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의 신앙과 은총
신앙은 인간의 응답, 과제, 투신이기 이전에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총의 선물입니다.
예수님의 수태(탄생) 고지 중에 마리아는 주님의 천사를 통해서 세 가지 중요한 하느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 “기뻐하여라”, “은총을 가득히 입은 이여”,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기쁨과 은총 및 주님의 현존, 이 세가지 선언들은 서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현존이 곧 은총이고 현존과 은총은 우리 기쁨의 원천입니다.
“은총을 가득히 입은 이”라는 인사말은 하느님이 천사를 통해 마리아에게 주시는 새 이름과도 같습니다.
예수님이 임마누엘 즉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이라는 별명을 미리 얻으신 것처럼 마리아도 그 같은 별명을 천사를 통해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받으신 것입니다.
은총은 마리아의 존재 및 생활방식 처럼 되었습니다. 마리아는 온통 은총으로 치장되셨습니다. 마리아의 인격과 삶은 은총에 젖게 되셨습니다. 은총을 우리는 막연한 것, 추상적인 것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은총은 생생하고 구체적이며 인격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은총을 받았으면 우리 안에서 실제로 인격적 변화가 생깁니다. 마리아가 탄생 예고 때 하느님으로부터 받으신 그 충만한 은총은 신적 모성으로 구체화되었습다.
말하자면, 마리아는 ‘신적인 모성’이라는 은총의 선사받으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리아가 탄생예고 순간에 받았던 구체적이고 충만한 은총이며, 그 결과 마리아 안에서 인격적 변화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즉 하느님의 은총은 실제로 하느님의 총애를 받는 자, 진정 하느님을 믿는 자로 변화시킨입니다. 이 순간에 마리아가 보여준 신앙은 일차적으로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 얻게 된 신앙이고, 그 같은 신앙은 마리아로 하여금 무엇 보다도 하느님에게서 오는 모든 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줄 아는 신앙이었습니다.
신앙은 하느님께 무언가를 드리는 것이기 보다는 먼저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제대로 받은 것을 나중에 줄 수 있을 뿐입니다. 신앙은 먼저 하느님을 위해서 놀라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서 위대한 일을 하시도록 우리 자신을 하느님께 내맡기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예수님이 마리아와 마르타 두 자매를 방문하신 에피소드를 음미해 보아야 합니다.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이다”(루가 10, 38). 이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마리아를 두고 주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결코 마르타의 음식 시중을 배척하지 않으셨지만 어떤 일을 먼저 해야 하며, 어느 것이 더 중요한 일인가를 즉 일의 순서를 분명히 밝히신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찾아온 것은 너를 보기 위한 것이다. 너와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이다.” 예수님의 이 의도를 마리아는 알아들은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시고자 한 것을 받은 후에는 당연히 그것을 되돌려 줄 수밖에 없습니다. 왜 우리는 그것을 돌려 드리지 못합니까? 그것은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아들인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주셨지만, 우리가 받을 그릇이 못되니까 실제 받은 것은 없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대로 받아야 합니다.
신앙은 주기 전에 하느님께로부터 받는 것이요, 또한 제대로 받아서 그것을 그분께 되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베풂은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의 열정에서 나오는 행위여야 합니다.
이처럼 마리아의 모성은 하느님께서 전적으로 베푸시는 구체적인 은총의 결과이기에 그녀는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손 안에 있는 도구이지만, 하느님은 마리아의 자유롭고 인격적인 신앙으로부터 나오는 그녀의 응답을 기다리시고 마리아는 “저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는 응답하십니다. 이리하여 하느님의 구원계획이 한 인간에 의해 온전히 수락되고 수용됩니다. 이것이 신앙에서 나오는 봉헌이며 순종의 자세입니다.
결론적으로, 마리아의 신앙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주도권에서 나온 결실 곧 은총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그 신앙은 베풀기 전에 먼저 받아들일 줄 아는 신앙, 그리고 나아가 자신을 줄 줄 아는 신앙입니다. 하느님께서 먼저 마리아를 믿고 신뢰하셨기에 그 결과 마리아는 하느님을 믿고 신뢰할 수 있었다. 이것이 은총입니다. 마리아는 그처럼 은총에서 생겨난 신앙 안에서 하느님께 더욱 신뢰하고 자신을 아낌없이 봉헌할 수 있었습니다.
마리아의 신앙은 ① 전적으로 하느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은 구체적 결실이고 ② 그녀가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주고자 하는 모든 것을 제대로 온전하게 받아들인 결실이며 ③ 자기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바치는 봉헌 및 순종입니다. 우리는 은총에서뿌리를 둔 마리아의 신앙을 배워서 우리도레지오 활동을 통해 ‘더 큰 신앙의 은총’을 간구해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