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이 왜 존재할까요?- 중 고등부용 -

2006. 11. 10. 오후 8:12:49

글자

(교리교안 자료)

- 중 고등부용 -

악이 왜 존재할까요?

 

함정민 (가톨릭대학교 종교학과 대학원, 교리교육 전공)

지도교수: 김웅태 신부

 

 ● 기도로 열기 :  청소년 성가 250번  '주 하느님 크시도다.'

 ●들어가기 :

하느님은 이 세상과 온 우주 만물을 질서 있고 선한 세계로 창조하셨고 사랑으로 우리를 다스리고 계신다. 하느님께서 지혜와 섭리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만물에는 질서가 있으며 하느님의 선하신 의도로 태어난 피조물은 하느님으로부터 선을 나누어 받고 있다. 우리는 그런 하느님의 선물로서의 선을 항상 느끼고 함께 한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 선이 아닌 악과 부조리와 만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악과 부조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 바라보기 :

  ① 내가 느꼈던 악과 부조리는 어떤 것이 있는가?

  ② 그때 느낌은?

  ③ 질서있고 좋은 세계의 창조주이신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돌보신다면 왜 악과 부조리가 존재하는 것일까?

  ④ 그렇다면 왜 하느님께서는 처음부터 악이 없는 완전한 세계를 만들지 않으셨을까?

 ● 알아보기

·③ 선과 악의 공존1) : 이 세상에는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다.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밀과 가라지의 비유'(마태 13, 24-30)에서도 밀과 가라지는 추수 때까지 공존한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완전한 상태로 만들었다기보다 각 사물들이 자신의 본성을 가지고 보다 완전한 상태로 나아가는 '진행의 상태'로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이러한 계획에 따라 보다 더 완전한 것을 향해 가는 과정 중에 생성과 소멸, 건설과 파괴의 과정을 겪게 되며, 물리적 선과 물리적 악이 공존하게 된다.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들 중에 지성과 자유 의지를 가진 천사와 인간은 자유로운 선택과 더 나은 선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의 궁극적 목적을 향해 가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 참고) '하느님, 왜 우리를 만드셨고 그리고 왜 죽도록 버려두시나요?'2)

·④ 악의 허용 : 하느님은 인간을 좀 특별한 존재인 하느님의 형상을 닮은 인격적인 존재로 창조하셨다. 즉, 우리를 로봇으로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인간이 죄를 지을 것을 두려워해서 로봇처럼 인격도 없는 존재로 만들고 필요에 따라 보턴을 눌러서 "하느님, 싸랑해요" 라는 고백을 하게 했다면 그것보다 우스울 것은 없을 것이다. 만약 인간인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이 죄 지을 것을 두려워하여 아기를 낳지 않고, 보턴만 눌르면 "엄마,아빠. 사랑해요" 라는 고백을 하며 밧테리가 끊어지거나 보턴을 꺼버리면 죽어(?) 버리는 그런 아들을 원하는 부모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느님도 인간을 인격적인 존재로 창조하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하느님과 인격적인 사랑의 교제를 나누자는 것이다. 물론 타락하고 하느님을 배반하고 자기 멋대로 할 위험이 없이는 완전한 선택의 자유를 가진 인격적인 존재를 창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지성과 자유를 지닌 피조물인 그들은 그릇된 길을 갈 수도 있다. 실제로 그들은 죄를 지었다. 그리하여 세계에는 물리적 불안전함(자연악)과 비교할 수도 없는 중대한 윤리·도덕적 악(죄 : 질병, 고통, 죽음, 고역, 산고 등과 자연악의 원인들)이 들어오게 된다.  이제까지의 가장 큰 윤리적 악은 모든 인간의 죄가 하느님의 아들을 배척하고 죽인 일이었다. 하느님은 이 악에서 그리스도의 부활 영광과 우리의 구원이라는 선을 끌어 내셨다.

