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꾼으로 불러주심에 감사하는 삶 - 조성호 신부님

2006. 12. 9. 오전 10:25:49

글자

다해 대림 제 1 주간 토요일.

2006. 12. 9.

토평동.

이사 30, 19-21.23-26.

마태 9, 35-10, 1.6-8.

예수께서는 곳곳 두루 다니시며 당신의 사업을 계속하십니다. 그리고 그 사업에 동참하는 이들을 필요로 하십니다. 애초에 주 하느님의 뜻을 받들 이들이 필요했고, 그 역할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꾼은 부족합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느님의 일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꾼이 부족한 것은 그 일을 함에 있어 내적으로 충실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추수가 계속되는 한 추수할 일꾼들은 계속해서 필요하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일을 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늘에서 바라보면 십자가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여전히 추수할 일꾼이 필요하다는 주 예수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것은 그렇게 살지 못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이러한 말을 할 때마다 사제인 나 자신이 뜨끔하다. 나는 언제쯤 이 목소리에 당당해질 수 있을 것인가?)

주님의 이름으로 일하는 이들은 주 예수를 닮아야 합니다. 그분께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행동하시는지 배워야 합니다. 제자란 배우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모습은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치유해주시는 것입니다.(마태 9, 35) 죽은 이를 일으켜 주는 것입니다.(10, 8) 하늘나라를 선포하는 일이고(10, 7) 모든 것을 생색을 내지 않고 거저 베푸는 것입니다.(10, 8)

그 마음의 중심에는 가엾은 마음 즉 측은한 마음이 자리합니다. 이것은 값싼 동정이 아닙니다. 진정 그와 함께 하는 마음입니다. 마음만이 아니라 온 존재가 그와 하나가 되려는 몸짓입니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마태 9, 36)

삶 자체가 세상에 시달리는 것이거늘, 주님을 믿고 있으면서도 목자가 없는 양들과 같았다는 것은 그들이 신앙 안에서 위로를 얻고 있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신앙이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세상에 신앙이 지고 있는 듯한 모습은 주님께서 보시기에 마음 아픈 일이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목자가 그들을 보살피고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신실하신 주님께서는 언제나 함께 하시며, 권능을 지니신 분이심을 주 예수께서는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참 목자 주님을 만나며 시달린 삶에 기쁨을 전해주어야 합니다. 기가 팍팍 살아나 주님을 믿고 있는 이들이 신앙으로 용기 있는 삶을 산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사제로서 나는 교회를 찾는 이들의 시달린 삶에 위로가 되고 있는지, 주님을 맞는 이들에게 쉼터가 되어주고 기를 살려주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나로 인해 기가 꺾인 이들은 없지 않은지(왜 없겠는가? 결점 투성이인 사제인 것을).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마태 9, 37)

할 일이 많습니다. 아버지의 나라에는 먹을 것도 많고, 자리도 많습니다. 초대받은 이들도 많습니다. 다만 그 초대에 기꺼이 응하는 이들이 적을 뿐. 그리고 그 초대장을 돌려야할 일꾼이 적을 뿐. 그분의 초대에 기꺼이 응하면서 일꾼으로 불러주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보리라 다시금 다짐해보는 하루입니다.

부스러기 :

불행의 원인은 늘 내 자신이다.

몸이 굽으니 그림자도 굽다.

어찌 그림자 굽은 것을 한탄할 것인가?

나 이외에 아무도

나의 불행을 치료해 줄 사람은 없다.

불행은 내 마음이 만드는 것과 같이

내 자신이 치료할 수 있는 것이다.

내 마음을 평화롭게 가지라.

그러면 그대의 표정도 평화로워질 것이다.

- 파스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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