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악과 부조리 안에서도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2006. 11. 10. 오후 8:11:43

글자

(교리교안 자료)

세상의 악과 부조리 안에서도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임진선 (가톨릭대학교 종교학과 대학원, 교리교육전공)

지도교수: 김웅태 신부

 

1. 고통받는 인간

   우리는 과거에나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굶주림과 질병들로 인해 많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비단 굶주림과 질병 말고도 우리는 사회 안에서 자동차 사고, 화재 등 자신과 관계없는 고통 또한 당하고 있습니다. 흔히들 인생살이는 '고통의 바다'라고 말합니다. 인생의 본래의 의미를 선이라고 할 때, 죄, 죽음, 불안, 질병, 가난, 천재지변 등은 악의 요소로 간주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악의 요소들이 인간을 괴롭히고 못살게 굽니다. 이러한 고통들 속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하느님이 선하신 아버지라면 이 괴로운 인생고를 못 본 채 하시는가?" "의인들은 어째서 더 심한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어째서 의인이나 악인들이나 똑같이 죽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그리스도교는 어떻게 해답하고 있는지 알아보도록 합시다.

 

2. 고통의 기원

   이 세상의 고통과 죽음은 '죄'로 말미암아 들어왔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한 사람이 죄를 지어 이 세상에 죄가 들어왔고 죄는 또한 죽음을 불러들인 것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죽음이 온 인류에게 미치게 되었다"(로마 5,12)고 가르치셨습니다.  쉽게 말하면, 인생의 모든 악한 상황들이 생기고 만연하게 된 원인은 하느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인간은 천지창조 때부터 저질러 온 모든 죄악, 거기다가 내가 알게 모르게 저지른 죄악이 우리와 우리 집안, 이 나라와 전 세계의 불행을 자초했으며 앞으로도 불행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악한 상황은 바로 부실한 인간조건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3. 원 죄

   인간은 애초에 의로운 지위에 있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에와는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자유를 남용하고 교만으로 인하여 죄를 범함으로써 하느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졌습니다. 이때부터 인간의 고통은 시작되었습니다. 창세기에 기록된 내용을 아담과 에와의 잘못 때문에 억울하게 우리가 지금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여서는 안됩니다. 창세기의 내용은 인간의 타락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서는 죄를 주로 교만과 불복종이라고 말합니다. 아담은 그 자신의 자유로운 의사로 하느님의 뜻에 반대되는 것을 알면서도 행하였습니다. 이 범죄는 아담이후 지금까지 모든 인간의 한 부분으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각 사람이 물려받은 원죄는 그 사람이 개인적으로 범한 본죄와는 다릅니다. 본성은 타락하고, 받았던 은총을 상실하여 죽음의 권세에 예속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인간의 본성이 모든 사람, 즉 나에게도 전해졌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인간 모두는 죄 중에 태어난 것입니다. 원죄가 전달된다는 것은 아담의 후손이 성화은총 없이, 그리고 성화은총을 수반하는 특별한 은혜도 없이 창조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 인류는 원죄로 말미암아 상처를 받은 것입니다.

   원죄는 인간 개인의 죄 뿐만 아니라, 인류 공통적으로 내려진 악에로의 경향으로써 표현되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은 선을 원하면서도 악에로의 유혹에 빠지게 되고, 행복을 원하는데도 불행에 봉착하게 되는 것입니다. 원죄란 보통으로 말하는 죄가 아닙니다. 그것은 개인적인 죄 안에서 비로소 구체적인 형태를 취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아무도 다만 원죄 때문에 정죄되지는 않습니다. 정죄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원죄를 통하여 이루어진 개개인의  결정 때문에 이루지는 것을 말합니다.

 

4. 죄의 본질

   죄의 본성은 타인의 사랑과 하느님의 사랑을 거절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발달의 불완전이거나, 법률 위반, 자기 노력으로 바로 잡을 수 없는 비행, 인간에 대한 침해가 아닙니다. 죄란 성숙한 사람만이 범할 수 있는 것으로서 자기가 가진 자유에 대한 온전한 의식과 그에 결부된 책임성을 가지고 잘못 사용하는 사람의 행위를 말합니다. 모든 범죄 행위의 깊은 뿌리인 본연의 죄는 불신앙입니다. 이는 바로 신앙이 가지고 있는 자유의 남용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자유를 이기적인 자의에 의해 오용하는 것, 이러한 불신앙이야말로 죄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자유인이기에 나의 죄에 대한 책임은 어떤 숙명이나 원죄로 돌릴 것이 아니고 바로 내 자신이 져야 합니다. 하느님과, 이웃과의 어떤 맺음을 파기하고 그 질서와 조화를 깨뜨리는 것이 죄의 본질입니다. 따라서 죄의 구성요소는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며, 자기 양심을 거슬러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는 개인적인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고 공동성을 지니기에 그 영향은 하느님 백성 전체에 미치는 것입니다. 고린토 전서 12장 26절에 보면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할 때 다른 모든 지체도 함께 아파하지 않겠습니까?"하는 죄의 연대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5. 세상의 죄

