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同志)와 신앙인
일상생활 특히 사회정치 현장에서 이념과 목적이 같은 친구를 우리는 동지(同
志)라고 부릅니다. 동지(同志), 참으로 힘있는 표현입니다. 뜻이 있다면 불가능
도 극복한다고 했는데 그러한 뜻을 가진 이들이 함께 모였다면 얼마나 더 큰 힘
을 발휘하겠습니까? 사실 일제강점시기에 독립운동을 펼쳤던 선열들이 주고받
았던 동지라는 칭호는 참으로 역사적으로 깊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말이 우리의 언어권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문화적
변화 현상이기는 하지만 매우 아쉽습니다. 반면 북한사회에서 동지라는 표현
은 아직도 큰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동년배의 친한 사이 또는 아래 사람에게
는 동무, 손위의 연장자에게 예의를 갖춘 표현은 선생, 그러나 동무와 선생의
의미를 함께 종합한 가장 존경스러운 표현이 바로 동지(同志)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의 귀에는 다소 낯설고 거북하게 들리겠지만 북한동포들은 김일성
동지, 김정일 동지라고 부르면서 애정과 존경을 함께 드러냅니다. 동지란 공동
체의 이념과 목적을 위해 함께 살고 함께 죽겠다는 결의의 표현이며 선언이기
도 합니다.
그렇다면 같은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 그리스도를 믿고 고백하는 우리 그리스
도인들은 서로 어떠한 관계에 있으며 서로 어떻게 부르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
느님을 창조주 부모로 고백하기에 하느님 안에 한 자녀이며 같은 형제자매들입
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를 맏형 또는 큰오빠라 부르면서 한 하느님
을 칭송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를 주님이라 고백하며 우리 자신
을 그리스도의 사람 곧 그리스도인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사실 그리스도와 함
께 우리 모두 하느님의 성성을 분여 받았기에 바오로를 비롯한 성서작가들은
감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거룩한 사람 곧 성도(聖徒) 또는 성인(聖人)이라고
불렀습니다. 참으로 과감한 호칭입니다. 개신교 형제자매들이 서로 성도라 부
르는 것은 이러한 관점에서 참으로 성서적 전통을 지닌 적극적 자세로 높이 평
가 될 일입니다. 어쨌든 우리는 모두 한분이신 하느님, 한분이신 그리스도, 그
리고 한분이신 사랑의 성령을 고백하고 있는 신앙인으로서 그리스도 신비체의
같은 구성원입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모두 같은 신앙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
의 성체를 영하는 신앙인으로서 한솥의 밥을 먹고사는 한 가족인 셈입니다. 따
라서 우리 신앙인은 북한사회 정치 공동체의 이념 안에서 동지라고 부르며 일
체감을 지니는 그 정도의 관계보다 아니 그보다 더 깊은 사랑과 일치를 지녀야
합니다. 그런데 같은 신앙인, 같은 그리스도인이면서 서로 불목하고 있다는 것
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며 더구나 같은 하느님을 믿고 살면서 그리스도교가 분
열되어 서로 헐뜯고 갈라져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악한 표양입니다. 우리 모
두 하나되어야 할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살아가면서 서로 생각이 다르고 의견이 맞지 않아 고민하는 경
우가 있고 심한 경우에는 마음을 상하기도 합니다.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은 나
의 생각과 나의 의견만 주장하지 않고 상대방의 생각과 의견도 존중하며 최대
한 공통점을 찾고자 합니다. 이것을 다양성안에서의 일치라고 말할 수 있습니 다.
불쾌한 마음을 극복하고
사실우리 신앙인들은 하느님을 믿고 있기에 일정한 공감대를 지니고 있습니
다. 때문에 누가 만일 내가 신봉하는 가톨릭을 배척하고 더구나 하느님을 거부
한다면 우리는 누구나 그를 못마땅해하며 그에 대해 몹시 불쾌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우리 인간의 한계입니다.