 

● 정리하기와 살아가기: 하느님의 전능하심과 악과 부조리에 대해 자신이 느낀점 이야기하기.

① 에서 나눴던 내가 느낀 악과 부조리에 대해, 지금 느끼는 점?

② 에서 말했던 것과는 어떻게 틀린가?

 앞으로 어떻게 생활해 나갈 것인가 나누고, 실천하기.

 

● 더하기 :  욥기 읽기

● 기도로 닫기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최상의 선이시므로, 만일 악 자체에서 선을 이끌어내실 충분한 능력과 선하심을 가지고 계시지 않다면, 당신의 피조물들 안에 어떠한 악도 존재하도록 방치하지 않으실 것이다.3)

 참고)

하느님, 왜 우리를 만드셨고 그리고 왜 죽도록 버려두시나요?

상희는 잔디밭에 누워서 푸른 하늘에 두둥실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있었습니다. 상희의 입에서 노래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푸른 하늘이 활짝 열렸어요.

온 세상 어린이들이 이슬 맺혀요.

마음을  터놓고 얘기꽃 피우며

따뜻한 우정을 나누고 있어요.

 

하얀 구름이 둥실 떠가고

예쁜 새 덩달아 춤을 춥니다.

 

온세상이 가만히 있을 때에도

온세상이 움직일 때에도

나는 사랑하겠어요.

 

내가 그들의 가슴에 기대고

그들이 내 가슴에 기댈 때까지.

 

"상희야."

친구 연정이가 다가와서 불렀습니다.

"여기 혼자서 무얼 하고 있니?"

"나? 하늘을 보며 노래를 부르고 있어."

"그럼 나는 땅을 보며 노래해 볼까?"

상희가 말했습니다.

"그것 참 좋은 생각인데! 그래, 어디 노래를 불러 보렴."

연정이는 엎드려서 한참 곰곰이 생각하다가 노래를 불렀습니다.

 

나를 쉬게 해 주는 풀은

나를 껴안아 주는 이 꽃은

고향이 어디일까?

 

꽃아 꽃아

너는 왜 나다니지 않고 이 곳에서

꼼짝않고 사니?

무얼 먹고 사니?

흙을 먹고 사니?

 

참 이상하다.

어떻게 흙을 먹고 살아갈 수 있니?

흙은 무엇이길래 꽃과 풀을 먹일까?

 

상희가 옆에서 듣고 있다가 말했습니다.

"그게 무슨 노래야? 전부 질문이다, 얘."

"아냐, 땅과 대화하고 있는 거야. 노래가 아니라도 좋아."

"마음대로 하렴."

"그런데 상희야. 넌 이상하지 않니? 이 꽃들과 풀이 죽은 흙을 먹고 살아간다는 거야."

연정이는 깊은 생각에 빠진 듯 눈이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죽음을 먹고 산다?

사실 그러고보니 우리도 온통 죽음을 먹고 살아가는 구나.

김치도, 깍두기도, 쇠고기도, 돼지고기도, 생선도 모두 죽은 것을 우리는 먹고 살지 않니?"

상희가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래, 그러고 보니 네 말이 맞아. 죽음이 없으면 살 수도 없겠구나!"

침묵이 흘렀습니다.

상희는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고, 연정이는 엎드려서 땅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상희와 연정이, 그리고 하늘과 땅, 죽음과 삶이 어우러져 우리가 되었습니다.

하느님도 상희와 연정이 사이에서 대화하고 있었습니다.

평화의 나라....

사랑의 나라....

누가 보아도 아름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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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서적)

1) 김웅태, [구원하시는 하느님], 가톨릭 출판사, 1999, 98-99쪽

2) 박대웅, [하느님 왜 가난한 사람에게는 슬픔만 생기고 부자는 기쁜 일만 생기나요?], 도서출판 형성사, 1990, 57-66쪽

3) 성 아우구스띠노, "교리 요강 - 신앙과 희망과 사랑", 11,3  재인용

(2001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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