   이는 죄에 빠져있는 인류의 보편적 혼란상태를 말하는 것이며, 이러한 상태는 우리들이 하느님의 광명과 은총에로 나아가는 길을 막는 저항의 벽을 구축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비록 개인적으로 범죄할 때마다 그것은 나 개인의 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이웃과 사회와 관계를 맺고 있는 그만큼 나의 죄는 사회에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한 개인의 죄로 말미암아 그 죄에 가담하지 않은 인간들 각자에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고질적인 전쟁의 불가피성, 가진 자의 횡포, 인종, 계급사이의 격심한 차별, 이웃을 사랑할 수 없는 우리의 이기심, 생활방식, 사고방식을 바꾸지 않으려는 우리의 편협한 고집 등 이러한 것들은 모두 악과 무관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개개인도 엄청난 세상의 악 속에서 한 몫을 거들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성경도 '죄의 역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구약성서의 후기에 속하는 기록들에는 개인적 책임의 강조가 역력하나 그러나 거기에도 '죄'란 집단적 책임의 문제라는 것이 나타납니다. 예수께서도 죄에 어떤 공동 책임이 있음을 지적하십니다(마태 23,35 ; 요한 1,26).  여기서 우리는 인간이 범하는 악이 커다란 하나의 죄로 여겨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없어지는 것은 여러 죄가 아니라 하나의 죄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더럽히는 죄는 인간 역사의 시초에 아담 한 사람만 범한 것이 아니라, 아담, 즉 인간이, 모든 사람이 범한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죄입니다. 세상의 죄는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는 것으로 절정에 이룹니다. 이것은 가장 근본적인 의미의 타락입니다. 유일한 선 자체를 죽이는 것이요, 하느님을 배척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이에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와 죽음과 고통이 가져다 주는 의미

   죄, 죽음, 고통 등이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사실 인간은 죄를 지으면 가책을 느끼며, 착하게 살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서나 있습니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 사람은 살고 싶은 희망을 가질 것이요, 극심한 고통 중에 있는 사람은 낫고 싶어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힘만으로 이 모든 것이 가능하지 못합니다. 의술이 아무리 발전을 해도, 또 인간이 아무리 지혜롭다 해도 죽은 자를 살리거나, 이 악한 세상을 온전히 정화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힘이 미치지 못할 때에는 어떤 '초월자' 즉 하느님의 손길이 절실하게 필요함을 느끼고 구원을 요청하게 됩니다. 그런데 전통적인 가톨릭 교회는 죄, 죽음, 고통은 오히려 '유익한 벌' 또는 영원한 상급을 주시기 위해서 하느님이 주신 보속으로 가르쳐 왔습니다. 그것은 괴로워하는 인간이 하느님께 의지하여 도움을 청하면 은총을 선물 받아 능히 이 세상의 모든 괴로운 것들을 초연히 극복하고 오히려 기쁨을 누릴 수 있으며, 종국에 가서 영원한 상급을 받을 수 있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때 하느님께서 '은총을 주신다' 함은 이 세상 괴로움과 악한 것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하느님께서 인간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에 물들 수밖에 없는 우리는 죄를 통하여 하느님과 함께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많이 갖게 됩니다. 하느님은 죄와 같이 계실 수는 없는 분이십니다. 죄가 있는 곳에 하느님은 인간에게 죄를 극복할 수 있도록 당신의 사랑, 즉 은총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인간을 죄에 그냥 빠져 있도록 놔 두시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에 빠졌을 때에 더욱 자신의 나약함을 인식하고 그분께 의지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주의 기도 마지막에 우리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 악에서 우리를 구하소서"

 

▣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인생고를 극복할 수 있는가?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온갖 악과 싸우셨습니다. 이기심으로 가득찬 바리사이파 사람들과도 싸우셨고 온갖 악마 들린 사람들도 치유해 주셨습니다. 세상의 권력에 의해 십자가에 무죄한 상태로 못박히고, 결정적으로 악의 가장 큰 세력인 죽음과도 대면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모든 것을 이기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을 갖고 계시며, 인성으로서 인간의 모든 고통들을 느끼셨고, 유혹을 당함으로서 인간들이 겪는 온갖 유혹도 체험하셨습니다. 그리고 급기야는 인간의 원죄를 극복시키고 구원을 주시기 위해 당신을 희생하십니다. 이로써 우리는 죄를 극복하고 죽음마저도 극복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세상의 죄에 대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를 따라 적극적으로 극복해 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의지할 때만이 죄를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만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악한 심성을 바꾸고 변화시키는 일은 인간의 힘만으로는 될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은총)이 절대로 필요한 것입니다.

 (2001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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