사목헌장 21항은 바로 이러한 우리의 마음, 무신론자들에 대한 교회의 거북한
마음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거북함의 토로가 가능하면 무신론자들
의 마음을 상해주지 않도록 나름대로 최선의 배려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
쨌든 심기는 불편합니다. 무엇보다도 교회공동체는 무신론의 이론과 운동에 대
해 불편한 심기를 우회적으로 표현하면서 무신론은 인간지성과 체험에 반하며
오히려 인간의 품위를 낮춘다는 점을 지적하고 비오12세까지의 교회의 과거주
장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무신론의 형태
무신론의 대표적 이론은 첫째, 니체를 비롯한 철학가들과 사르트르 등의 실존
주의적 이론가들의 주장으로 신의 인정 곧 절대적 타자의 존재는 인간의 자율
성과 자주성을 침해한다며 신의 존재가 무의미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둘째
는 맑스를 비롯한 공산주의적 유물론 사상으로 포이어바하의 인간소외 개념에
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곧 이들은 인간세계의 부익부 빈익빈의 불평등과 부조
리에 초점을 맞추어 결국 금전욕과 재물의 결핍이 인간의 상실을 가져온다고
지적하면서 종교가 바로 이러한 사회적 불평등과 부조리를 내세구원이라는 개
념으로 적당히 마비시키고 있다고 무섭게 질타하고 있습니다. 종교가 인민의
아편이라는 말은 이러한 관점에서 나온 것입니다. 따라서 사목헌장은 암묵적으
로 이러한 두 유형의 무신론을 묶어 그 이론과 주장, 운동 등을 배척하고 있습
니다. 사실 무신론의 인간관과 사회관은 철저한 현실적, 유물론에 기초 하고 있
기에 사실상 인간 정신의 초월성과 내세성을 송두리째 박탈할 위험과 인간의
한계를 망각케하는 오류를 지니고 있습니다. 인간은 지성상 또는 체험상 한계
적 존재이며 자기완성과 자기초월을 지향하는 인간성내면에는 진‧선‧미에 대
한 추구와 사랑과 희생의 삶을 통해 이미 신적 세계를 접하고 있습니다. 그뿐아
니라 윤리도덕적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뜻밖의, 의외성의 사건 안에서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한계를 고백하며 사랑하는 이를 위해 마음으로 빌고 행복을 염
원하고 있습니다. 사실 인간의 출생과 결혼 그리고 죽음 등의 과정에서 인간은
삶과 죽음의 신비를 체험하며 그 자체가 바로 종교적 체험입니다. 따라서 무신
론자들의 주장이 비록 부분적으로 일리가 있다 하더라도, 그래도 신의 존재와
긍정이 오히려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심화시키고 있을 뿐 결코 인간을 비
하 또는 종속케 하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여기서 우리가 반성해야 할 점은 무신
론자들의 주장이 신의 부정보다는 오히려 하느님을 설파하는 교회와 교직자들
에 대한 부정적 삶에 기인하고있다는 사실입니다.
왜 무신론자인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신 부정의 숨은 이유를 찾고자 우리는 관심을 기울입
니다. 그리고 무신론자들의 주장앞에서 이제는 교회가 겸허하게 반성하기도 합
니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신 긍정이 결코 인간의 존엄을 비하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풍요롭게하며 인간에게 큰 기쁨을 주며 행복을 충만케 합
니다. 오늘날 몰트만을 비롯한 많은 신학자들은 인간학이 바로 신학이라고 분
명히 선언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에 대한 사랑이 바로 하느님께 대한 사
랑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20세기의 신학의 큰 물줄기를 형성한 남미해방신학은 세계도처에 전파되
어 가난하고 약한 형제자매들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주었습니다. 출애급 해방
사건이 바로 구체적 삶의 현장, 곧 정치, 경제 사회적 해방임을 역설하고, 이것
이 바로 종교적 신앙체험의 원바탕이고 야훼 하느님은 바로 인간의 역사의 구
체적 삶의 현장으로 들어오시는 분임을 확인했습니다. 하느님은 바로 에집트
의 노예생활에서 울부짖고 있는 백성들의 울음소리를 들으시고 아파하신 분이
시며 이들을 그 억압의 현장에서 자유와 해방의 현장으로 이끌어내신 분입니
다. 이 역동적 하느님 체험이 바로 성서의 하느님이며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입
니다. 이것은 또한 눈에 보이는 형제자매들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쟁이다(1요한4,20) 라는 말씀에서도 확
인되는 사실입니다.
사실 해방신학을 접한 북한의 한 전문가는 7‧80년대 남한의 인권회복과 민주화
운동 그리고 80년대 후반의 통일운동을 지켜보면서 자신들은 비록 유물론적 공
산주의자들이지만 세계신학의 흐름과 남한사회의 움직임을 주의 깊게 보면서
교회가 민중을 위해 민중과 함께 투신한 모습에서 많은 암시를 받고 근로대중
을 위한 공산주의와 해방신학을 기초로 한 교회의 해방운동은 서로 공통점이
있기에 만나서 서로 대화할 수 있음을 토로한 바 있습니다. 바로 이점에서 우리
는 참으로 이웃과 공동체의 해방을 위한 삶이 무신론과의 대화를 가능케 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가장 권위있는 선교는 감동을 주는 삶
현실의 한계 속에서 사람은 오히려 성숙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무신론을 시정
하고 무신론과 대화할 수 있는 길은 과연 무엇입니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이웃
을 위한 희생과 봉사적 삶입니다. 사실 유럽문화권의 무신론 기원을 세밀히 검
토하면 그것은 교회와 신앙인이 교회답지 못하고 신앙인 답지 못하게 살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특히 가톨릭 국가라는 이태리의 경우가 그 대표적입니다.
