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터넷 사이트에 어느 여학생이 용기 있게 올린 글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자살을 시도해보셨는지요? 저는 너무나 많은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제 또래의 다른 학생들처럼 공부 스트레스가 아닌 내가 살아있는 그 존재가 싫어서,
내가 인간으로 태어난 것 그 자체가 싫어서 많은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수면제를 모아서 먹어 본 적도, 화장실에서 수건으로 목을 졸라 맨 적도, 밥과 물을 아예 먹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심한 술주정뱅이 아버지 때문에 저희 집안은 항상 싸움이 가득합니다.
어디서 들어보지도 못한 그런 심한 언어가 오가는 부모님의 잦은 싸움을 보면서 저는 자랐습니다.
또 저보다는 친척 조카들을 더 사랑하시는 모습,
저와 제 동생의 학비는 아까워하시면서 친척 오빠가 대학교 들어갔다고 거기에는 학비를 보내신 다네요.
이런 아버지... 저는 정말 싫어했습니다. 지금도 편한 마음은 아니에요.
그런데 어머니는 제가 아버지에 대해 나쁜 말을 할 때마다 “그래도 너희 아버지이시다.
널 이 세상에서 태어나게 해 준 고마운 분이셔.”하시면서 저를 타일러주십니다.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화도 내보고 짜증도 내봤지만 지금은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한국에서나 이 먼 카타르 땅에서나 저보다 더 오랜 세월을 아빠한테 핍박 받으며 살아오신 걸 알기에
아빠를 미워하지 말라는 엄마의 말을 실천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살기로 마음먹었어요. 더 이상의 자살 시도는 하지 않으려 합니다.
제가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무엇인가를 잘 할 때 표는 내시지 않지만 너무 좋아하시고
그거 하나 바라보고 사시는 제 어머니를 위해서 아버지를 용서해보려 합니다.
이젠 제 삶을 똑바로 살려고 합니다. 열심히 살려고 합니다. 힘내고 열심히 살게요.」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곧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이면 누구나 좋든 싫든 간에 각자에게 삶의 십자가가 하나씩 주어진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누군가 내 십자가가 너무 버겁다고 중간에 그 십자가를 놓아 버리면
결국 내 주변 사람들 중 누군가가 내 십자가까지 짊어지고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예수님께서 또 다시 내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고 골고타로 걸어가야만 하시겠지요.
십자가는 내 육신의 일부와 같습니다.
내 팔과 다리가 나를 힘들게 한다고 그것을 떼어 버릴 수 없듯이
십자가는 하느님 앞에 갈 때까지 내가 부둥켜안고 가야할 내 몫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십자가를 통해 삶의 희망을 발견해야 합니다.
너무나 힘겹고 고통스러워서 희망이란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희망은 반드시 존재합니다.
앞서 글로 소개했던 여학생이 어머니를 통해서 삶의 희망을 얻듯
우리 신앙인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희망을 찾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멍에가 가볍고 편하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번 한 주도 힘들고 버겁겠지만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내 삶의 십자가를 기쁘게 짊어지고 가야 하겠습니다.
유영욱 프란치스코 신부
「혹시 여러분은 자살을 시도해보셨는지요? 저는 너무나 많은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제 또래의 다른 학생들처럼 공부 스트레스가 아닌 내가 살아있는 그 존재가 싫어서,
내가 인간으로 태어난 것 그 자체가 싫어서 많은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수면제를 모아서 먹어 본 적도, 화장실에서 수건으로 목을 졸라 맨 적도, 밥과 물을 아예 먹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심한 술주정뱅이 아버지 때문에 저희 집안은 항상 싸움이 가득합니다.
어디서 들어보지도 못한 그런 심한 언어가 오가는 부모님의 잦은 싸움을 보면서 저는 자랐습니다.
또 저보다는 친척 조카들을 더 사랑하시는 모습,
저와 제 동생의 학비는 아까워하시면서 친척 오빠가 대학교 들어갔다고 거기에는 학비를 보내신 다네요.
이런 아버지... 저는 정말 싫어했습니다. 지금도 편한 마음은 아니에요.
그런데 어머니는 제가 아버지에 대해 나쁜 말을 할 때마다 “그래도 너희 아버지이시다.
널 이 세상에서 태어나게 해 준 고마운 분이셔.”하시면서 저를 타일러주십니다.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화도 내보고 짜증도 내봤지만 지금은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한국에서나 이 먼 카타르 땅에서나 저보다 더 오랜 세월을 아빠한테 핍박 받으며 살아오신 걸 알기에
아빠를 미워하지 말라는 엄마의 말을 실천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살기로 마음먹었어요. 더 이상의 자살 시도는 하지 않으려 합니다.
제가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무엇인가를 잘 할 때 표는 내시지 않지만 너무 좋아하시고
그거 하나 바라보고 사시는 제 어머니를 위해서 아버지를 용서해보려 합니다.
이젠 제 삶을 똑바로 살려고 합니다. 열심히 살려고 합니다. 힘내고 열심히 살게요.」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곧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이면 누구나 좋든 싫든 간에 각자에게 삶의 십자가가 하나씩 주어진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누군가 내 십자가가 너무 버겁다고 중간에 그 십자가를 놓아 버리면
결국 내 주변 사람들 중 누군가가 내 십자가까지 짊어지고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예수님께서 또 다시 내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고 골고타로 걸어가야만 하시겠지요.
십자가는 내 육신의 일부와 같습니다.
내 팔과 다리가 나를 힘들게 한다고 그것을 떼어 버릴 수 없듯이
십자가는 하느님 앞에 갈 때까지 내가 부둥켜안고 가야할 내 몫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십자가를 통해 삶의 희망을 발견해야 합니다.
너무나 힘겹고 고통스러워서 희망이란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희망은 반드시 존재합니다.
앞서 글로 소개했던 여학생이 어머니를 통해서 삶의 희망을 얻듯
우리 신앙인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희망을 찾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멍에가 가볍고 편하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번 한 주도 힘들고 버겁겠지만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내 삶의 십자가를 기쁘게 짊어지고 가야 하겠습니다.
유영욱 프란치스코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