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12일 화요일
2012. 6. 12. 오후 10:46:52
글자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13-1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15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
16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묵상>
각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인정 받기위해서 각자는 성취욕을 갖습니다.
하느님께 사랑받는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세상은 하느님께 사랑받는 존재가 되기 보다는
세상의 권력과 명예와 부귀를 더 귀하게 여기고
이 세가지를 위하여
어릴때 부터 많은 훈련을 받고 자랍니다.
2등은 없고 오직 1등만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1등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경쟁사회의 단순함입니다. 승자와 패자
그리스인의 삶은
하느님께 사랑받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놓는 행위를 하게 됩니다.
우리 선조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형장에서 죽었습니다.
그들중 많은 사람들이 배교를 할 수도 있었습니다.
포졸들은 마을사람들을 모아놓고
길 바닥에 십자가를 놓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를 밟고 지나가라고합니다.
우리의 선조신앙인들은 그 십자가를 밟지 않음으로써
형장에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세상의 소금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선조 신앙인처럼 소금의 짠 맛을 잃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분들은
하느님과의 신의를 지키고
하느님께 겸손하게 살아 갔습니다.
현대사회에 있어
다양한 문화체계와 질서 안에서
조화롭게 살아간다는 것은 수월치가 않습니다.
그래도 노력하면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내가 할 수있는 역량의 범위내애서 하고 싶습니다.
나의 범주를 벗어난 행위의 욕심은
또한 죄가 될 것입니다.
몇가지 해야할 일들...
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합니다.
성전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독서자의 직무는
뱃속의 창자가 뒤틀리는 전율 안에서
그 생생한 말씀의 느낌이 입으로 선포되는 신앙고백입니다.
그러한 신앙고백의 독서를 부족한 인격자인 제가 계속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오직 신께서 허락하시는 시간까지는 가야겠습니다.
제 의지보다는 신의 섭리에 맡기고 싶습니다.
이빨빠진 독서자...
두려움이 앞서는 표현입니다.
다음주 부터는 교리봉사가 시작됩니다.
1998년 방지거라는 한 수녀님의 안배로 시작한 교리봉사를 통하여
무식함이 있어야 겁도 없다는 듯이
때로는 겁도없이 씩씩하게 교리봉사를 하였습니다.
무언가 아는듯이 이야기도 하였습니다.
이제는 아는것이 없어졌습니다.
두려움이 내 마음을 덮쳐옵니다.
일상의 나태함 안에서 배웠던 지식도 많이 잊혀졌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사소한 일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제 스스로 너무도 부족한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교만이 나를 덮여옵니다. 영적교만이 나를 덮쳐옵니다.
약으로 고칠 수 없는 백약이 무효인 영적교만이 나에게 내재되 있는 것을
느낍니다. 떨쳐버리고 싶습니다.
이번봉사에는 교리의 신앙에 관해서는 이야기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예비자들이 교회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교회의 언어들을 중점적으로 나누는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교회의 언어를 잘 이해한다면 그 언어 안에서 신앙을 이해하고 받아드리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언어와 더불어 미사에 대한
미사경문의 해설과 미사예식에 좀 더 관심을 갖고 함께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오직 성령께 의탁할 뿐입니다.
항상 좋은 방향으로 인도해 주시는 성령께서는 이번 봉사에서도
저를 도구로 써 주실 것을 믿으며 더불어 성령께 기도로 청해 봅니다.
또한 진심으로 살면서 감사하고픈 것들은 참 많습니다.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행복함과 고마움이 참 많습니다.
이러한 고마움과 행복함을 나열 한다면 자시과시라고할까 무서워 다음기회로
미루어봅니다.
그중에서 참 감사하고픈 것은 성체분배입니다.
지나간 이야기지만 제가 성체분배자대상자로 추천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제 꼴을 아는 사람이 많습니다. 제 이력을 아는 사람이 많습니다.
세상이야기로 가장 보잘것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성체분배의 봉사자로 일하고 있다는 것은
주님께서 특별히 내려주시는 은총임을 소중하고 받아드립니다.
이제는 이야기할 시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날 신부님께서 '형제님도 이제 성체분배봉사를 하셔야지요'하고 말씀을
하시기에 저는 '제가 뭘 성체분배봉사를 하느냐고'하며 일언지하 딱 거절했
습니다. 그때 신부님 하시는 말씀이 '신부가 이야기 하는데'라고 하십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사제의 입을 통하여 전달하는 메세지를 그렇게 받아 드리면
되겠느냐하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날 밤새 고민했습니다. 세간일로 할일도 많고 바쁘고 육신도 피곤하고 참
핑게거리가 많았습니다.
다음날 제가 굴복했습니다. '신부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절 보내주십시오'
하며 꺽어져 버렸습니다.
이것은 축복이었고 제 삶의 활력이 되었습니다.
봉사 그자체가 기쁨이었고 매사에 용기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삶에 대한 희망을 품고 도전하는 마음을 새롭게해주는 양식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죽어먄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했습니다.
내가 죽어야 열매를 맺나 봅니다.
교회생활뿐만 아니라 내 일상의 생활에서
마음 속으로 붙드는 화두가 하나있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보지아니하고, 제 안에 살아 숨쉬는 그리스도를 보게하소서"
이 글귀를 제 안에 모시고 살아가지만
저도 모르게 이웃형제들에게 죄를 짓습니다.
몸에 벤 명령조의 말투와
빗대어 이야기하는 못된 버릇이 이웃에게 상처를 주게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것 마저도 어떻게보면 하찮은 것들 일 수 있습니다.
제 안에 '오직 그리스도만 보게하소서'라고 말하고 샆습니다.
이제는 침묵을 배워야겠습니다.
이웃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위해서도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로 받아 들이기 위해서도
이제는 침묵의 길로 걸어가야갰습니다.
이 밤에
내가 상처준 이웃과 형제 자매 그리고 가족들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