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교안 자료)
진화론과 창조신앙
한은주 (가톨릭대학교 종교학과 대학원, 교리교육전공)
지도교수: 김웅태 신부
1. 두 가지 창조이야기 (창세 1,1-2,4a/2,4b-25)
1) 창세기 1장에서 세상 만물이 어떤 순서로 창조되었는지 맞는 것과 선을 그으세요.
1.1. 첫째 날 ㄱ. 짐승, 사람
1.2. 둘째 날 ㄴ. 해, 달, 별
1.3. 셋째 날 ㄷ. 물고기, 새
1.4. 넷째 날 ㄹ. 빛
1.5. 다섯째 날 ㅁ. 하늘
1.6. 여섯째 날 ㅂ. 바다, 땅, 풀, 씨, 나무
1.7. 일곱째 날 ㅅ. 쉼
2) 창세기 2장 4절부터 살펴봅시다.
가. 1장에서 하느님은 세상을 6일간 창조하셨습니다. 2장에서는 어떠합니까?
나. 1장에서 하느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2장에서는 무엇으로 창조하십니까?
다. 1장에서 여자와 남자는 동시에 창조되었습니다. 2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까?
3) 창세기 1장 1절을 적어봅시다. 세상이 창조된 모습이 그대로 적혀 있습니까?
|
|
창조기간 |
창조공간 |
창조방법 |
원상태 |
물 |
동물 |
여인 |
생활환경 |
|
제관계 (1,1-2,4a) |
6일 |
전우주 |
하느님의 말씀 |
혼돈의 물 |
해로운 요소 |
인간 창조 이전 |
남자와 동시에 창조 |
조화를 이룬 우주 |
|
야휘스트 (2,4b-25) |
? |
땅 |
하느님의 행위 |
황무지 |
이로운 요소 |
인간 창조 이후 |
남자보다 늦게 창조 |
수목이 울창한 오아시스 |
자세히 보면 창세기는 서로 다른 자료 두 가지가 한데 모아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오랫동안 모세오경을 모세가 직접 썼다고 믿어왔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오경에 대한 본격적 연구 결과 오경 안에 모세가 직접 썼음을 의심할 수 있는 많은 구절이 드러났습니다. 예를들면 모세 이후의 정치, 사회적 상황을 나타내는 구절들(창세 12,6;13,7, 4,14)이나 표현들(신명 34,10)입니다. 또 반복되거나 서로 반대되는 구절들도 발견되었습니다. 두 번의 창조 설화(창세 1,1-2,4a와 2,4b-3,24) 입니다.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모세오경은 모세가 직접 쓴 것이 아니라 오랜 시일에 걸쳐 여러 가지 전승 자료들이 보완되면서 여러 편집자의 손을 통해 이루어진 전승 문학임이 밝혀졌습니다. 그러면 두가지 창조 설화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보겠습니다.
제관계 설화와 야휘스트 설화는 위의 표에서 보듯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방법과 내용이 다릅니다. 이것은 각 문헌이 각기 다른 문화적인 배경에서 다른 관점으로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587년의 바빌론 유배 이후의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제관계 설화는 혼돈에서 질서를 창조하시는 하느님의 전능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혼돈상태는 바빌론 창조 신화(창조의 신 마르둑이 홍수와 암흑에 싸인 혼돈의 신 티아맛을 물리치고 나서 창조를 시작함)의 영향을 받은 듯합니다. 또한 이 문헌에서는 모든 것이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창조되었다고 말합니다. 고대 동방에서 말은 실제로 존재하는 사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창세 29,20-27; 민수 5,12-21) 이는 '야훼 하느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2,7)라고 하느님의 행위를 강조하는 야휘스트 설화보다 더 발전된 생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950년경인 솔로몬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야휘스트 설화의 배경은 땅입니다. '야훼 하느님께서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때'(2,4b)라고 함으로써 땅을 하늘보다 앞세우고 있고(1,1과 비교), 이어 황량한 땅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2,5) 이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정착생활을 하기 시작할 무렵의 농경문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농경문화에서 물은 소중한 것이었기에 "야훼께서 비를 내리시지 않은"(2,5) 황무지는 어떤 생명도 살 수 없는 땅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2장 10절의 에덴에서 흘러나오는 강줄기는 제관계 설화의 혼돈의 물과 대조되는 생명의 물입니다.
2. 창세기의 창조이야기의 특징
1) 과학 이전의 것
창세기의 창조설화 자료는 역사적 구성을 시도한 고대인들의 노력이다. 당시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과학적 방법론이 알려져 있었지만 그러한 방법론이 성서의 창조설화를 만들 때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였다. 또한 창조이야기는 지구 밖의 관찰자가 경험하는 것이 아닌 우주와 생명이 전개되는 상황을 경험하는 지구 안의 관찰자의 관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게 볼 때 창세기 1장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의 기록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창세기의 원저자는 하느님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근동지방에 널리 퍼져 있던 다신론을 초월하여 장엄한 창조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처럼 창조설화는 서구 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과학 이전의 것'이기에 근대 과학의 설명과 설화를 일치시키려고 시도해서는 안된다.
