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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 1주 토요일 (다해)
마태 14, 14에서는 예수님은 병든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고, 마태 20, 34에서는 소경을, 마르 9, 22에서는 마귀들린 사람을 불쌍히 여기셨다. 루가 7, 13에서보면, 나인 이라는 곳에 과부의 외 아들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실 만큼, 과부의 정경을 불쌍히 여겨 그 아들을 살려 주시는가 하면, 마태 15, 32에서는 군중들의 배고품을 염려하시어 빵의 기적을 베푸시는가 하면, 마르 1, 41에서는, 친구와 친척들의 품으로부터 추방당하고, 홀로 죽음과 고독속에서 병고에 시달리며 삶을 포기하여 절망속에 나날을 보내고 있는 문둥병자의 아픔을 동정하시어 완치시키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모든것은 인간의 고통을 당신의 고통으로 여기시고 함께하시는 모습이다. 그들의 고통을 보시기만 하시는 것이 아니고, 말로만 위로 하시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고통을 덜어 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 유대종교 지도자들이 그러한 일반 대중을 보는 눈은 달랐다. 바리새이인들은 : 일반 대중이란, 없애 버리고, 태워버릴 겨와 같은 것으로 보았으나, 예수님은 : 그들을 베어들이고, 구원 받아야 하는 추수할 것으로 보셨다. 바리새이 인들은 자기들만이 제대로 율법을 지키고 살기에 자신들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라는 교만에 차, 일반 대중을 죄인시 하여 죄인들의 파멸을 바랐으나, 예수께서는 바로 그러한 죄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죽으신다는 것이다. 추수는 추수할 일꾼이 있어서 제때에 베어들이지 아니하면, 추수가 되지 않는다. 이와같이 예수님은 추수할 일꾼인 우리의 협조와 참여를 필요로 하시며 바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셨을때, 그분의 음성은 아주 적은 지역에밖에는 미치지 못했다. 팔레스티나 지방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므로 온 세상 모든 사람이 그분을 기다리고 있고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학교에서 선생님이 가르쳐 주지 않으면, 학생들이 배울수가 없듯이 누군가가 바다와 산을 건너 복음의 말씀을 전해주지 않으면, 그 소식을 들을 수 없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사람이 나는 매일 생활 속에서 하느님의 나라가 모든이의 마음속에 내리기를 기도 합니다 라고 할때, 힘이 없다. 또한 우리가 헌금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모두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우리가 인도해야할 사람들을 맏겨주시고 계시기에, 복음을 전하는 일꾼이 매일의 생활 속에서 되어야 하는 것이다. (출처: 가톨릭대학교 강론자료집 / 정리: 김웅태신부) |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도다 - 김웅태 신부님
2006. 12. 9. 오전 10:2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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