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8일 금요일
2012. 6. 9. 오전 1:38:41
글자
<어찌하여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하느냐?>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35-37
그때에 35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율법 학자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하느냐?
36 다윗 자신이 성령의 도움으로 말하였다. ‘주님께서 내 주님께 말씀하셨다. ′내 오른쪽에 앉아라,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네 발아래 잡아 놓을 때까지.′’
37 이렇듯 다윗 스스로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 되느냐?”
많은 군중이 예수님의 말씀을 기쁘게 들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묵상>
오늘은 교리봉사자모임이 있어 함께하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부족하지만 함께해 주시고 불러주시는 주님께 감사합니다.
간만에 모인 자리라 마음은 반갑고 기쁩니다.
봉사자들과 대화를 해보면
모두가 열심하고 예비신자들에 대한 배려가 참 많습니다.
배려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모두가 기쁜마음으로 함께 할 수가 있나봅니다.
오늘도 조용히 듣기만 하겠다고 마음을 다지고 참석하였습니다.
대화를 하다보면 인내가 부족한 나인지라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불끈하는 성깔 때문에 스스로 조심을 하고자하는 결심을 합니다.
오늘은 서로다름의 의견을 존중해야한다는 기본을 잊고 한마디하고야 말았습니다.
참 어리석은 인간 '나'입니다.
차기 예비자 반편성 및 시간의 조율에 관한 대화중
신부님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신부님 생각을 대변하듯이, 안건의 조율을 모두 신부님 생각이 이러하니
이거는 되고 저거는 안되고하는 식입니다.
못된 성질이 도지어 기어이 한마디하고 말았습니다.
반편성및 시간에 대한 안건은 여기서 조율하되
신부님 생각이 어떤지는 조율된 안건을 가지고 품의를 올리면
그때 신부님께서 결정하실 일이지 왜 올리기도 전에 신부님이 이렇고 저렇고하며 이야기하느냐고
마음에 들지않는 부분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참 안타까운일입니다.
매사를 신부님 생각이 이러할 것인데 하며 그분의 마음을 알지도 못하면서
그분의 마음을 내가 결정하고 판단한다면 안될 것입니다.
궁굼한 점은
왜 모두가 매사를 신부님 중심으로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목방향을 따라가는 것은 좋지만
각단체나 개인은 교회의 보편적인 정신과 복음적 실천의지를 갖고
주체적인 생각과 자신감으로 교회생활을 하는 것이 참 중요할 것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믿고 서로의 좋은 의견을 수렴하고
수렴된 안건을 갖고 신부님과 상의하고 지도를 받는 모습이
바람직한 교회공동체의 모습일 것입니다.
예비자교리는 봉사자들이 예비신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첫째이며
두번째는 봉사자 스스로의 철저한 자기관리입니다.
스스로 공부하지 않는다면, 교회의 가르침을 올바로 전달 할 수가 없습니다.
성령께서 모든것을 밝혀 주신다 하지만은
믿기 위해서 이해해야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믿어야한다는 성인의 말씀처럼
봉사자는 항상 교회교리서에 대한 공부를 시간나는데로 꾸준히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자기노력과 성찰을 통하여
세월이 흐르면서 보이지 않던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자신의 부족함과 보잘 것 없슴을 깨우침으로써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
느끼고 받아들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서
과일나무 아래에서 과일이 내 입 안에 떨어지기를 기다는 것은
요행을 바라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오늘 "다윗 자신이 성령의 도움으로 말하였다"라는 말씀 안에서 다음과 같이 묵상을 해봅니다..
'평화'라는 단어를 생각해봅니다.
세상에서 이야기하는 '평화'와
교회에서 이야기하는 '평화'는 엄연히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가고 간다.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같지 않다."'고 하십니다.
오순절 날에는 하늘에서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나타나 갈라지면서 각 사람 위에 않자 각사람들은 성령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러면 성령을 가득히 받은 이의 모습은 어떤 이의 모습일까?라는 의문을 생각해 봅니다.
마리아에게
천사가 나타나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마르1,28)하며 수태고지를
하게됩니다. 그 때 마라아는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르 바랍니다."(마르1,38)라고 응답을 합니다.
마리아는 천사가 나타나 처녀인 몸에서 아기를 가질거라는 예언을 들었을 때 그 마음에서 가장 먼저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요?
너무나 기뻐하였을까요? 아마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이 '죽음'이라는 공포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당시 유다인들은 종속혈통의 순수한 보존을 위하여 처녀가 아이를 가지면 동네 한복판에 세워놓고 돌로 쳐 죽이는 형벌을 가했습니다,
형벌보다는 죽음이라는 단죄를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간이라면 그 내면에 충렁거리는 심적갈등은 바다 한 가운데에서 휘몰아치는 폭풍우 속의 거센파도
처럼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으로 가득 찿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그데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하고
굳센 믿음으로 거센파도를 물리치고 조용하게 그 말씀을 받아드리는 모습을 생각해봅니다.
하느님의 '평화'가 마리아와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그 '평화'는 성령께서 마리아에게 내려 오셨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함께하시면 죽음과 같은 거센파도도 잠잠해 짐을 볼 수 있습니다.
환난도 역경도 모두 하느님께 맡기는 놀라운 평화가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평화'입니다.
저는 '평화'라는 교회언어를 잠시나마 이렇게 묵상해보았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