇으로 분리시킬 수 없음을 상징한다.
다)감사송
감사송은 사제가 그날의 축복에 알맞는 것을 선택해서 사용한다. 감사송이라고 번역된 라틴어의 ‘쁘레파씨오(praefatio)’는 마침 영광송도 포함한 감사기도의 전체 표지였다. ‘쁘레(prae)’는 시간적으로 앞서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공간적인 앞으로서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 앞에서 하느님의 구원사업을 말한다’는 의미이다. 오늘날에는 그날 복음에서 봉독된 주님의 사건과 관련된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을 감사하는 서정적인 찬미 노래로 되어 있으며, 축성기원문을 중심으로 하는 감사기도와 유기적인 관련을 지니도록 많은 감사송이 만들어졌다. 본래 이 감사송으로써 미사 성제가 시작되었다. 예수께서도 최후 만찬 때에 빵과 포도주를 들고 성부께 ‘사례’하신 후 성찬을 나누셨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사례하는 감사의 기도’이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어 우리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수난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적을 회상하며, 피를 우리에게 주심을 감사하고, 이러한 위대한 사업을 하시도록 당신 아드님을 보내 주신 천주 성부께 감사하는 것이다. 로마 라틴 전례는 축제의 시기나 현의를 부각시켜 집중적으로 감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감사송이 많은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라)성찬 기도
우리들이 미사의 신비 속으로 더욱 깊이 들어가려면, 성령이 하시는 역할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거룩한 변화 전에, 즉 성체를 축성하기 전에 사제는 천주 성부께 간구하여 이 제물 위에 성령을 보내 주십사 하고 기도 드린다. 이 기도를 바치면서 사제는 제물 위에 십자가를 긋고 두 손으로 제물을 덮는다. 이때 복사는 종을 침으로써 미사의 절정인 성변화 시간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것이다. 성령께 기도하는 시간은 비록 순간적이지만 그 속에 담긴 말은 전 교회의 간절한 소망을 한데 모은 것이다. 사제의 청원은 성당의 제대를 중심으로 모인 모든 신자들이 소망과 일치하는 청원이다. 성찬기도는 4가지 양식이 있는데
제1양식은 4세기 말에 성 암브로시오가 쓴 “성사에 관한 강화”에 제1양식의 주요 부분이 그대로 인용되고 설명되어 있음을 볼 때 대략 4세기 중엽부터 4세기 말에 걸쳐 확정되어 온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다가 5세기에 이르러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것과 같은 양식으로 고정되어 쓰였으며 그 후 그레고리안 성가의 창시자인 대 그레고리오 교황이 이 제1양식을 로마양식으로 확립한 이래 이른바 전통적인 로마양식으로 전해진다.
제2양식은 제1양식보다 짧다. 이유는 히폴리투스가 215년 경에 쓴 ‘사도전승’에서성찬 기도 중 없어서는 안될 요점을 정리해 놓은 내용이 있는데 그가 정리해 좋은 요점들이 근간을 이루는 것이 제2양식이기 때문이다.
제3양식은 로마양식인 제1양식의 특징을 간직하면서도 그 양식의 부족한 점을 보충하는 가운데 암브로시오 전례(혹은 밀라노 전례: 로마 고대전례의 하나로 이탈리아 밀라노 지역에서 사용되어 오던 것)와 6세기~11세기에 스페인과 포르투갈 지역에서 사용되었던 톨레도 전례(혹은 모자라빅 전례) 등을 살려 새로운 표현을 빌려 구성한 양식이다.
제4양식은 동방교회의 전례 전통을 투영시킨 것이다. 희랍어로 되어 잇는 성 바실리오의 성찬기도를 라틴어로 옮기면서 문장과 표현을 가다듬은 것이다.
마)성찬 제정 및 축성
“그리스도께서 최후 만찬 때 제정하신 제사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위로써 이루어진다.”(미사 경본의 총지침 55항) 이 같은 로마 교회의 가르침은 성령 청원을 통하여 성변화가 일어난다는 동방 교회의 교부들의 입장과는 차이가 있으나, 파스카 신비의 기념으로서 감사 기도의 전체 성격을 고려한다면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다. 축성 순간에 성체와 성혈을 들어올리는 행위는 미사는 제사이며 이 순간에 주님이 제대 위에 내려온다는 중세 신앙과 성체를 보고 싶어하는 신자들의 열망에 부응한 산물이다. 한편 성체 축성 후 바로 들어올리는 것은 성체 변화는 성혈 변화 이후에 이루어진다는 일부 사람들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서체 축성은 성체 변화 말씀 이후에 즉각 이루어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바)기념,봉헌
성찬 제정 말씀 중 “나를 기억하며 이를 행하라”라는 명령에 따라 그리스도에 대한 기념을 새롭게 한다. 여기서 말하는 기념이란 과거를 기억하는 차원에 그치지 않고 과거의 사건을 지금 이 자리에서 현재화 하는 것을 또 지금 이 예식에 참여하는 내가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내 것을 만든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미사에 참석한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기념하는 가운데 성부에게 깨끗한 제물을 봉헌한다. 즉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와 결합한 신자들 모두는 그리스도 안에서 산 제물이 도기를 기도하며, 성부의 뜻을 죽기까지 따랐던 그리스도처럼 성부와 일치된 삶을 사는 영적 제사를 봉헌한다.
