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헌의 삶을 살아야 할 레지오 단원들에게

2005. 5. 22. 오전 5:33:50

글자

봉헌의 삶을 살아야 할 단원들에게

<김희숙·마리아 제수이나 수녀>

 

어느 날 로사리오 기도를 묵상하다가 이런 의문이 생겼습니다. 성모님은 정말로 자신의 뱃속에 든 아이가 그것도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는데 그 하느님의 아들이 정말 마구간에서 태어나기를 바랬을까?

성모님도 여느 산모들이 그렇듯이 설레이는 마음으로 아기의 출산을 준비했을텐데, 아기가 태어날 따뜻하고 깔끔한 나자렛집 안방, 배내옷, 장난감, 기저귀 등등.

이런 설레임으로 출산을 준비하는 성모님은 로마 황제 아우구스토의 호구 조사령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보통 산모들은 출산일을 대충은 짐작한다고 했는데….

성모님은 전혀 몰랐을까? 호구 조사령에 출산이나 병같이 예외적인 경우에 유예 기간이라는 것은 없었을까? 성모님은 그런 자신의 몸으로 먼 길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 무모하게 생각되지는 않았을까? 등등 여러 의문들을 아주 곰곰히 생각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기도 중에 성모님의 마음을 하나 하나 짚어가면서 저는 아주 놀라운 성모님의 순명 정신, 완전한 봉헌의 삶에 대해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른다는 것은 때로는 하느님의 계획이 내가 하느님을 생각하는 그 계획보다 훨씬 초라하고 보잘것없어 보여도,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사랑이고 순명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성모님은 자신의 처지에서 불평보다는 무거운 몸을 나귀에 싣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예루살렘을 향할 수 있었던 것은 언제나 나의 계획보다 하느님의 계획을 따르고자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도 일상의 삶 안에서 언제나 좋고, 크고, 위대한 것을 행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잘 것 없는 말 한마디, 미소 한 번, 냉수 한 컵을 건네는 단순한 행동이라도 이것이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행할 수 있다면 바로 성모님처럼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자들의 봉헌의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느 신부님의 혼배 주례 강론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남남이 만나 둘이 하나가 되는 부부의 삶을 시작하는데 하나가 되려면 서로가 반죽음을 각오해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죽을 줄 알 때 하나가 된다는 말씀이었는데, 죽을 수 있게 해주는 아주 큰 힘은 바로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사랑이 없이 맹목적으로 상대방에게 죽을 수는 없습니다. 성모님을 따르는 삶에서도 언제나 바치고, 봉헌하고, 극기하고, 희생하고, 하고, 하고, 하고, 끊임없이 뭔가는 해야 한다는 생각 속에서는 올바른 봉헌이나 애덕이 솟아 날 수 없고 의무와 규율만 힘겹게 느껴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기쁘게, 그리고 완전하게 봉헌할 수 있는 길은 바로 성모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봉헌했다는 것은 곧 사랑하는 사람의 것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과 비슷하게 되는 것 말고 더 바라는 무엇이 없다고 합니다. 성모님을 사랑하는 레지오 단원이라면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처럼 닮고자 하는 마음보다 더 큰 봉헌은 없을 것입니다. ]

-서울대교구 지속적인 성체조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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