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마무리는비움입니다.
-글 쓰며 달려온 50평생, 이제 펜을 놓습니다-
시각 장애인 최남진 베드로
며칠 전 신문사 후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올해가 글 쓰신지 50년이 되는 해인데 자축해도 좋고 타축해도 좋으니 연말에 한번 만나 보겠다는 전갈이었다.
가만히 50년 전의 일을 회고해 보았다. 군에서 제대하고 복학하던 그해 전국 대학생 논문 콘테스트에서 최우수상을 탄 후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50년의 기나긴 세월동안 35년은 한국일보 기자생활로, 그후 15년은 시각장애인으로 줄곧 글을 써왔다.
엄청난 양의 기사와 갖가지 글을 썼다. 기자생활은 직업인으로써, 어둠속을 헤매는 시각장애인 기간동안은 내 마음을 추스르고 온갖 고통을 잊으려는 방편으로 글을썼다.
그 많은 글들 중에서 기억에 남는 좋은 글은 몇 안 된다. 밝은 세상에서 썼던 칼럼 두쳔과 어둠의 세계에서 썼던 수필 한 편이 기억에 또렸할 뿐이다.
이런 글쓰기 작업도 이제 끝났다. 머리를 옥죄이는 스트레스에서도 해방이다. 아쉬움이 남을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다. 생각보다는 홀가분하다. 그저 쓸쓸할 뿐이다.
시작과 끝을 분명히 하려는 신념은 50년 전과 다름없다. 이제 그 마지막 글을 쓰려고 긴 푸념을 늘어 놓는다. 그동안 글을 많이 썼고 말도 많이 했다.
여생은 많이 듣고 말을 적게 하는 일이다.
글 쓰는 일을 마치며 이제 손때 묻은 펜을 놓는다. 시작과 처음은 마지막과 끝을 전제로 한다.
시작의 종착지는 마지막이고 처음의 귀결지는 끝이다. 이 땅위에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다. 생로병사의 인생여정도 그러하다. 태어남은 죽음을 행한 첫 발걸음이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30여년이 넘는 기자 생활동안 무수한 기사를 썼다. 신문기자가 되었다는 희망의 열정은 나를 역동적인 삶으로 바꿨고 피로나 권태기는 느낄 겨를도 없이 기자 생활이 마냥 즐거웠다. 즐거워서 하는 일은 언제나 에너지를 발산한다. 거기에다 정의와 변치 않을 지조로 평생 기자로써 내 삶을 마치겠다는 생각이 나를 지탱케 했다.
내 이름 석자가 처음 신문에 등장한 그 기사는 곱게 오려 자그마한 액자속에 넣었다. 선배들도 모두 그러했다고 한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기자직을 그만두게 되면서 내가 쓴 마지막 글을 챙기지 못했다.
이제 글쓰는 생활 50여년을 동이켜 보며 희노애락과 정의와 지조와 신념으로 살아온 것들이 모두 허망하고 부질없음을 느낀다. 내가 썼던 모든 글들이 부끄러웠고 나의 마음이 그렇게 끝간 데없이 달려왔는가 하는 회상에 잠긴다. 부질없는 인생에서 글 쓰는 일쯤은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이젠 모든 것들을 후회해도 소용없다 그저 성찰하고 참회하는 길 밖에는 없다.
언제나 처음과 시작은 화려하고 역동적이고 의욕이 넘친다. 하지만 끝과 마지막은 쓸쓸하고 허무하다. 칼바랍이 부는 매서운 겨욱바랍을 온 몸에 안고 넓은 들판을 홀로 걷고 있는 심정이다.
몇 해전부터 내 글의 마지막을 무엇으로 쓸 것인가를 늘 가슴과 머릿속에 담아왔다. 그 생각은 한시도 나를 떠난 적이 없다.
어떤 일이든 반드시 끝이 있다. 이 시점에서 내 마음을 접고 글쓰기를 마무리 하는 때라고 여긴다.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일은 집착을 내려놓고 빈 마음을 갖는 일이다.
2008년 끝자락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