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적 사랑

2008. 9. 10. 오전 12:2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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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적 사랑 우리 모두는 매일매일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갈 의무가 있습니다. 이 사랑에 대해서 특히 수도가정 안에서의 사랑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이웃 사랑은 한마디로 하느님에 대한 사랑입니다. 이것은 이웃 안에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하느님의 모상과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합니다.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모상이므로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자연적인 의무입니다. 또 성화은총 중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성인이 되고자 진지하게 노력하고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초자연적인 의무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느님과 보다 가깝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느님과 보다 가깝기 때문입니다. 즉 자기 수도가정의 멤버를 사랑하는 것은 더 큰 의무라는 것을 깊이 확신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선 그들은 하느님께 봉헌된 자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그들은 이미 많은 일을 한 사람들로서, 하느님으로부터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세째로 우리와 같은 이상을 가지고 같은 사도직을 하고, 같은 목적을 가지고 일하며, 우리와 결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사랑의 실천은 언제나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서로 가까이에 있습니다. 생활을 통해서, 죽음에 임하여 또 사후에도 가까이에 있을 것입니다. 한 사람은 성당[천국]에 또 한 사람은 제의방[지상]에 있다고 하여 떨어져 있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죽어서도 지상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바치는 기도와 이미 영원한 세계로 옮아간 사람들의 전구라는 유대가 있습니다. 사랑은 우선 제일 가까운 사람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서로 참고 견딜 필요가 있고,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 번민하는 사람들에게 빛을 주고, 고통당하는 사람을 위로하고, 그를 도와주고, 서로 교정하고, 서로 좋은 모범을 보이고, 서로 기도하도록 무수한 기회가 주어집니다. 수도회에 입회하는 사람들은 자기를 성화하기 위한 적당한 수단을 발견하고자 입회하는 것입니다. 그 수단의 하나는 틀림없이 공동생활을 통한 사랑의 실천입니다. 예수님은 이웃에게 한 것을 모두 자기에게 한 것으로 생각하십니다. 자매간의 사랑의 실천은 필수적인 것이면서도 그 실천은 매우 어렵습니다. 공동생활에는 오해하기 쉬운 기회도 많고 서로 멍에가 될 때도 있습니다.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사려깊고 인내로와야 합니다. 형제애의 실천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첫째로 서로 좋은 모범을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 사도직을 이행할 의무가 있으며, 이것은 모든 사도직 중에 제일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욕설과 쟁론의 원인이 되는 사람은 자기 책임에 대하여 반성해야 합니다. 두번째 사도직은 기도입니다. 형제 자매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까? 모두가 성성에 달하도록 기도하고 있습니까? 공동체 안에서 실천해야 할 또하나의 의무는 인내입니다. 어떤 결점을 보더라도 인내롭게 이를 참고 극복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웃의 결점을 크게 떠든다든지, 이에 관하여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이해하고, 돕고, 언제나 봉사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을 좋게 생각하고, 좋게 이야기하고, 좋은 일을 하도록 합시다. 모든 사람을 좋게 생각하는 것은 경솔한 판단이나 의심을 피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지성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이웃을, 예수님의 사랑을 받으며 수도생활에 불림 받았고, 하느님 나라와 훌륭한 사도직에 불림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시다. 결점, 잘못, 실책, 혹은 죄짓는 것을 보았다 하더라도 용서해 줍시다. 언제나 용서합시다. 왜냐하면 우리는 진상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자기가 하고 있는 일,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은혜를 충분히 알고 있었는지, 하느님을 모욕할 생각이 있었는지를 우리는 모릅니다. 선의로 해석합시다. 특히 나쁘게 해석할 이유가 없을 때에는 경솔한 판단, 경솔한 의심을 오히려 두려워해야 합니다. 자매의 행동을 판단하는 나는 도대체 누구입니까? 생각해 봅시다. 사람을 지도하는 입장에 선 사람이 " 자기는 마치 수하에 있는 사람들이 나쁜 사람인 것처럼 언제나 너무 지나치게 의심을 한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을지 모르나 우리는, 우리 곁에 있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 아닌가 걱정하기보다는 오히려 악마가 그를 머리에 나쁜 생각을 불어넣고, 그들의 약점을 이용하여 나쁜 꾀를 부리게하지 않는지를 걱정하는 것임을 기억해 둡시다. 그러므로 수하 사람들을 돕고, 지켜보고, 나쁜 점을 고쳐주는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이 여러분의 모든 생각의 근저에 있도록. 모든 사람에 대하여 좋게 이야기합시다. 악의가 있는 사람은 이야기거리가 많이 있는데도 언제나 돌아다니며 나쁜 것을 찾아내려고 합니다. 이웃을 욕하는 것은 악을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모든 사람의 선을 바라야 합니다. 결코 질투심이나 악의에 져서는 안됩니다. 이웃의 좋은 점, 이웃이 행한 선이나 덕을 이야기합시다. 작은 일이라도 잘되지 않으면 이를 자기 탓으로 돌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언제나 좋지 않은 것은 자기 탓으로 돌리고 잘되어 칭찬할 만한 것은 무엇이나 이웃이 한 일로 돌리려고 합니다. 얼마나 훌륭한 태도입니까!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입니까! 