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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대림 제 2 주간 월요일. 2006. 12. 11. 토평동.
이사 35, 1-10. 루카 5, 17-26.
교회의 전례 속에서 대림시기에 이 구절을 읽도록 하는 것은 왜일까? 그런 마음으로 묵상해보니 모두가 누군가를 치유시켜주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예수께서는 병을 고쳐주십니다.(17절) 그리고 용서하십니다.(20절) 중풍에 걸린 사람의 친구들은 친구를 치유시켜주기 위해 애를 씁니다. 평상에 누여 예수께 데려오고, 막히자 지붕으로 올라가 기와를 벗겨내고 예수께 내려 보냅니다.(18-19절) 사람들은 예수님의 치유를 보면서 하느님을 찬양합니다.(26절) 죄를 용서받고 병이 나은 당사자도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갑니다.(25절)
제 힘으로는 무엇도 할 수 없는 이를 보면서 예수님을 비롯한 친구들은 그에게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포기가 없습니다. 사랑이 포기를 생각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가 변하지 않는 상태에 있다 하더라도 변화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확신으로, 노력을 합니다. 내가 누군가를 위한 삶을 살아도 막혀있는 벽을 만난다면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이성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내가 누워있다고 했을 때, 그저 누워있는 것이 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난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포기해서는 안 되고 변화할 수 있다는 것, 그 믿음이 필요합니다.
대림시기에 이 구절을 묵상하는 것은 내 마음이 누군가를 향해 있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용서하고, 누군가를 향해 선행을 베푸는 것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나 스스로가 변화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즉시 일어나 걸어가는 삶을 살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 다른 이를 향한 삶을 살며 나 스스로 변화해서 주 하느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라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필요한데도 누군가가 되어주지 않고 이론적인 것에만 매달리는 이들(율법학자 바리사이)과 누군가 필요한 그에게 누군가가 되어 의미가 되어주는 이들(친구들, 예수). 늘 선택은 나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
다른 이를 향한 삶을... - 조성호 신부님
2006. 12. 11. 오전 9:3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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