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론과 진화론

2006. 11. 10. 오후 8:14:29

글자

(교리교안 자료)

창조론과 진화론

임진선 (가톨릭대학교 종교학과 대학원, 교리교육전공)

지도교수: 김웅태 신부

 

 우리 모두는 실로 우리 주위를 둘러싼 자연계의 경이로움에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하는 찬송가가 절로 나올 때가 있습니다. 또한 자연계의 일부인 우리 인간 자신의 오묘함이야말로 놀라움의 느낌 없이는 바라볼 수 없을 것입니다. 과연 우리를 둘러싼 이 모든 것들은 초월적인 절대자가 절대적 권능으로 마치 도공이 흙으로 그릇을 만들 듯이 만들어 내었다고 생각해야할까요? 아니면 오랜 시간의 변천과정을 통하여 진화하는 형식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요?

 

1.  천지창조

 구약성서 창세기의 서두는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내셨다"(창세 1, 1)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늘과 땅'은 과학적인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표현해 주는 말입니다.  하여튼 있다는 '모든 것', 우리가 감각해 낼 수 있는 그 모든 것은 다 하느님으로부터 생겨났다는 뜻입니다.  스스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시작을 가졌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창조라는 것은 아무런 재료가 없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 전에 무엇인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있었다면 오직 하느님 무한하신 분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로서는 생각해 낼 수가 없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하느님은 우리가 개념지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 만물이 어떤 모양을 갖추고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창조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결국 하느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은 무로부터 창조하신 것을 의미하고 따라서 인간 이성으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고 자연과학에서도 증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 3절에서 25절까지는 "--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라고 나옵니다. 즉 하느님의 말씀으로 창조되는 사물들이 나오는데 여기서 하느님의 말씀이란 단순히 입에서 뱉어지는 말만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생각하고 계시던 그 무엇이 구체화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창조되는 모든 사물 하나하나가 하느님의 의지행위에 의해서 세상이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의지는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느님은 끊임없이 세상을 창조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학이 밝혀낸 생물들이 진화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진화과정 안에는 전능하신 하느님의 계속적인 창조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2.  인간창조

 계속해서 창세기 1장 26절 이하를 보면 우리와 직접 관계되는 문제 즉 사람은 어디서 나오고 왜 나왔느냐에 대해서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창조는 하느님 창조사업의 절정입니다.  인간 창조에 관한 이야기 속에는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원초적인 계획이 드러나는데 3가지 중요한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첫째로, 사람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겉모습이 닮았다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본질을 닮았다는 의미입니다. 흔히 우리가 누구를 닮으려고 한다는 것은 겉모습을 닮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됨됨이, 행실, 마음을 닮으려고 하는 것으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을 닮았다는 것은 자기의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이성적인 능력과 선악을 판단하여, 행동할 수 있는 양심 그리고 그 행동의 결과에 책임지는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양심 그리고 그 행동의 결과에 책임지는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는 점에서 진, 선, 미 자체이신 하느님을 닮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어떤 피조물보다도 그 안에 존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창조물 중에서도 최고 걸작이며 당신의 모습을 닮은 인간에게 당신의 창조물과 세상을 '다스리고 보존하는 책임'을 부여하신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선악을 알고 무한으로 비약하려고 하는 인간의 마음은 인간 스스로에게서 생겨난 것이 아니고 이미 그렇게 되어 졌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암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둘째로,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남녀의 구분은 오직 하느님의 뜻으로 그래서 남자와 여자가 상하의 관계가 아닌 횡적인 뜻으로, 다르게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남녀 평등권이 이미 성서 안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하와'의 특별한 창조 이야기는 남성과 여성이 모두 창조주의 특별한 배려로 창조된 것임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자와 남자가 본질적으로 유사하다는 진리를 극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데 창세기가 쓰여질 당시 사회는 남존여비의 사조가 두드러져서 여자는 남자의 소유물에 불과했습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인간은 하느님의 뜻을 거역해 온 거지요. 창세기의 저자는 분명히 여자도 하느님께서 창조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째로, 인간은 세상을 통치하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뜻입니다.  "하늘과 바다와 땅 위의 모든 것을 다스리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위임을 받고 세상을 통치할 영광을 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의 주인은 인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주를 개척한다는 것은 바로 인간에게 주어진 당연한 의무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회는 역사 안에서 실수를 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면 1,600년 무렵 당시 종교 재판소는 당시 최고 과학자인 갈릴레오를 체포하여 고문해서 지동설을 강제로 포기하도록 강요하였고 또 갈릴레오의 학설을 지지하던 캄파네라라는 사람은 일곱 번이나 체포되어 고문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는 계시된 진리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당시 교회의 실수였습니다. 인간이 밝혀낸 과학적 진리 안에 담겨져 있는 하느님의 진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과거의 잘못을 시인하면서 세상을 개척하려는 인간들의 행위에 하느님의 창조가 파괴되지 않는 한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선한 노력 속에는 하느님의 창조행위가 끊임없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란 이름으로 모든 피조물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창세기 1장 26절의 '다스리다(RADAH)'라는 동사는 가축을 지배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목자가 가축을 돌보듯이 보호한다는 뜻이 더 강합니다.  따라서 인간은 피조물 그것이 생명체가 아니더라도 사용하는 기준이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당신 모상대로 창조하시면서 인간에게 당신 창조물과 세상을 다스리고 그러면서도 보존하는 책임을 부여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진정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자인 것입니다.

