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인간의 소명 (사목헌장 11항)
사목헌장 제1부는 교회와 인간의 관계를 원론적으로 천명하고, 제2부에서는 긴
급한 과제란 제목으로 결혼과 가정, 문화, 경제, 사회, 정치, 세계 평화 등의 현
실적 문제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사목헌장 제1부인 교회와 인간의 관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교회
란 무엇입니까.
이것은 교회헌장에서 다루어야 할 주제입니다만 교회는 하느님과 관계 맺은 사
람들의 행업임을 우선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교회는 하느님을 믿
는 신앙인들의 모임입니다.
때문에 거기에는 늘 하느님의 이야기와 인간의 이야기가 혼재해 있습니다. 여
기서 만일 교회가 하느님의 이야기만을 강조한다면 그것은 이른바 현실과 무관
한 관념의 이야기, 현실을 외면한 내세와 초월만을 이야기하는 이른바 내세주
의․초현실주의의 함정에 빠지게 되고 또 반대로 인간의 이야기만을 강조하다보
면 자연히 현실주의․인본주의 등의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때문에 그 어떤 주장
이나 사상은 나름대로 다 일리가 있지만 만일 그것만을 고집한다면 그것에 그
어떤 주의(主義, -ism)라는 말이 붙으면서 독선과 배타적 의미를 지니기에 늘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며 필연코 스스로 함정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 점을 분명히 인식했기에 모든 문제를 포괄적으
로, 개방적으로, 수용적으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화의 방법을 통해 해결하도
록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대화란 쌍방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하느
님에 대하여, 성서에 대하여, 교회에 대하여, 믿음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 있는
만큼 동시에 사람에 대하여, 역사에 대하여, 정치에 대하여 그리고 무엇보다도
현실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또 그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교회가 인간과 현
실, 정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신앙인은 무릇 현실 역사 안에서도 하느님의 손길을 감지하는 사람입니다. 하
느님의 손길을 감지한다는 것은 현실 역사 안에서 신앙인이 한 사회의 구성원
으로서 해야 할 소명을 깨닫는 일이기도 합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깊은 뜻을 꼭 사람을 통해서, 역사적 사건과 행업을
통해서 나타내 보여주십니다. 때문에 역사 현실과 사건은 하느님의 계시의 징
표들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를 일컬어 “사건의 신학”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건이
바로 하느님 계시의 수단과 방법이란 뜻입니다. 결국 성서적 계시는 모든 것이
다 사건을 통해 전달되고 확인되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탄생, 그분의 죽음과 부활, 성령강림, 많은 이들의 회개 등 이 모든 것
이 역사 안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인식과 해석의 이야기들입니다. 때문에 믿
음과 신앙이란 이런 사건들의 의미를 보다 옳고 깊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느
님 안에서 해석하고 깨닫는 기준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이들의 역사 해석은 전혀 다릅니다. 그래도 우리는 그런 해
석에 관심을 두며 대화를 시도합니다. 그와 나의 공통점은 같은 인간이기 때문
입니다. 때문에 공의회는 지금 이 자리에서, 우리 인간에서 출발하여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1장), 그리고 인간 개개인이 모여 이룩
한 사회 공동체는 과연 무엇인가(2장) 그리고 이 세상 우주 안에서 인간의 궁극
적 목적은 무엇인가(3장)를 찾고 끝으로 이 세상 현실에 교회는 과연 무엇을 어
떻게 봉사해야 하는가(4장)를 묻고 그 해답을 찾고자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바로 사회적 그리고 동시에 종교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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