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마리아 대축일 |
2006-12-08 |
루카 1,26-38
여섯째 달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 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 | |
오늘은 한국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입니다. 조선의 제2대 교구장으로 엥베르 주교님(1796-1839)이 임명되었습니다. 1837년 북경에서 주교품을 받고 조선으로 입국한 엥베르 주교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조선교구의 공동수호자로 모실 수 있기를 교황청에 청원을 합니다. 당시 교황 그레고리오 16세께서는 이 청을 받아들여 엥베르 주교가 순교한 후 1841년 8월 22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성요셉과 함께 조선교회의 공동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습니다. 그리고 14년이 지난 1854년 12월 8일 교황 비오 9세께서는 이 날에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심"을 "믿을 교리"로 선포하였습니다. 내용은... "나는 동정 성모 마리아께서 우리 인류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어 잉태되신 첫 순간부터 원죄에 물듦이 없으심을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교의(敎義)로 확실히 선언하는 바이며, 이에 따라 모든 신자들은 이를 확실히 믿을 것을 선포한다..."는 내용입니다. 1854년 선포된 이 교리 내용을 두고 세상의 사람들은 성모님의 원죄없이 잉태되심을 두고 말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4년 뒤인 1858년 2월 11일 루르드의 작은 동굴에서 일어난 성모님의 발현에서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성모님은 18번에 걸쳐 당시 14세의 소녀 벨라뎃타에게 발현하셨는데, 12번째 발현한 성모님께 벨라뎃타가 "부인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고, 침묵을 지키던 성모님은 소녀의 세 번째 물음에 "나는 하자 없는 잉태로다" 하고 대답하였던 것입니다. 이로써 성모님 스스로가 4년 전에 선포된 "무염시태" 교의를 추인해 주심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일이었습니다.
거룩하신 예수님을 모신 몸이 원죄의 물듦에서 보호를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사실은 하느님의 은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따라서 성모님께 선사하신 이러한 하느님의 도우심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필요합니다.
오늘 하루, ‘그대로 너에게 이루어지기를 빕니다.’라고 하신 성모님의 순명 정신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의 모범을 따르면서 또한 그분께 도움을 청해 봅니다. 그분의 전구하심으로 우리의 하루가 주님께 영광을 드리는 날이기를 기원합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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