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는 가능한가.
공동체(共同體)라는 한자의 표현은 글자 그대로 “함께, 같은 몸”이라는 뜻으로 바로 “한몸”을 말합니다. 사실 라틴어의 Communitas도 ‘함께(Cum)’와 ‘하나됨(Unitas)'이란 두 단어의 합성어로 다양성에서 일치를 추구하는 행보를 말하고 있습니다. "여럿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말은 쉽지만 엄청난 일이며 매우 힘든 일입니다. 그것은 바로 삼위일체의 원리 입니다. 삼위일체론은 사실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초월의 신비, 인간의 이성을 넘어선 하느님의 영역, 믿음의 대상 등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三位) 하느님께서 바로 한몸(一体)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삼위일체의 원리는 단순한 교리가 아닙니다. 삼위일체는 바로 다양한 인간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실천의 원리인 것입니다. 삼위일체가 신비이듯, 공동체의 삶도 신비입니다. 따라서 각자 개성을 지닌 인간이 “한 몸, 한 공동체”를 이룬다는 것은 그 자체가 신비이며 바로 하느님과 같은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표지입니다. 삼위일체와 같이 공동체의 원리도 믿음의 대상이며 인간의 이성을 뛰어넘고 있는 사랑과 초월위 영역입니다. 앞서 살펴본바와 같이 모여사는 집단의 삶, 지배와 통치를 기본구조로하는 사회와, 사랑과 봉사를 기초로 한 공동체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신앙인은 모름지기 이 사회를 공동체로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원리
삼위일체의 신비를 우리는 사랑의 관계, 사랑의 운동으로 이해합니다. 유다인들은 613조나 되는 많은 법 조항을 갖고 있었습니다. 십계명에서 파생된 내용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이루헤아릴 수 없는 법조문과 규정들이 있고 교회 안에도 1600조가 넘는 법조문들이 있습니다. 물론 사회의 질서를 위해 법이 필요합니다. 때문에 국가가 사회인 이상 법을 갖고 있음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공동체인 교회가 국가사회의 속성을 따라 법을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하나의 퇴행이며 복음 원리와 어긋나는 것입니다. 공동체는 법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공동체 자체가 법이며 그 법은 오로지 사랑뿐이기 때문입니다. 공동체의 원리는 바로 가정의 원리입니다. 가정에 법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굳이 있다면 사랑의 법일 뿐입니다. 효도와 봉사, 헌신과 사랑, 양보와 일치라는 것 말입니다. 사랑의 원리, 공동체의 원리는 사회의 규범과 법의 속성을 넘어 하느님의 사랑, 그 원리를 최고의 규범으로 삼고 있습니다. 부모의 사랑을 우리는 내릿사랑이라 합니다. 이와 같이 사랑이란 우리가 하느님을 알기도 전에,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하느님의 사랑을 말합니다.(Ⅰ요한 4,10)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하듯 이웃을 또한 사랑해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모든 것을 거저 받았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거저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원리, 하느님의 원리, 가정의 원리입니다. 그런데 현실이 그렇지 않으니 여기에서 문제와 갈등이 생깁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하느님께서 주신 해결 방법은 바로 십자가의 원리입니다. 사랑의 원리는 십자가의 원리입니다. 그러나 사랑과 십자가는 결코 불의 앞에서의 침묵이나 부정 앞에서의 방관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사랑은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세상을 근원적으로 변혁하는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사랑은 바로 변혁의 힘, 불의를 퇴치하는 정의의 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가 되기 위하여
사랑은 변혁과 창조적 힘입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생명의 원리, 생성의 원리이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 하느님을 함께 주님으로 고백하고 있다면 우리는 모두 한 형제 자매가 아닙니까? 이 세상 지구의 삶은 바로 하느님을 중심으로한 가정공동체에 비유됩니다. 한 가정의 일원인 우리는 각자 가정의 이익과 뜻이 바로 개인의 이익과 관련이 있음을 직시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 지구상의 모든 것은 우리 가정의 일이기에 나와 무관한 것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도 쉽게 깨닫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핵심입니다. 이 세상을 가정공동체로 이해하는 사랑의 원리, 때문에 그 가정의 문제를 나의 것으로 생각하며 봉사하고 헌신하는 자세, 그곳에 어려움이 있다면 함께 해결하고, 기쁨이 있다면 함께 기뻐하고, 문제가 있다면 함께 고민하고, 불의와 억압이 있다면 함께 퇴치하도록 노력하는 것, 이것이 바로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실천적 원리인 것입니다. 공동체란 바로 삼위일체의 신비를 “바로 지금 이곳에” 실현하는 구체적 삶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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