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 - 하성호 신부님

2006. 12. 10. 오후 12:14:23

글자

대림 제2주일2006.12.10. (바룩 5,1-9/필리 1,4-6.8-11/루카 3,1-6)

얼마 전 어떤 신문에 서울 영등포역사 옆 노숙자‧행려병자 무료진료기관인 ‘요셉의원’ 선우경식 원장에 관한 기사가 “힘내요, 영등포 슈바이처!”라는 제하에 실렸습니다. 그분은 한 때 ‘잘 나가는 의사’였지만 세속적인 영달은 물론 결혼까지도 포기하고 자진하여 20년째 ‘요셉의원’ 원장을 맡고 있는 분입니다. 얼마 전에는 위의 3분의 2를 잘라내는 위암 수술을 받았는데, 수술 결과가 좋다는 말을 듣고 “아직은 저 없으면 어려움이 많은 환자들을 생각하니 기뻤고, 한편으론 부끄러웠습니다.”라고 하면서 그분의 마음속엔 오로지 불쌍한 환자들에 대한 사랑만이 가득 차 있음을 드러냈습니다. 늘 환자를 대하고 살았으나 정작 자신의 죽음을 준비를 하지 않은 것 같아 수술 후 고해성사부터 가장 먼저 받았다고 합니다.
세상에는 선우경식 원장 같은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단순한 박애정신에서 그렇게 사시는 분들도 있을 테고,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실천하기 위해 그렇게 살아가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분들의 꺼지지 않는 등불이 있기에 세상엔 사랑의 빛이 늘 빛나고 있습니다. 그분들의 사랑의 손길은 죽어가는 사람마저도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합니다. 그분들의 손에서 느껴지는 사랑의 온도는 그 어떤 가슴에 맺힌 서러움과 상처라도 녹여줍니다. 그분들의 사랑의 힘은 오늘도 이 사회를 따뜻하게 덥혀줍니다.
오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이 주님의 길을 마련하는 것에 관한 내용입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루카 3,4). 선우경식 원장 같은 분들은 이 시대에 주님의 길을 마련하는 분들입니다. 대부분의 사람, 아니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만 살겠다고 길길이 뛰는 판국에 자신을 내팽개치고, 쏟아 부어도 표도 나지 않는 사랑의 모험을 벌이고 있는 그분들이야 말로 주님의 길을 마련하는 분들입니다. 자기만 살겠다고 설치는 사람들을 세상은 정상이라고 말하겠지만, 주님의 길에 들어선 사람들은 선우경식 원장처럼 자신을 사랑에 내어놓는 사람을 정상이라고 말합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인생수업⌟이란 책에 나오는 한 구절을 소개하겠습니다. “우리는 부와 힘을 동등한 것으로 여기고,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수없이 많은 임종의 자리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뉘우칩니다. ‘난 한 번도 내 꿈을 추구해 본 적이 없어.’ ‘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본 적이 없어.’ ‘난 돈의 노예였어.’하고 말입니다. ‘사무실에 좀 더 늦게까지 남아서 일할 걸 그랬어.’라거나 ‘돈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훨씬 행복했을 거야.’하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109-110쪽). 우리는 돈과 권력이 힘과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 생각하지만, 죽음을 앞 둔 사람들은 돈과 권력이 아니라, 자신이 참으로 가치 있는 존재임을 깨닫고 삶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했던 지난날을 후회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오늘 복음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 즉 예수님을 사람들이 보게 하였습니다. 요한은 광야에서 회개를 선포하였습니다. 회개는 죄의 모습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도 창조 때의 그 뜨거운 사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주님 마음에 들도록 사는 것인지를 몰라서가 아니라, 갖가지 속된 집착의 끈을 끊지를 못해 후회스런 생활에 오늘도 미련의 발을 빼지 못합니다. 사랑의 삶으로 우리도 요한처럼 모든 이들이 주님의 구원을 보도록 주님의 길을 마련한다면 이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겠습니까! 선우경식 원장님과 우리 사이의 차이는 깨달은 것을 실천에 옮기느냐 옮기지 못하느냐 차이이지, 삶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지 못해서가 아닐 것입니다.
오늘 제2독서의 말씀을 귀담아 들읍시다. “내가 기도하는 것은, 여러분의 사랑이 지식과 온갖 이해로 더욱더 풍부해져 무엇이 옳은지 분별할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순수하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날을 맞이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는 의로움의 열매를 가득히 맺어, 하느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필리 1,9-11). 참으로 우리 존재가 하느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리는 존재이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다. 그 길은 신앙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실천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두 개의 대림초에 불이 밝혀졌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길을 충실하게 마련하여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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