사)주님의 기도
하나의 기도 초대문이 주님의 기도를 인도한다. 이 초대문은 아빠를 신뢰하는 아이 같은 믿음으로 한없이 크고 전능하신 하느님을 부른다는 것이 자명한 일은 아님을 깨닫게 한다. 주님의 기도는 우리에게 새로운 하느님과의 관계를 선사하시고 이 기도를 가르쳐 주신 예수님의 ‘신적 가르침’을 필요로 한다. 이에 우리는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감히 부를 수 있다. 주님의 기도의 처음 세 가지 간청은 내용상 앞의 감사기도와 관련시켜서 볼 수 있다. 여기서 하느님의 이름, 곧 하느님의 본질이 그 분의 거룩함 안에서 인정되고 찬양 받았으며 그리스도의 제사를 통해 하느님께 ‘모든 영광과 영예가 표해진’ 것이다. 여기서 파스카 신비의 현재화로 하느님 나라의 도래가 준비된 것이다. 여기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이르는 순종으로 아버지 뜻에 따르는 최고의 순종이 바쳐진 것이다. 주님의 기도가 미사 전례에 받아들여지는 데에 더욱 결정적인 구실을 한 것은 물론 특히 두 가지 간청이 영성체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고 보았다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곧 빵과 용서를 비는 간청이 그것이다.
아)주님의 기도 후 부문
이 기도문은 주님의 기도에서도 이미 드러난 것처럼 그리스도교 신앙이 창조신앙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종말신앙이라는 것을 재차 확인시켜준다. 현대 인류공동체가 모든 악의 힘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하느님의 지배로 평화가 모든 이에게 미치기를 바라는 종말론적인 기대를 넣어서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 드린다. 이것을 매듭짓는 교우들의 환호인 “주님께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있나이다”는 노래로 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사이다. 그러므로 회중이 자연스럽게 노래로써 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주님의 기도에 이어지는 후속기도도 사제가 노래로써 하도록 되어 있다.
자)평화의 인사
평화의 인사는 모든 교회를 위한 평화와 일치의 기원을 그때, 그 장소에 모인 구체적인 공동체 위에 구체화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본당의 교회, 또는 미사를 집전하는 예배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평화와 일치를 나타내고 확인하는 기도이고 인사이다. 사제에게만이 아니라 모두가 모여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하느님 아버지께 축제를 지내는 그 회중 가운데 그리스도가 현존하고 지배하고 있음을 의식하고 대답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하느님 아버지께 축제를 드리고 있는 신자 전체의 사제 그 자체 위에, 그리스도의 지배를 통한 주의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서 이다.
차)빵을 쪼갬
최후의 만찬 때 우리 주님께서는 빵을 들어 축복하신 후,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오늘의 우리들도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그대로 빵을 떼어 나누고 있다. 빵을 나누는 행위는 하느님의 어린양을 노래하거나 기도하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오늘의 미사 예식에서 사제는 동그란 큰 제병을 조심스럽게 둘로 나누어 성반 위에 둔다. 그리고 둘로 나눈 어느 한쪽에서 또 다시 조금 떼어 내어서 성작 속에 넣으므로써 빵을 나누는 예식을 마감한다. 이 예식은 역사적 형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영성체로서 그리스도 자신이신 같은 한 생명의 빵을 받아 모심으로써 한 몸을 이룬다는 사실을 표시하는 것이다. 성찬례의 빵은 그리스도와 그리고 그리스도인들 서로간의 일치를 나타내고 강화한다는 점이 드러난다. 이러한 만찬기사의 보도에서 보듯이 “빵 나눔” 예식은 미사 전례의 가장 근원적인 예식 가운데 하나이다. 유다인들은 식사 때 큰 빵을 들고 찬양기도를 바친 다음 나누면서 사랑과 일치를 다졌다. 그러한 배경에 따라 사도교회는 빵 나눔에 상당히 큰 비중을 두었다.