한편, 잘되지 않는 것은 무엇이나 이웃의 탓으로 하고 잘된 일, 좋은 일이 있으면 자기도 그곳에 있었으며 그것은 전부 자기의 공적이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합시다. 주의깊게 살펴보면 매순간 이웃에게 친절을 베풀 수 있는 무수한 기회를 발견하게 됩니다. 사랑은 감정이나 마음에도 나타납니다. 이웃사랑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마찬가지로 세 가지 형태로 성립되어 있습니다. 우야, 호의의 사랑, 정애(情愛). 우애란 형제 자매가 소유하고 있는 재능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시샘이나 질투와는 반대의 것입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이 보여주신 자비를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 형제 자매는 모두 하느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뛰어난 지적 은혜를, 다른 사람은 정신, 마음, 덕, 건강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가끔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라고 생각지 않으나 모든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은혜요 선물입니다. 주님은 이렇게까지 좋으신 분, 자비로우신 분, 현명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각 사람을 성성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당신의 전지(全知)하심으로 섬세하게 돌보시며, 성인이 되도록 기회를 주십니다. 하느님 섭리의 감미로움! 그것은 심판날 비로소 그 전모가 밝혀질 것입니다. 호의의 사랑이란 형제 자매의 선을 바라고 주님이 그들에게 더 많은 은혜를 주시고 선과 열심과 성성의 은혜와 사도적 성공을 하도록 도와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웃의 건강 등 물질적 선, 즉 그들이 이웃에게 잘 받아들여지고 필요한 영적 결핍이 채워지기를 바라는 것이기도 합니다. 진심으로 그들의 선을 바라고, 그들을 하느님께 맡깁시다. 이웃이 무엇을 해줄 때 반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나 그래도 의지적으로 그 사람의 선을 바라고 그 사람 안에 은혜가 가득 주어지기를 바라야 합니다. 세번째로 정애(情愛)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생활이 행복한 것이도록 형제 자매와 사이좋게 지내고, 공동생활을 잘하고, 서로 성화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결점, 질병, 약점, 고통의 멍에를 이웃에게 지우지 않도록, 자기의 고통을 감추고 오락시간을 즐겁게 보냅니까? 정애란 특별한 정이 아닙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을 평등히 사랑하고 싶어하는 원의입니다. 자기보다 연장인 형제 자매에 대하여 존경심을 가져야 합니다. 연장자는 손아래 사람에 대하여 좋은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언제나 자기 혼자 해나가려는 사람은 공동생활을 충실히 살지 못합니다. 우애, 호의의 사랑, 정애는 공동체 안에서 형제 자매를 발견하게 해주는 것이므로 필요합니다. 수도회는 어머니와도 같습니다. 장상은 우리의 지도자요, 함께 생활하는 이들은 형제 자매입니다. 같은 수도회의 자녀이기때문에 형제 자매입니다. 완덕의 길을 걷기 시작한 초보자가 실행하여야 할 사랑은 이웃사랑을 거스르는 행동을 피하고 이웃을 판단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평등히 대해주는 것입니다. 진보한 사람의 사랑은 예수 성심의 사랑을 본받는 것입니다. 성심의 감정, 생각, 원의를 자기 것으로 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완성의 단계에 이른 사람의 사랑은 희생에까지 이릅니다.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 13)는 주님의 말씀대로. 이웃을 위하여 자기를 다 써버리고 제물로 바치기 위하여 자기의 바람과 안락을 모두 버리고 항상 이웃에게 봉사해야 합니다. 장상은 수하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희생해야 합니다. 성심의 사랑은 자기를 희생제물로 바치는 절정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장상들은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이웃의 변덕이나 나약을 참아 가며 봉사하는 것, 이웃의 종이 되는 것 입니다. 장상들은 자기에게 맡겨진 사람들의 죄의 보속 때문에 자신을 제물로 바쳐야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기 위하여는 이미 상당한 덕을 갖추고 있어야하며, 자기가 이러한 죄의 원인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만이 스며들기 쉽습니다. 첫째로 자기 죄의 보속이 필요합니다. 여기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교만에 빠지고 말 위험이 큽니다. 단순히 친절한 행위를 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사랑의 계명대로 살기 위하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모방할 때 비로소 완전한 삶이 됩니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어떻게 나타내셨습니까? 진리, 길, 생명으로서, 즉 우리를 가르치는 스승, 자기 생애의 모범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스승, 자기 은혜를 우리에게 주시는 스승으로서. 사랑 속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본받아 진리, 좋은 모범, 기도를 통하여 얻은 은혜를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공동체로서도 이러한 사랑을 갖고 길, 진리,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드러낼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의심, 불화, 험담, 경솔한 판단, 과장을 몰아내야 합니다. 공동체를 예수님이 즐겨 머무시는 정원, 모두에게 은혜와 사랑의 선물을 나누어주는 정원으로 만들기 위하여 모든 멤버가 자기 몫을 이행해야 합니다. 참사랑을 자기 안에 배양할 수 있도록 특별히 기도하고, 이에 관하여 반성합시다. 우리 사이에 사랑이 자리하도록 합시다. 단순히 소극적인 사랑이 아니라 서로를 위한 기도, 서로 좋은 모범을 보이고 돕는 적극적인 사랑이 자리하도록. 이 지상에서의 생활, 죽음, 그리고 죽음 후에도 우리 사이에 이러한 사랑이 자리하도록 함께 노력합시다. 「믿음 희망 사랑」- "복자 G. 알베리오네 신부의 영적 가르침" 에서 성바오로 서원, 1988.

댓글 1

  • 2008년 9월 10일 오전 1:07

    "제자와 사도의 다른점은 제자는 예수님을 단순히 따르는 사람들 이지만 사도는 말씀을 전하는 사람으로서 예수님으로 부터 뽑힌 사람들" 이라는 부주임 신부님의 강론 말씀을 묵상하여 봅니다. 우리는 단순히 제자의 길을 걸어 갈 것인지 ? 아니면 나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형제적 사랑의 실천을 통하여 사도의 길을 향할 것인지 ? 우리의 삶 안에서 잠시 묵상하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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