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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2주일, 인권 주일 2006.12.10.
| 루카 복음 3장 1-6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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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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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욕과 거짓의 산을 깎아버리고 민경철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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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1등이라는 것 한 번도 못해봤습니다. 본질적으로 1등은 세상에 한 명밖에 없지를 않습니까? 그 사람이 죽거나 없어지면 2등이 1등이 될 것이고 이런 의미에서 보면 등수라는 것은 상대적으로 비교하기에 생기는 것이고 사람이 만들어 낸 개념에 불과합니다. 하느님께는 애초부터 ‘등수’라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를 각자 고유한 작품으로 만들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작품은 비교됨으로써 우열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또 이 고유한 작품이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서 고유한 역할을 담당하도록 하느님은 각기 다른 은총의 선물을 주셨지요(1코린 2,4-11참조). 세상의 눈에 하찮아 보이거나 미소해보일지라도 하느님 눈에는 위대해보이는 고유한 작품임을 잊지 말고 살아가십시오. 내 역할과 자리를 기뻐하거나 만족하지 못하고 ‘남의 떡’이 커보였기에 남의 것을 가로채고 남을 짓밟고 올라서려 하면서 쌓아온 탐욕과 거짓의 산을 깎아버리십시오. 그래야 주님께서 내게 오시는 길이 오르락 내리락 하지 않고, 구부정함이 없이 평탄하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 오신다는데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여야지 땀을 뻘뻘 흘리는 산악자전거를 타시게끔 해서야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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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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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랫더미 위에 앉아 한 아이가 또 다른 한 아이에게 리코더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아마 먼저 배운 아이가 또 배우고 싶어하는 다른 아이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겠지요. 이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나눔’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이들은 무엇을 나누고 있는가. 돈도, 빵도, 옷도 물질적인 그 무엇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들은 분명 무엇인가를 나누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나눔이 결코 물질적인 것이 아님을 다시 깨달아봅니다. 내가 먼저 알고 있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 내가 할 줄 아는 것을 다른 이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 내가 먼저 얻은 것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어 갖는 것…. 나는 나눌 것이 없는 것만 같았는데 그러고 보니 나눌 것이 넘치도록 많았습니다. 내가 가진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이 아이들이 제게 가르쳐줍니다. 그래서 이 아이들의 눈빛만 보면 부끄러워지나봅니다. 가진 것이 너무 많은 것만 같아 미안해지나봅니다. 이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할 것들을 저 혼자 다 갖고 있는 것 같아 몸둘 바를 모르겠나봅니다. 이제 제가 가진 것들을 조금씩 나누어야겠습니다. ‘사랑하며 살아야겠다’는 다짐들을 이쯤에서 멈추어야겠습니다. 이제 마음에서 맴돌던 그 다짐들을 행해야겠습니다. 저의 그 작은 나눔이 이 아이들에게 한 조각의 빵이 되고, 희망이 되어 이 아이들의 미래를 바꾸어놓을 수 있는 힘이 된다니 놀랍기만 합니다. 제가 한 생명을 살리고, 그의 미래를 변화시킬 힘을 가지고 있었다니…. 나누면서도 제가 더 풍요로워짐을 느낍니다. 제 것을 나누어주었는데도 아무것도 줄어들지 않고 자꾸만 자꾸만 나눌 것이 더 많이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나눔은 참 신기한 요술 항아리입니다. 게다가 제 마음에 기쁨과 행복까지 선물로 주니 아무래도 이 나눔은 삶을 행복으로 이끄는 비밀열쇠인 것만 같습니다.
이태석 신부 | 다음 카페‘수단 이태석 신부님’(cafe.daum.net/withLeeTaeSuk)에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