카)하느님의 어린 양
보통 빵을 사용하던 시기에는 빵을 나누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으므로 이 예식을 원만하게 진행하기 위하여 도입된 것이 이 노래이다. 이 찬가는 “하느님의 어린 양”이란 말로 시작하는 것처럼 아버지인 하느님이 아니고 하느님의 아들을 찬미하는 노래이다. 세례자 요한이 그리스도를 제자들에게 소개하였을 때 “보라, 하느님의 어린 양”이라고 말한 것과 같이 그리스도를 향한 기도이고, 또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를 되풀이하며 영성체할 마음의 준비를 하는 기도이다.
타)영성체
사제가 먼저 성체와 성혈을 영한다. 그러나 공동 집전자들이나 부제 혹은 성체 분배자가 제대에 있으면 그들에게 먼저 성체를 나누어 주고 그런 다음 성체를 영한다. 사제는 공동체의 신자들에게 성체를 나누어 줄 때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하고 신자들은 “아멘”하고 답하면서 받아 먹는다. 나눔의 성찬 안에서 체험할 수 있는 중요한 의미는 다음과 같다. 첫째, “그리스도의 몸” 즉 먹거리라는 성사로 당신 자신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신비 둘째, “아멘”이라는 말을 통해서 그 신비를 받아들인다는 신앙 셋째, 사도 바오로가 “우리가 그 빵을 떼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어 먹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빵은 하나이고 우리 모두가 그 한 덩어리의 빵을 나누어 먹는 사람들이니 비록 우리가 여럿이지만 모두 한 몸인 것입니다.(1고린 10,16~17)”라고 표현한 것처럼 나누어진 한분 주님과 몸과 피를 통한 공동체의 일치가 그것이다. 그래서 이 성찬을 초대교회 때부터 ‘아가페(agape)'식사라고 해왔다. 이 아가페 식사는 공동체가 세상 안에서도 증거하며 살아야 할 그러한 식사이다.
파)영성체 후 기도
성체를 모시고 하느님께 받은 은혜에 대하여 감사함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예수께서도 최후 만찬 후에 제자들과 함께 ‘알렐루야’ 시편을 바치셨다. 미사 성제 때 마지막 바치는 기도는 이처럼 감사의 정이 깃들인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영성체의 효과를 우리에게 듬뿍 주시기를 청하는 것이며, 늘 감사의 생활로 신앙을 실천할 힘을 간구하는 것이다.
4)폐회식
가)강복
사제의 말로 주어지는 미사의 맺음인 강복은 교회공동체의 정기적 집회인 주일미사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기회에 거행되는 전례 집회의 해산 때, 회중이 사회에 파견되어 각자의 사명을 다하는 데 필요한 하느님의 힘과 은총을 교회가 전달한다는 것을 보증하는 ‘말씀’과 ‘표징’이다. 옛날에는 주교님들이 미사 성제를 마치고 성당을 나가시면서 신자들에게 손을 들어 십자가를 그어 강복을 주셨고 후에 강복하는 말을 삽입하였다. 9세기경에 사제들도 제대를 떠나기 전에 강복을 주게 되었다. 이 마지막 강복의 말씀은 여러 가지 형태로 발전해 오다가(예컨데 요한 복음 첫머리를 읽음) 1955년에 현재의 규정대로 실시하게 되었다.
나)파견
미사 성제 시작에 입당송이 있듯이 미사 성제 거행이 끝났음을 성대하게 선포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미사(missa)라는 말도 유래한다. 이러한 선포 내용에는 성찬에 초대 받아 그리스도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적 일치를 이루어 미사 성제로써 힘을 얻은 우리는 공동체적 사명 의식 속에서 세상에 나가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분의 복된 소식을 모든 이에게 전하기 위하여 사도로서 파견된다는 것을 명심케 하는 것이다.
Ⅲ.나가는 말
우리는 지금까지 미사 성제에 대한 것을 알아보았다. 성찬례는 모든 전례와 마찬가지로 감각적 표지로 이루어지며, 하느님 현존의 가시적인 표징으로서 그 행위마다, 그 말마디마다 각각 커다란 의미를 함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때문에 미사 중 제사를 드리는 사제가 말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은총의 목소리이며, 사제가 행하는 한 동작 한 동작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해방시켜주시고자 하는 사랑의 모습인 것이다. 이렇듯이 미사는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미사 성제에 대한 의미를 얼마나 알고 있으며, 그 안에 담긴 신비를 얼마나 체험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그저 의무이니까 맹목적으로 미사에 참례하고 있지는 않는지 그리고 영성체 역시 형식적으로 하고 있지는 않는지 반성해 보아야 하겠다. 레포트를 통해 미사에 담긴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미사는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구원 신비를 다시금 되새기고, 지금 이 자리에서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다. 미사를 통해 주님의 그 사랑을 깊이 깨닫고 미사 한 부분, 한 부분에 담긴 의미를 생각하며 정성스럽게 미사에 참례해야 하겠다. 이런 습관을 통해 훗날 내 자신이 미사 성제를 드리게 될 때, 그 미사는 더 깊은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