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회개 - 기다리는 이의 첫째 조건 ( 대림 제 2 주일 )...배진구신부님

2006. 12. 10. 오전 11:55:00

글자

내년도 <예산심의> 겸 올 한 해 동안 고생하신 사목위원 각 단체장 구역장님들 모시고 1박 2일 연수를

떠납니다.말이 연수이지 이미 편성되어 있는 예산서에 무리는 없는지 살펴보고 (항상 긴축 재정임 그래서

거의 전 년과 동일) 하루라도 노고에 보답하는 의미로 본당에서 마련하는 자리입니다. <부곡>이라고

온천으로 유명한 장소인데 마산에서 1시간 거리에 있습니다. 토요일 오후에 출발해야 하기때문에 지난 주

처럼 빨리 서둘러 봅니다.

   지난 토요일에는 모교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에 갔다가 추워서 혼이 났지만 그래도 기념식이 끝나고

각 기별로 모인 저녁 식사 자리는 참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는 자리여서 좋았습니다. 41년 만에 만난 친구도

있었습니다.여태 살아 온 방법과 모양은 달랐어도 40년을 거슬러 올라간 그 때 그 시절의 추억은 지금도

생생한 기억으로, 혹은 잊고 있던 기억들을 되찾아 내어 나누는 그런 자리였습니다. 매년 동창 모임은 물론                         

150주년 행사에도 함께 하자고들 하였는데 글쎄요~~ 나야 130까지 살거니까  문제가 없지만요.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는 동창들의 건투를 빕니다.

 

   "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라." (루카 21,36)

대림절을 시작하는 지난주의 결론이었다. 특히 왕으로 구원자로 심판주로 두 번째 오실 주님을 허리를 편

 자유인의 모습으로 맞이 하기 위한 준비를 촉구한다.그 때 그 분께 제출해야 하는 우리 삶의 보고서를

어떻게 작성해야 할지 미리 준비하라고 깨우쳐 준다.또 다시 우리에게 사랑으로 탄생하실 아기 예수님께

어떤 선물을 준비해야 하는지 알려 준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이신 세례자 요한을 통하여 구체적인

방법이 제시된다. 그것은 다름아닌 <회개> 이다.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께서는 천지창조때 부터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셨다.그래서 사람을 지어

<에덴동산>에 두셨다고 성서는 기록하고 있는데 이 에덴이라는 것은 어떤 지리적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하느님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그 상태를 유지하는 비결은 죄없음 완전함 즉 하느님의                        

모습이다.아담과 하와가 죄 짓지 않았을 때는 이런 상태가 유지되었지만  죄 때문에 함께 있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이것을 성서는 에덴에서의 추방으로 표현하고 있다.결국 죄는 하느님의 뜻을 저버림이요

하느님께 등돌림이요 하느님과 사람과 사물과의 분열로 드러난다.이것은 곧 죽음이다.

생명 자체이신 분과의 분열은 죽음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지만 자비 지극하신 하느님께서는 죄 속에 있는 우리를 그냥 버려 두지 않으시고 

구세주를 약속하셨고 - 첫 복음- 그 약속을 당신 친히 사람이 되어 오심으로 이루셨으니

그것이 바로 첫 번째 오심이요 성탄인 것이다.

요한 복음 3,16의 말씀대로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극진한 사랑 표현인 것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삶도 언제나 죄와 맞닿아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누구나 죄에 대해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자비로우신 주님께서는 회개의 마음을, 회개의 기회를 선물로 주시고

회개를 통해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방법까지도 제시해 주시니 얼마나 큰 다행이며 위안인지 모른다.

주님은 찬미 영광 받으소서.

 

회개는 주님께로 돌아감이다.주님께로 향해 가는 길에 놓여진 모든 장애물을 치워버림이다.

회개는 머리를 들어 주님을 바라봄이다.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하는 것들을 물리침이다.

회개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옴이다.당신 모습으로 창조하신 그 때의 모습으로

그것도 가장 곧은 길로 돌아옴이다.

회개는 완전한 비움이다. 우리 속에 가득차 있는 온갖 죄스러운 것들을 비워내고 하느님의 것으로 채워 넣음이다.

회개는 나눔이다.우리게 채워 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또 다른 하느님과의 나눔이다.

회개는 오늘 복음 (루카 3, 4-5)의 말씀처럼 주님의 길을 마련하는 일. 주님의 길을 곧게 내는일.

골짜기를 메우고 산과 언덕을 낮추고 굽은 길을 바르게 하고 거친 길을 평탄케 하는 일이다.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구원을 보기 위함이다.

 

하늘나라의 영광을 지복직관(至福直觀).즉 하느님을 직접 바로 보는 것이라 했다.

언제 일지는 모르지만 그 때에 우리 모두가 주님을 바로 뵈오며 기뻐할 수 있도록 회개의 삶을 살아 가자.

 

 


출처 : 인천오류동 세실리아성가대 원문보기 글쓴이 : 하느님의 어린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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