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가꾸는 성소의 못자리 - 이기양 신부님

2006. 12. 9. 오전 10:26:52

글자

<대림 제1주간 토요일>            우리가 가꾸는 성소의 못자리

 

제 1독서 : 이사 30,19-21.23-26 (네가 부르짖으면 주님께서 너희에게 자비를 베푸시리라.)
복    음 : 마태 9,35-10,1.6-8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우리 말에 ‘인복(人福)이 많다’는 말이 있습니다.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고 누구나가 잘 따르는 사람을 일컬어서 일반적으로 ‘저 사람 참 인복이 많다.’하고 얘기합니다. 이 말 안에는 마치 인복을 타고난 것처럼 여기는 생각이 담겨 있지만 인복이란 실은 타고났다기보다는 자기 삶의 결과로 나타난 부속물이지요. 아무리 좋게 타고났어도 이기적이며 자기만 알고 인색한 사람에게는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평상시에 남에 대한 배려를 잘하며 나눌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라면 늘 추종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좋아하는데 이런 사람을 두고 우리는 인복이 많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인복은 하늘에서 떨어진다기보다는 성실하고 따뜻하며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만난 삶의 결실이라고 이야기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인복이 많아서 사람이 많이 모이면 좋지만 사람이 많이 모였다고 또 모두가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나쁜 사람의 주변에는 나쁜 사람들만 모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많이 모여도 행실이 좋지 않은 사람들의 모임을 두고 인복이 좋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깡패들이나 사기꾼처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모인 사람들을 보고 저 사람, 참 인복이 좋아서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고 표현하지 않습니다. 성실한 사람들, 그리고 또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모이고 또 그 모습을 보고 서로 격려하며 더욱 잘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인복이 많다고 말합니다.

   이는 신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자들에게 인복이 많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인복하고 차원이 또 다릅니다. 세상의 논리대로 사는 사람을 우리는 좋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복음적인 삶을 살고 또 복음적인 마음을 담고 실천하는 사람, 또 그런 이웃에 함께 동참하고 그 사람의 모습을 보고 하느님과 함께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이러한 사람들이 하느님의 은총 속에서 좋은 관계를 형성해가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 안에서 친교와 평화가 이루어지고 또 나누는 사람들은 만나기만 해도 상쾌하고 기분이 좋습니다. 그래서 신자들에게 사용하는 인복이 많다라는 표현은 역시 복음적인 실천을 지향하며 모일 때 할 수 있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삶의 결과가 인복이라는 열매로 맺어지듯이 오늘 복음에서처럼 수확할 일꾼을 보내 달라고 청하는 기도 역시 그 성당의 분위기가 맺어내는 열매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시달리며 허덕이는 군중을 보시고 불쌍한 마음이 들어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 9,37-38)
   그렇습니다. 많은 목자들이 필요하지요. 신자 수가 해마다 증가하여 지금 우리 본당의 식구는 3800 여명이 되는데 여러 명의 사목자들이 함께 한다면 훨씬 더 좋겠지만 도움을 줄 사목자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 9,37-38)고 하신 이 말씀이 우리에게 그대로 해당이 되지요.
   많은 사목자들이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 성당에는 사목자가 되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는 신학생이 한 명 있고, 또 우리 성당에서 다른 교구로 간 신학생이 있으며, 여러 명의 예비 신학생들이 성소의 꿈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청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어떻게 실현시킬 수 있을지, 또 어떻게 하면 사목자들이 많아질 수 있을지를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역시 끊임없는 관심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당이 좋은 모습, 좋은 분위기일 때 신부되고 싶은 사람이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사람이 좋아야지 인복(人福)의 결과가 좋듯이 공동체에서 신부가 되고 싶은 사람이 많이 나오려면 성당의 분위기가 좋아야 할 것입니다. ‘신부 되고 싶다’혹은 ‘신부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마음이 배어 나와야 된다는 말이지요.
   예를 들어 신자들끼리 서로 다투며 비난하고, 또 본당 신자들끼리 신부, 수녀를 잘 따르지 않고 화목하지 못하다면 시끄럽기만 하고 신부나 수도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나오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당연하지요. 혹 있다고 해도 좋은 사목자가 나오기는 어렵겠지요. 비뚤어지거나 사목을 자기 이익을 위한 방편으로 생각하는 잘못된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자들이 사목자를 존경하고 신자들끼리 서로 화목하며 헌신하고 따르는 분위기 속에서 복음적인 공동체가 만들어지면 자연히 많은 신부 지망생과 좋은 사목자들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인복이 삶의 결과이듯이 한 성당의 복음적인 모습이 좋은 목자를 만드는 성소의 못자리입니다.

   그런 면에 있어서 우리에게는 참으로 희망이 많습니다. 우리 신자들이 워낙 열심하고 <성경 쓰기>, <신심 서적 100권 읽기>, <기도학교>, <단식>,  또 가난한 사람들과의 나눔의 실천 등을 통해 부단히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 화목하고 사목자를 잘 따르며 또 사목자는 신자들을 위해 헌신하는 이러한 노력들이 이제 서서히 열매로 드러나리라고 생각됩니다. 정말 남들이 부러워하는 성당, 그리고 내실이 튼튼한 모습으로 계속 성장할 때 막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사목자가 되고 싶은 좋은 비젼을 제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사목자가 있어야 좋은 신자들이 나옵니다. 또 좋은 신자들이 있어야지 좋은 사목자가 나옵니다. 사목자의 질이 떨어지면 신자의 질도 떨어지지요. 신자들의 질이 떨어지면 사목자의 질도 함께 떨어집니다. 그래서 좋은 사목자는 역시 복음적인 분위기와 기도하고 관심갖고 노력하는 신자들 속에서 만들어지고, 또 좋은 사목자가 나올 때 신자들은 영적인 성숙을 이루고 하느님과의 만남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겁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많이 염려하시지요.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달라고 청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복음적으로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고 그 노력 안에서 좋은 성소의 바탕이 만들어지며, 우리 신자들이 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마음을 모을 때 정말 좋은 사목자가 많이 나오는 영적인 쇄신이 이루어지지 않나 생각됩니다.
   오늘 예수님의 염려가 우리 성당에서 결실로 맺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상의 논리가 아니라 하느님 중심으로 살아가려고 할 때 우리 집안이, 또 우리 본당이 바로 성소의 못자리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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