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특기 - 민경철 신부님

2006. 12. 9. 오전 10:22:14

글자

2006.12.9.토

 

마태오 복음 9장 35절-10장 1.6-8절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주게 하셨다.
 주님의 특기     민경철 신부
동창 신부들에게는 죄송한 이야기지만 신학생 시절 ‘과연 우리가 신부생활
똑바로 할 수 있으려나?’ 하고 의구심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혼자 생각하기에
우리 모습들을 보니까 못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고, 성질도 못되어 보이고,
제대로 할 줄 아는 것도 없어 보이고 그렇단 말이지요.
근데 신부생활 하는 것을 보니까 이건 완전히 대박입니다.
10년 동안 같이 살아왔지만 ‘저 친구에게 저런 모습이 있을 줄이야’ 하면서
감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주님의 능력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은 못난 놈을 특별한 놈으로 바꾸시는 특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은 시원찮은 채로 내보내시지 않고 안을 꽉꽉 눌러 채워주시거든요.
더러운 영들을 쫓아낼 수 있는 힘,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보살피고 고칠 수 있는 사랑의
마음과 능력, 당신을 전할 수 있는 지혜를 가득 채워서 보내주십니다.
주님은 당신의 협력자들에게 제까짓 것 능력 발휘하라는 것이 아니고,
당신 힘을 발휘하는 도구로 살라고 보내셨기에 그런 것이지요.
주님의 일꾼은 ‘못나야 제대로’입니다.
 그 깊은 곳
아무도 없는 성당에 앉아 있으면 적막한 마음이 들어 외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 외로움이 감실 안에 계신 예수님을 불러내는 것 같아 좋다.
지난해 성당에서 그를 만난 날이 생각난다. 집에 오는 길에 동네 성당에 들러
뒷자리에 앉아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는데 어디선가 소리가 들렸다.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여자 울음소리가 들려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주위를 둘러보니
감실 앞 제대 바닥에 고개를 떨군 채 앉아 있는 한 아가씨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길게 머리를 늘어트리고 이 추운 겨울에 아주 짧은 청치마를 입고
찬 제대 바닥에 앉아 흐느끼고 있는 아가씨의 모습은 바라만 봐도 그의 슬픔이
전해오는 것 같았다. 울음소리와 함께 “이대로는 살고 싶지 않아요. 너무 너무
지쳤어요. 저도 사람답게 살고 싶어요…” 하는 울부짖는 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더이상 그냥 앉아 기도만 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가
물 한 잔을 건네고 세례명이 뭐냐고 물었다. “글라라요.” 근처 사느냐고 물었다.
“강남에요!” 그 아가씨는 묻는 말에 즉시즉시 대답했다. 그렇게 한두 마디
물었을 뿐인데 그는 뜻밖에 자기 이야기를 했다. “대학을 중퇴하고 결혼 전에
임신과 유산을 했어요. 유산을 아무렇지도 않게 권하는 남자친구가 미웠고
유산했다는 죄책감에 방탕한 생활을 했죠. 그때 카드값을 갚기 위해 사채를
빌렸는데 그걸 갚을 길이 없어 술집에 나갔어요. 그런데 갚아지지가 않아요.
저녁 6시에 출근해서 다음 날 아침 9시까지 지옥 같아요. 저도 다른 사람들처럼
낮에 직장생활하고 저녁에 친구 만나 수다도 떨면서 그렇게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처음 만난 내게 멍들고 상처난 다리와 어깨를 보여주고
흐느끼는 그를 아무 말 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예수님 앞에 엎드려
우는 사람들을 보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그분의 마음 깊은 곳에
어떤 것이 있을까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이은정 | 편집부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강론 묵상 모음집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