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신비(-영원의 가능성) (사목헌장 18항)
인간의 초월성과 비참성
우리는 이미 앞에서 사람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고 인간의 생명이란 바
로 하느님의 숨결임을 확인했습니다. 때문에 생명이란 하느님과 맺는 관계로
구원의 기본적 요소라는 것도 확인했습니다. 생명은 참으로 귀중하고 아름다우
며 인간의 본질임도 고백하고 때문에 인간이 만물의 영장임을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하느님의 능력을 선물로 부여받았고 인간의 특징적 요소인 지성
과 양심 그리고 자유를 함께 고찰했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그 정신적 또는 영
적 능력 등의 초월성의 구체적 표현은 바로 헌신적 사랑, 순국, 순교, 희생, 양
보입니다. 이기적 삶을 넘어선 ‘위타적’ 삶을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불교의 가
르침과 신채호가 언급한 소아(小我)를 넘어선 대아(대아)의 삶이며 그리스도교
에서 말하는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자신을 버리고 희생하는 사랑의 삶, 곧 부활
의 삶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렇듯 위대한 인간이지만 사람은 꼭 죽어야 하는 현
실 앞에 서 있습니다. 꼭 죽어야 하는 인간, 그것은 인간의 비참함으로 고통, 노
화, 분열, 싸움, 소멸 등으로 나타난 인간의 부정적 측면입니다. 그런데도 사람
은 죽기를 싫어하고 오래오래 살기를 원합니다. 참으로 모순같은 일입니다. 때
문에 사목헌장은 죽음과 영생의 염원이라는 이 모순과 갈등을 죽음의 신비, 죽
음의 수수께끼라 부르고 있습니다. 신비와 수수께끼라는 표현은 분명히 현실
속의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수락하기 어려운 납득하기 힘든 난제라는 뜻입니
다. 그러나 사람은 스스로 이 난제를 풀어야 합니다.
이 난제를 과연 풀 수 있습니까? 글쎄요, 대단히 어렵습니다. 물론 힘듭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 자신이 초월의 능력으로 이 현실의 난제를 풀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구원이며 해방 그리고 생의 완성인 부활입니다.
생명과 죽음의 두 가지 의미
윤리 도덕과 교육학의 상식적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생명의 원리입니
다. 무엇이든지 산다는 것은 아름답고 고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물론 우리는 이원주의(二元主義)를 넘어서야 하
지만 동시에 이원론에 기초한 상승의 가치를 늘 지향해야 합니다. 물론 육체적
삶, 물리적 삶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런 삶에는 필연적으로 끝이 있고 한계
가 있기 마련입니다. 죽음 앞에서 물리적 생명은 한 막을 내립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삶이 있습니다. 마음, 정신, 영혼의 삶입니다. 물론 윤리 도덕
적 삶도 한가지입니다. 비록 숨쉬고 살아 있지만 거짓, 불의, 죄로 인해 훼손된
인간은 곧 정신적으로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답은 자
명합니다. 육체적으로도 살고 정신적으로도 살 수 있는 이중의 삶을 추구하고
실현하는 일입니다. 이 둘은 늘 필연적으로 한짝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나 육
체적 죽음은 필연적 현실입니다. 때문에 죽음은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함
을 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정신적 죽음을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
다. 때문에 정신과 도덕의 가치를 위해 물리적 죽음을 감수해야 하는 형태의 새
로운 삶의 양식을 지향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께서 가신 십자가를 통한
부활의 삶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를 완성하셨지만 여전히 우리에게는 미완성입
니다. 미완의 삶을 사는 우리에게 죽음은 여전히 큰 가능성으로 다가옵니다. 죽
음은 부활로 향하는 길목이며, 죽음에 영원한 의미를 부여할 때 부활이 확인됩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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