 

3. 하느님 나라의 완성

하느님 나라의 완성에 대한 연구는 인간의 미래에 대한 궁극적 관심에 초점이 집중된다. 인간은 정신적으로 하느님을 인식할 수 있고 육체적으로는 모든 물질세계의 정점에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 나라의 완성은 곧 인간이 완성될 날에 대한 희망이며 그것은 인간에게 주어질 영원한 행복에 대한 희망이라고 볼 수 있다. 성서의 사상은 바로 이러한 하느님 나라의 완성에 대한 일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하느님의 나라는 궁극적으로 정의와 사랑이 깃든 나라라고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과 우주 그리고 인간을 비롯한 모든 창조물들이 언젠가는 하느님의 뜻대로 완성될 날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들은 모두 어떤 존재의 목적을 갖고 있으며, 어떤 일에 유익을 주거나 쓸모 있게 된다. 태양, 물, 공기 등은 인간과 모든 생물들의 생존에 필수불가결의 물질이다. 그리고 산과 들에 있는 식물들, 동물들, 공중의 새들 바다 속의 물고기들 그리고 땅속의 광물들 등,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삶에 유익을 줄 뿐 아니라 서로 서로의 생존을 위한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들은 하느님의 뜻대로 창조되어 하느님의 의지와 선성이 함께 깃들어 있는 것이다.  물질들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한계를 항상 갖고 있다. 그리고 태어남과 죽음의 법칙 속에 매어져 있다. 꽃이 필 때가 있는가 하면 꽃이 질 때가 있고, 태어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이 법칙에서 제외되는 것이 없다.

 지구상에 존재했다가 사라져간 생물들의 종류가 무수히 많다. 과학적으로 지구가 생성된 것이 45억년 전으로 추정되는데 이 지구상에 존재했다가 소멸된 공룡들, 식물들이 있고 새로이 나타나는 종류의 존재물들도 있게 된다. 태양도 하나의 물질이라면 언젠가 태양도 식을 때가 올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면 태양계를 형성하던 주위의 위성들도 힘의 균형을 잃고 어디론가 사라져 갈 것이며 또 지구도 그렇지 않겠는가? 과학적으로도 이러한 현재상태의 종말이 언젠가는 올 것임을 추측할 수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께서 당신이 손수 만드신 이 모든 물체들에게 그 존재의 목적을 이루고 마침내는 당신 뜻대로 완성하실 날이 올 것을 믿는 것이다.  