2) 구원 역사와의 연결
고대 셈족의 성서기자들에게 창조는 역사의 출발점이었다. 그것은 인간의 죄와 구원의 드라마가 펼쳐질 수 있도록 무대를 형성해 주었다. 따라서 창조설화와 뒤이어지는 내용을 분리시키기는 힘들다. 즉 역사 안에서의 하느님의 구원활동과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계약에 대한 신앙 안에서 고찰되었다.
창조신앙의 가장 오래된 문헌들은 야훼를 창조주로 서술하기보다는 이스라엘을 백성으로 삼으시고 당신을 드러내신 야훼의 전능하신 활동에 관해 서술하는데 더 큰 중점을 두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역사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자연의 힘들을 사용하여 당신의 목적을 이루실 수 있으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늘 출애굽의 체험을 기억하고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처럼 구원역사에 대한 초기의 신앙고백문인 신명기 16장 5절-10절에는 창조에 관한 언급이 전혀 나타나 있지 않은 것을 보면 이스라엘 역사 초기에 창조 신앙이 두드러진 위치를 차지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창조론을 신중하게 언급한 최초의 예언자는 예레미야로 역사에 대한 야훼의 주권이 야훼가 창조주시라는 사실에 의하여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선포하였다.(예레 27,5) 또한 바빌론 유배시기에 기록된 제2 이사야의 글에서 창조론은 매우 심오하게 다루어지며 이후에 창조론은 유다교의 핵심적인 교의가 된다.
3) 교리적 창조개념과 과학적 창조개념
최근까지 교회의 창조 교리는 창세기 1장을 문자 그대로의 역사로 받아들였다. 대부분의 교부들과 스콜라철학자들,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들은 세계가 약 6000년 전에 6일동안 무로부터 기적적으로 창도되었다고 믿었다. 이것은 계시된 진리이기에 모든 질문을 배격하였다. 그러나 과학은 인간의 우주관을 확장시켜 주었다. 인간의 창조 교리는 천문학과 지질학, 생물학, 고생물학에 비추어 변형되었다. 그리하여 어떤 한 시기에 이 세계와 그 밖의 우주가 만들어졌으리라는 인간의 생각은 물리적인 세력들의 활동, 즉 태양의 한 위성인 이 세계가 수억년 전에 형성되었듯이 오늘날 수없이 많은 새로운 세계들이 형성되고 있는 우주의 활동에 의해서 느리고도 점진적으로 형성된다는 보다 웅대한 생각으로 대치되고 있다.
과학의 발전은 창세기의 우주발생론과 과학의 우주발생론 사이에 대립을 가져왔다. 그러나 보다 명백해진 사실은 과학적 발전이 하느님을 보다 위대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하느님의 영광은 그 무한한 하늘에서 무한히 확장되었고 초월적인 창조주의 활동에 내재적인 창조주의 활동이 첨가되었다. 그분은 더 이상 한번 당신의 능력을 행사한 후에 손을 거두고만 조물주로 이해되지 않는다. 그분의 창조활동은 모든 점진적 발전의 선상에 퍼져 있으며 보다 고차원적인 잠재력 속에서 나타나고 있다. 하느님은 "진행되어 나가는 것을 보신" 별들 너머의 한 하느님 대신에 "호흡보다 밀접하고 손과 발보다 더 가까운" 한 영(靈)이시다.
3. 창조론? 창조신앙?
창세기의 1장 1절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의 한 문장 안에는 창조이야기 전체가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부분은 우주가 창조된 실제 과정과 방법을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 부분을 쓴 제관계 저자들은 유배생활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역사의 주인이시고 이집트에서 그들을 탈출시키셨던 이스라엘의 구원자 하느님에 대한 신앙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흔들리는 신앙을 창조신앙을 통해 굳건히 하려고 했습니다. 곧 우주만물은 하느님의 창조물이며 하느님께 속해있고 하느님께 의존해있다는 신앙의 확인입니다. 이처럼 창세기 1장 1절엔 그들의 신앙의 고백이 들어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도 한 처음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1,1)는 말은 시간을 초월하여 영원 속에 이미 계셨던, 하느님과 동등하신 분, 곧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요한의 신앙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창조이야기를 인간이 원숭이에서부터 진화되었다는 진화론과 반대되는 이야기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세상 창조의 기원을 과학적으로 밝히고 있는 진화론과 달리 창조이야기는 세상에 대한 깊은 생각과 체험이 반영된 우리들의 신앙 고백입니다. 이렇게 진화론과 창조론은 다른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여기에 창조론은 창조신앙이라고 명칭이 변경되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론(論)은 단지 가설일 뿐입니다. 그러나 창조이야기는 과학적 가설이 아닌 절대적인 하느님의 주권과 이에 대한 피조물의 절대적인 의존에 관한 종교적인 확신, 바로 신앙의 고백입니다. 야훼께서 이 세상의 주인이시고 질서를 주셨습니다. 이 질서는 각 피조물들 안에서 창조주의 뜻을 성취하는 신적인 질서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지금도 쉬임 없이 이 세상 자연 만물을 통해 나 자신을 통해 창조를 이룩하고 계십니다. 하느님은 초월적이시며 내재적인 분으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참고문헌------------
기독교문사, <기독교대백과사전>.
<보시니 참 좋았다>, 성서와함께, 2001.
(2001년 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