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곱게 내는 것... - 이찬홍 신부님

2006. 12. 10. 오후 12:13:39

글자
다해 대림 2주일 루카 3, 1-6- 길을 곱게 내는 것...

어느덧, 연보라 초에 불이 환하게 타올라 대림 2주일을 맞이했음을 알려줍니다. 대림 2주일은 한국 교회가 전한 인권 주일이기도 합니다.
인권 주일에 교회는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기에 동등한 고귀함과 존엄성을 지니고 있음’을 다시금 강조합니다.

사람이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의 인권을 무시하는 것은 그 사람만이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 하는 하느님까지도 무시하는 것임을 잊지 말고,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대림 2주일에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예언자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은 말씀을 알려주십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곱게 내어라”

주님의 길을 곱게 내는 것!
이것이 대림 2주일에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요, 해야 할 일임을 복음은 알려줍니다.

좋은 생각 11월호 ‘자전거와 아버지’ 라는 글이 있습니다.
「후배 세현이는 서울의 변두리 동네 구파발 토박이다. 지금과는 달리 세헌이가 어릴 적에는 집에서 도로까지 300미터가 넘는 길이 순 자갈길이었다. “어릴 때 아빠한테 자전거를 사달라고 밥도 안 먹고 막 졸랐어. 결국은 아빠지 지고 말았지.” 세헌이가 어릴적 추억을 꺼내놓았다...(중략)...
인기척에 눈을 비비며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아직 아침은 멀었지만 오줌이 마려운 김에 마당에 세워둔 자전거 안부도 궁금해서 자리를 박차고 마당으로 나갔다. 그때 세헌이는 조심스레 대문을 빠져나가는 아빠의 뒷모습을 보았다. 평소 아침잠이 많아 날마다 엄마에게 핀잔을 듣는 아빠가 꼭두새벽에 출타하시니 호기심이 발동한 어린 아들은 몰래 뒤를 밟았다. 아바는 허리 한 번 펴지 않고 300미터가 넘는 길을 걸으며 자갈을 골라냈다....
그러한 아빠를 부른 아들은 아빠의 손을 잡고 마술처럼 자갈이 사라진 편편한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왔다.」(좋은 생각 2006년 11월 37p)

아버지가 새벽에 자갈길을 고르며 평평하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들이 자전거를 타다가 자갈에 걸려 넘어 질까봐 미리 장애물을 걷어낸 것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데 안전하고 편하게 하기 위해 졸린 눈을 비벼 뜨며 힘들게, 힘들게 자갈을 치워낸 것입니다.

우리도 길을 곱게 내어야할 사람들입니다.
바로, 주님께서 걸으실 길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걸어오실 그 길을 곱게 내어야합니다.
단순히 의무감과 교회에서 하라고 하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에 아들을 위해 길을 곱게 냈듯이, 우리 역시 주님에 대한 사랑으로.. 주님께서 우리 마음 안에 오셔서 잘 머무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길을 곱게 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곱게 해야 할 길은 어떤 길입니까?
하느님 닮은 영혼의 순수함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외적으로 드러난 결과가 아니라, 본질, 마음을 고치는 내적인 회개입니다.
이렇게 참된 내적인 회개를 이루는 것이 주님의 길을 곱게 내는 것이요, 오시는 주님을 잘 맞이하는 노력입니다.

우리가 이루어야 할 내적인 회개는 무엇입니까?
자신의 마음 안에 가득한 것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는 것입니다.
쓰레기, 휴지 등을 주우며 우리 주변의 길을 깨끗이 청소하듯이, 내 안에 가득한 쓰레기, 오물, 휴지 등의 이름으로 자리한 그릇된 감정들을 제거하며 정화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멀어진 마음, 감각을 다시 예수님께로 맞추는 것입니다.

그렇게 걷어낼 것은 걷어내고, 매울 것은 메워가며 마음의 길을 평탄하게 할 때, 우리는 ‘내 님이 걸으실 길을 곱게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뿌듯해질 것입니다.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함과 따분함이 아니라, 희망과 기쁨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는 흰 도화지가 필요합니다.
별을 환하게 보기 위해서는 주위의 고요함과 어두움이 필요합니다.
만약, 네온사인이나 가로등 밑에서 별을 보려 한다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별 빛보다 네온사인과 가로등 빛이 환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오시는 주님을 잘 맞이하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 안에 환하게 켜 있는 욕망의 불을 꺼야만 합니다.
마음 안에 가득 차 있는 그릇된 감정, 욕심들을 하나하나 제거하며 마음을 비워 놓아야 합니다.
우리 안에 욕망이 가득 차 버리면 오시는 주님을 잘 모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 안에 오신 주님이 편안히 쉴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욕망의 불을 끄고, 마음을 비워놓는 놓는 것이, 주님의 길을 곱게 내는 것이요, 세례자 요한이 말하는 내적인 회개임을 이 한 주간만이라도 잊지 맙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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