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22일 주일
2012. 4. 22. 오후 9:27:05
글자
<복 음>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4,35-48
그 무렵 예수님의 제자들은 35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36 그들이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에 서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37 그들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하였다. 3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왜 놀라느냐?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 39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 4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그들에게 손과 발을 보여 주셨다.
41 그들은 너무 기쁜 나머지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여기에 먹을 것이 좀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42 그들이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드리자, 43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받아 그들 앞에서 잡수셨다.
44 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말한 것처럼,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 45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
46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47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48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묵상>
'마음을 열다'
살아가며 느끼는 것중 하나가, 마음을 열기가 참 어렵다는 것입니다.
하루에도 여러사람들을 만납니다.
사람을 만나면서 기쁜마음으로 만나기도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만나는 것 자체가 참 껄꺼럽기도합니다.
무슨 원수진 사이도 아닌데
만남 그자체가 참 무거울 때가 있습니다.
내스스로가 마음을 꽁꽁 닫고 있는 게 문제의 원인인 것 같습니다.
경계심 그리고 과거의 상처의 흔적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상대방에 대한 편견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지례 짐작하는 편견
내 마음대로 저울질하는 잣대로
상대방을 도마위의 생선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마음들은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마음을 돌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께서 빵을 떼어 주실 때'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고 하십니다.
성경은 부족하고 어리석은 마음을
지혜로 이끌어 주시며
성체성사를 통하여 사랑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세상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여도
지혜로운자는 그를 알아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하느님의 말씀과 그 속에 감추어진 진리를 찿아
세상을 바라보려고합니다.
오늘 하루의 삶이 부족하고 허접하더라도
'사람들이 저를 보지아니하고, 제 안에 살아 계시는 그리스도를 보게하소서'
라는 기도를 올리고 싶습니다.
오늘은 청년미사때 성체봉사를하였습니다.
제대에 올라서 잠시 상념에 잠겼습니다.
부족하고 가장 나약한 저를 주님이 계시는 제대로 불러주심을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성작을 바라보며
나의 이 작은 모습과 지나간 세월 안에서의 내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습니다.
삶의 막다른 골목이라고 부르는 노점상...
추위와 더위를 다 받아들이며 하루 10시간의 일
길가에 서서 500원하는 핫도그, 아이스크림을 팔며
내 안의 자존심과 고독
그리고 분노를 마음에 담고 5년이라는 세월을 보낼 때의 내모습이 보이며
세례자 요한이
멀리서 오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지금 오시는 분은
물과 불로 세례를 베풀 것이다. 나는 그 분의 신발끈을 풀어줄 자격도 없는 사람
이라며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이들 중에 이보다 더 나은사람이 없다고 하시며 세례자요한을 높이십니다.
제가 이 말을 하는 것은
가장 낮은자의 모습중에 두가지의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나라는 한 인간이 물질적 가난을 극복하기 위하여 세상 안의 바닥에서 놓여져 살았다는 것과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나라를 위하여 꿀과 메뚜기로 연명하며 가장 낮은 겸손한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잠깐의 상념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구렁속에서 허덕이는 저를 한발자국씩 인도하시고, 오늘 가장 가까운 자리로 불러주신 은혜를 생각해보면 진실로 감사함이 넘칩니다.
그러면서도 그 은혜에 합당한 생활을 못하는 것이 저자신도 참 안타깝습니다.
어떻게보면
제 기도생활이 참 부족하다는 것과 더불어 핑개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주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저합니다.
'주님께서 저를 고쳐 놓으실 때 까지' 한 발자국씩 가고싶습니다.
오늘은 중산성당 최찬영 마르코신부님 영명축일행사 날입니다.
영육간에 건강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
또한 만남의 방 형제,자매님에게도 평화가 있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