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최남진 베드로
당나라의 애국시인 두보는 양자강 절벽에 서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남긴 '각이야' 는 시에서 "충신이나 간시이나 모두다 사람이다. 한번 죽으면 다 같이 흙이 도니다"고 했다. 옳은 말이다.
인간의 삶이란 어차피 죽어 흙으로 돌아가기 마련 아닌가. 그러나 인간의 삶은 또 한편으로 어쩔 수 없이 역사 속에서 자취를 남기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의 삶에 대한 역사의 평가를 두려워한다. 특히 나라와 국민들을 앞장서서 이끌고 나아가는 사람들의 몸가짐과 행동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날카롭고 매서운 비판을 받게 된다. 그들은 세상 사람들의 눈과 귀를 늘 자신 족으로 향하게 하고는 찬사를 받기 때문이다. 물론 질타와 비난도 받는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 자신이 이러한 삶을 기꺼이 즐긴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작은 집단이나 국가의 지도자급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후대가 심판할 역사를 두려워하고 자신들의 삶을 갈고 다듬으며 늘 성찰하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그래서 역사를 양심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근 현대사에 대한 제대로의 자리매김은 과거사에 대한 바르고 공정한 자리매김으로부터 출발한다. 혀대사가 다양함으로 인해 역사에 대한 평가도 다양해야 한다는 논리는 어느 한편에서만 타당할 따름이다. 사회가 다양해졌다고 해서 옳고 그름, 착하고 나쁜 것, 악과 선이뒤섞일 수는 없는 것이다.
기준이 없고 당리당략에 편승한 일부 학자나 권세가들의 비뚤어진 역사바로잡기는 공허한 메아리이며 과오와 허물을 부추길 뿐이다. 그것은 후손들에게 짐을 또넘기는 것이나 다름 아니다.
역사를 뒤돌아볼 때 어느 나라 민족치고 간신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역사 자체가 간신들이 발호한 간행사인 듯한착각마저 들때가 있다. 오늘날에도 비슷한 상황은 쉼 없이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 대한 심판은 매섭지 못했다.
어떠한 때도 평가의 잣대나 심판의 정확함마저 우왕좌왕했다.
역사는 숱한 반란의 상처가 있다. 세상을 손아귀에 넣어 보려는 욕망이 있는 자들은 모두 반역과 혁명을 꿈꾼다. 그 혁명과 반역, 개혁의 꿈은 아득하지만 아름답다.
구 주체가 시대적 모순과 압박과 아픔을 온몸으로 부대끼고 있는 민중이면 그것이 혁명이다. 프랑스 대혁명, 러시아 혁명, 미국의 노예 해방과 같은 민중들의 요망의 분출이면 혁며이고, 권력쟁탈에 대한 읿 야심가들의 행동이면 역사는 이를 쿠테타라고 일컫는다. 그들의 뜻과 희망을 이룩한 자는 영웅이라 부르고 그 뜻을 펴지 못한 채 패배한 자는 역적이라고 한다.
영웅과 역적의 갈림길에는 항상 운명의 여신이 있다. 얼핏보면 이 운명의 여신이 역사를 이끌로 현재를 움직이며 미래를 만들어 나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난세를 질풍노도처럼 뚫고 중원을 장악한 천하의 호걸 항우도 이 운명의 여신 앞에선 눈물을흘리며 애첩인 우미인을 끓어 안고 자결을 해야만 했다. 역사상 얼마나 많은 영웅호걸들이 이 운명의 여신에게 희롱 당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오늘의 혁명과 반라에는 이 운명의 여신의 냄세가 짙게 베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은 인간 스스로의 영혼이다. 운명의 여신이란 우리 인간의 영혼이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다. 역사에는 우연같은 운명적인 요소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모든 역사적 사건의 발생에는 필연적인 요소와 조건이 반드시 있다. 원인이 있는 곳에 결과가 있고 인과엔 응보가 따르기 마련이다.
여사는 양심이다. 그리고 역사는 정의다. 조선시대 최대희 비운인 단종의 폐위에는 세조와의 힘과 대결의 상실이라는 필연적인 요소사 숨어있는것이다.
성공한 반란보다는 실패한, 그래서 더 많은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상처를 어루만질 적마다 역사의 명구를 떠올리게 된다. '소를 훔쳐간 도둑은 목이 잘리지만 나라를 통째로 훔친 자는 왕이 된다 '고 중국의 사기를 쓴 사마천은 ㄱㄹ판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또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동등해지기 위해서 반란을 일으키고 우수한 인간이 되기 위해 평등을 구한다.' 이밖에도 지돚급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성찰하고 언제나 자세를 다듬어야 할 역사의 가르침은 너무도 많아.
반란의 불길을 칼로 부채질해서는 안된다. 반란을 방지하는 확실한 방법은 그 원인을 제거하는 길이다. 현세의 행복에 대한 갈망은 반란 정신에 완전히 사로잡히게 된다. 역사에서 가끔 소규모의 반란이 일어나는 것은 저항의 의미로 유익하며 물리적 세계에서 몰아치는 폭풍처럼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혁명을 도모하고 일으키는 데에 대중은 필요 없다 목숨을 바치겠다는 소수의 지도자와 건전하고 그럴듯한 구호만 있으면 된다. 모반과 반역, 개혁과 혁명의 유일한정당성은 성공뿐읻. 성공의 결과는 그 앞의 모든 과오를 덮어버리기 ㅐ문이다.
저항은 도재자들의 정신을 바로 잡을 수 있다. 국민을 압박하는 정부와 독재자들의 혹독한 압정은 설령 정당성을 주장했다. 해도 항쟁을 불러온다. 인간으로서 짓밟히기보다는 차라리 개가 되겠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트예프스키는 반란이야말로 큰 사업이라고까지 역설했다. 나는 저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독재자에 대한 저항은 신에대한 복종이다.
역사는 참혹라리만큼 가호하다. 위정자들ㅇㄴ 그래서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 깨우침을 얻어야 한다. 역사에서 배운 자는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게 하지만 역사를 외면한 자에겐 고통의 역사를 다시 맛보게 한다. 역사 앞에 숙연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는 동학의 사상인 인내천을 배우자, 사람의 생명은 유한하지만 역사는 도도히 흐른다. 때로는 조용하게 어느 때는 거칠게 끊임없이 흘러간다. 역사의 흐름엣 인간은 참됨이 무엇인가를 배워야 한다. 역사는 양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