하느님 나라의 완성이 어떻게 이루어질 지는 알 수 없지만 계시를 통해 밝혀진 뜻을 헤아릴 수는 있을 것이다. 하느님은 인간을 천사보다는 못하게 만드셨으나 물체의 형상을 지닌 모든 피조물보다는 우월적인 존재로 만드셨는데 그것은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하느님 나라의 완성에 대한 연구는 인간의 미래에 대한 궁극적 관심에 초점이 집중된다. 인간은 정신적으로 하느님을 인식할 수 있고 육체적으로는 모든 물질세계의 정점에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 나라의 완성은 곧 인간이 완성될 날에 대한 희망이며 그것은 인간에게 주어질 영원한 행복에 대한 희망이라고 볼 수 있다.

 성서의 사상은 바로 이러한 하느님 나라의 완성에 대한 일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하느님의 나라는 궁극적으로 정의와 사랑이 깃든 나라라고 볼 수 있다. 구약성서에 나타난 하느님의 심판과 정의 그리고 신약성서에 나타난 예수의 하느님 나라에 대한 기쁜 소식은 그것을 듣는 이로 하여금 하느님 나라를 위한 결단을 촉구하면서 회개와 사랑의 삶에로 초대한다. 인간과 우주의 역사는 하느님의 구원경륜이 이루어지는 장(場)이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등장으로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너희에게 와 있다"(마태 12, 18)고 선포하시며 "회개하고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일 것"(마태 4, 17)을 촉구하신다. 하느님 나라의 완성은 미래에 궁극적으로 이루어질 것이지만 예수의 가르침을 통해보면 예수의 가르침을 듣는 바로 '지금 여기서(Hic et nunc) 시작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되기에 하느님 나라를 위한 현재의 결단과 한결같은 삶은 결국 미래에로 이어지며 그것은 곧 '지금 여기서'부터 하느님 나라를 체험하는 종말론적인 성격을 띠는 것이다.

 우리 인간도 다른 생물처럼 죽지만, 이 죽음을 통해 인간의 삶이 종결되고 각자 개인 삶의 모습이 하느님의 뜻에 의한 완성의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은 당신 뜻대로 삶을 영위한 이에게는 천상축복을 마련하셨고, 당신의 뜻을 저버린 인간에게는 당신 정의의 심판을 내리실 것이라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이다.

 

⊙ 하느님은 창조주이시다.  

 하느님은 '무'로부터 '말씀'으로 온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이유는 어떤 필요성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선하심을, 즉 당신의 생명과 선하심을 이 세상 인류와 함께 나누기 위해서 드러내신 사랑인 것입니다.

 ⊙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된 모든 것은 좋은 것이다.  

 착하고 선하신 하느님께서 보고 좋아하고 감탄할 정도로 좋은 것입니다.

 ⊙ 사람도 하느님의 창조물이다.  

 하느님은 특별히 사람을 '당신의 모습'대로 당신의 숨을 불어 넣어 만드시고 이 세상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사람은 하느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하느님의 뜻에 맞는 세상을 건설할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창조의 대행진에서 벗어난 인간의 행동은 창조주의 뜻을 어기는 것입니다.

 ⊙ 창조된 세계는 현재도 하느님께서 지배하고 계신다.  

 즉, 한번 창조하심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섭리에 의해서 질서와 목적 아래 유지되어 일정한 방향을 향하여 계속적인 진행이 만물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창조란 하느님께서 당신 사랑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진화이냐 창조이냐 하는 흑백논리로 구분하기보다는 '진화도 곧 창조'인 것입니다.

  ⊙ 과학자는 "생물의 다양성은 다양한 환경에 대한 반응인 동시에 상이한 생활양식의 기회들에 대한 반응이다" 라고 말하고 창조론자들은 "변이 혹은 다양성은 꽃의 아름다움, 갖가지 새들의 노래, 동물의 여러 가지 재미있는 행동을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나타내려는 창조주의 욕망의 표현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참고문헌)

- 김웅태, [5분명상교리], 가톨릭출판사, 1995.

- 가톨릭 교리마당의 자료들: (http://my.dreamwiz.com/jutkim)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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