로마제국이후 나라도 없이 도시국가형태로 존재했던 이태리는 계속 교황청에
종속되어 있다가 1870년 이태리의 통일운동으로 오늘과 같은 나라를 이룩했습
니다. 이곳에는 참으로 많은 이들이 교회에 대해 혐오감과 교계제도와 성직자
들에 대해 반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자연적으로 신관으로 옮겨
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세례 받은 이들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들을 우
리는 실천적 무신론자들이라고 부릅니다. 태어나면서 모두 세례를 받았지만 실
생활 면에서는 무신론자들과 같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태동된 유럽내의 신심운동가운데 훠꼴라레(Focoloare)운동
은 참으로 많은 것을 시사해 줍니다. 1943년 2차대전 직전 이태리 북쪽 Trento
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당시 본당의 여성청년들이 중심이 된 일종의 기도모임
이었습니다. 순수한 이 청년들은 늘 함께 모여 현실을 고민하고 분열된 현실을
아파하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통을 보다 깊이 묵상하고 무엇보다도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과 이웃 안에 내재하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읽고자 했습니
다. 당시 이러한 사고는 일종의 범신론적 경향을 지녔다하여 교계로부터 일정
한 제재를 받기도 했지만 다행히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함께 열린 교회의 덕
분으로 그 후에 크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다소 현실문제를 외면
하며 개인생활과 교회일치 면에만 치중하고 바티칸의 보호를 받는 일종의 친
위 신심단체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이들의 선교방법이랄까 삶의 철학은 바로 사
목헌장21항이 말하고 있는 핵심이기에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훠꼴라레 회원들은 결코 자신이 가톨릭신자임을 먼저 말하지 않습니다. 어느
현장에서든 그들은 무엇보다도 한 인간으로, 한 직장인으로 또는 학생으로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합니다. 어떤 때는 바보라는 별명을 듣기도 합니다. 늘 파업
을 일삼은 이태리 사회현실에서 우체국에서 일하는 한 교우는 늘 묵묵히 자기
일에 충실합니다. 출근 정시보다 더 일찍 출근하고 퇴근 때에는 늦게 남아 모
든 뒷처리를 하고 남보다 더 늦게 퇴근하고 혹시 친구들이 제시간에 못 왔거나
또는 상대적으로 일찍 퇴근하는 경우 그가 해야할 밀린 일을 도맡아 하고 모범
이 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동료들이 바보로 취급하며 짖꿎게 일을 더 맡기
기도 하지만 이러한 봉사가 1년 2년 3년 지속되다보면 오히려 그 동료들이 감
동을 받고 도대체 어떤 이유로 이렇게 봉사에 전념할 수 있을까하며 의아해 한
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웃으면서 묵묵히 봉사만 합니다. 이제 신뢰가 쌓아지고
마음을 열 때가 되었을 때 자신이 살아온 길, 이른바 신앙인으로서의 회개체험
을 말하면서 신앙인의 모범, 신뢰적 책무, 무엇보다도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바
로 오늘의 자신을 만들었노라고 고백한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百聞 不如一見)이라는 우리네 속담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
이 바로 모범된 신앙인의 삶, 곧 성숙한 신앙입니다. 희생과 봉사, 모범적 생활
보다 더 큰 웅변이 있습니까?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은 말로써가 아니라 구체
적 실천과 삶을 통해 이웃에게 감동을 주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인들은 필연적으로 순교자가 되어야 합니다. 목숨을 바
칠 각오가 되어 있다면 무슨 일이든 못할 일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순교의
영성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름지기 ‘하늘에 계신 하느님
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마태오5,48)
어쨌든 무신론자들을 이론적으로 설득하고 신의 존재에 대해 확신을 심어주는
일은 쉽지 않지만 같이 손잡고 한 인간으로 같은 형제자매로 살며 특히 모범적
삶을 통해 그들에게 감동을 줄 때 그들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순교자
들과 헌신적 투신자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7‧80년대 인권회복과 민주화를 위
해 투신했던 그리스도인들, 노동현장에서, 농촌과 어촌에서 도시빈민과 함께
사는 경건한 그리스도인들, 특히 후코 신부의 정신을 따라 사는 예수의 작은 형
제‧자매회의 수도자들의 헌신적 삶이 예수님을 가장 권위 있게 보여주고 있는
분들입니다. 우리가 비록 무신자들의 주장을 일축하고 있지만 그래도 그들을
인간적으로 대하고 그들과 사랑을 나누는 일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사
목헌장은 당시 신앙과 종교를 박해하고있는 공산국가체계의 불의에 대해 분명
히 항의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교회는 오늘날 무신자들과도 대화를 하고자 계속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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