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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입니다. 옆지기의 오지랖은 넓습니다.
저는 아시다시피 밴댕이 속에 그리 넓은 인간관계가 아니다보니 호주라는 나라가 제 적성에 맞지만
사실 이런 시골에 사는 것이 옆지기에겐 무리가 있습니다.
항상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죠.
무엇보다 기후가 좋아 한국처럼 많이 아프지 않은 것이 좋은 점입니다.
많은 이민자들이 자식들에 대한 교육 때문에 이곳을 찾았지만 저는 제 자신을 위해 왔습니다.
덕분에 공부보다는 다른 것을 좋아하는 아들놈에게도 이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예전에 아들놈 나이에 겪었던 똑같은 상황을 겪고 있는 아들녀석을 보니
한편으로는 제가 너무 심하게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제가 고 2때 큰형님 밑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였죠.
아버지께서 큰 수술을 하시고 퇴원을 하셨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때 아버지 연세가 57이셨네요.
기력이 떨어졌다 생각이 드셨는지 저에게 하신 말씀이 이랬습니다.
이제 당신은 저를 대학을 가르칠 수가 없으니 니가 알아서 학비가 들지 않는 학교에 가야한다고 그러시더군요.
뭐 인생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심각할 것도 하나 없는 하루하루를 살던 저는 꽤나 심각했습니다.
그렇다고 공부를 아주 잘 하던 것도 아니었고, 특별히 잘 하던 것도 없었던 저로서는 아주 심각해졌죠.
예술이라는 것을 하고 싶었습니다. 도자기나 공예 같은 것으로 진로를 잡고 싶었는데,
참 여의치가 않더군요. 큰형님 왈 굶어 죽을 일이 있냐며 미친놈 취급을 하시더군요.
그래서 어찌어찌 가게 된 사관학교에서 나름 많은 것을 배웠고, 삶이란 것에 가까이 다가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생각을 해보면 그 질풍노도의 시기에 고민했던 쪽으로 결국 일을 하고 있는 저를 봅니다.
나름 예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ㅎㅎㅎ. 생활예술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죠.
아들놈에게도 제가 들었던 이야기를 똑같이 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동시에 우리는 이제 남남이 되는 것이다라고. 조금 심하게 말하는 것이지만.
삶이란 것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길 저는 원합니다. 물론 이것이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모릅니다.
그렇지만 지금껏 아들놈을 믿었고,앞으로도 믿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그 녀석의 삶이 피부에 와 닿을 때면 사교성 많은 성격에 진지함이 더해져 진국이 될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적성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저도 그랬었죠. 한국 교육의 문제점입니다. 아들놈은 여전히 한국에서 겪었던 교육 환경의 틀에서 삽니다.
하루 빨리 깨어 났으면 좋겠지만 잘 안되는 모양입니다.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아니 이렇게 해라 할 수도 있지만
그냥 저는 기다립니다. 길고 긴 인생에서 자신의 선택만이 유일한 삶이라는 제 믿음이 있기에 그렇습니다.
이민을 오려면 빨리 오지 그랬냐고 가끔 말을 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아 요놈이 많이 힘들구나를 느낍니다. 언어에서 오는 어려움을 몸으로 느끼며 많이 미안합니다.
그렇지만 무엇인가 새로운 환경을 접하면 모든 사람이 똑같죠. 단지 언어라는 것은 핑계일 뿐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이런 기분을 여러번 느꼈습니다.
군대에서 재대 한 후 사회생활 시작했을 때,
전문건설 회사에서 IT로 옮겼을 때,
그리고, 생활터전을 이곳 호주로 옮겼을 때,
크게는 이렇게 세 번에 걸친 굴곡 속에서 몸으로 익힌 것이 있다면 똑같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경험해 본 이상 어떤 두려움도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있지만 극복하는 것이 맞겠죠.
저는 단지 아들에게 이것을 주고 싶습니다. 무엇을 해도 끝을 봐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성취감..
영어에서 오는 힘겨움을 헤쳐나가 나중에 무엇을 해도 스스로 느끼는 두려움을 밀어내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럴 수 있고, 그러기를 이 아침에 바라고 바라며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