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 마태오 9,35-10,1.6-8 ▒ 12월 8일 복음말씀에서 ◈
한국 가톨릭문화원 카페 특별회원 요아킴님의 사진입니다.
┗▶『해설과 묵상』
목자 없는 양떼 같이 허덕이는 많은 군중들을 보면서
아쉬워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리면,
문득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무엇이 있다.
그것은 "왜 예수께서 한꺼번에 군중의
부족함을 채워주시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다.
예수께서 기적만으로 세상을 바로 잡으려고 하셨다면
굳이 온 마을을 두루 다니실 필요도 없겠거니와
아예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실 필요도 없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처럼 한 마디 말씀으로
타락한 세상을 구원하실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이유와 의미를 찾아야 한다. 아울러 오늘 복음이
무엇을 선포하고자 하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오늘 복음을 도식으로 설명하자면,
"예수님의 활동(열정) -> 목자의 부족(절망) ->
제자들의 파견(희망)"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예수님의 분주하고 열정에 찬 선교활동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상황은 거의 절망적이다.
양떼는 많은데 이를 돌보아 줄 목자가
턱없이 부족한 현실은 가히 절망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모든 양떼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일꾼을 청하라고 독려하신다.
예수님 스스로 많은 제자들 가운데 12명을 선발하시어
사도로 삼아 절망에 찬 세상에 이들을 파견하시어
희망을 주시는 것이다.
12명의 사도로 절망적인 현실이 구제될 수 있겠는가?
물론 불가능하며 중과부적(衆寡不敵)하다.
그것은 "추수할 것은 많은데 추수할 일꾼이 적다"는 말씀을
수(數)적인 부족으로 생각할 때 그렇다.
양적(量的)인 요청이 간절할 때도 많지만
질적(質的)인 풍요가 더 중요하다.
우리가 예수님의 파견설교(10장)를 귀담아 듣는다면
이 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예수께서 실행에 옮기기에도 어려운 엄격한
선교상의 여장규칙을 언급하신 것을 생각해 보라.
따라서 문제는 양(量)에 있지 않고 질(質)에 있다.
그 질(質)을 오늘 복음에서 찾는다면,
그것은 바로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8절)는 말씀이다.
세상 사람들 중에 자기가 가진 것을 거저 받았다고
여기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박상대 신부』
목자 없는 양떼 같이 허덕이는 많은 군중들을 보면서
아쉬워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리면,
문득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무엇이 있다.
그것은 "왜 예수께서 한꺼번에 군중의
부족함을 채워주시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다.
예수께서 기적만으로 세상을 바로 잡으려고 하셨다면
굳이 온 마을을 두루 다니실 필요도 없겠거니와
아예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실 필요도 없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처럼 한 마디 말씀으로
타락한 세상을 구원하실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이유와 의미를 찾아야 한다. 아울러 오늘 복음이
무엇을 선포하고자 하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오늘 복음을 도식으로 설명하자면,
"예수님의 활동(열정) -> 목자의 부족(절망) ->
제자들의 파견(희망)"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예수님의 분주하고 열정에 찬 선교활동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상황은 거의 절망적이다.
양떼는 많은데 이를 돌보아 줄 목자가
턱없이 부족한 현실은 가히 절망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모든 양떼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일꾼을 청하라고 독려하신다.
예수님 스스로 많은 제자들 가운데 12명을 선발하시어
사도로 삼아 절망에 찬 세상에 이들을 파견하시어
희망을 주시는 것이다.
12명의 사도로 절망적인 현실이 구제될 수 있겠는가?
물론 불가능하며 중과부적(衆寡不敵)하다.
그것은 "추수할 것은 많은데 추수할 일꾼이 적다"는 말씀을
수(數)적인 부족으로 생각할 때 그렇다.
양적(量的)인 요청이 간절할 때도 많지만
질적(質的)인 풍요가 더 중요하다.
우리가 예수님의 파견설교(10장)를 귀담아 듣는다면
이 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예수께서 실행에 옮기기에도 어려운 엄격한
선교상의 여장규칙을 언급하신 것을 생각해 보라.
따라서 문제는 양(量)에 있지 않고 질(質)에 있다.
그 질(質)을 오늘 복음에서 찾는다면,
그것은 바로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8절)는 말씀이다.
세상 사람들 중에 자기가 가진 것을 거저 받았다고
여기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박상대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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