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18일 주일 사순 제4주일

2012. 3. 18. 오전 1:34:44

글자

< 복 음 >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14-21

그때에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셨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9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20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21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묵상>

요한복음을 읽다(들음)보면 그 문체가 참 감미롭습니다.
아주 부드럽고 무언가 알 수없는 따뜻함이 배어져나와  나의 온 몸을
부드럽고 편안하게 해주는 듯합니다.

그런데 가끔 요한 주해서를 몇장 넘기다보면
머리에 쥐가납니다.
아직 영적 미성숙과 지적 미성숙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200주년 기념성서 주해서의 첫장에 이런 글이 나옵니다.
"말과 글은 뜻이나 메세지를 전달하는 매개체일 뿐
 그 자체로서 진리일 수는 없다."
이글이 무슨 뜻인지 곰곰히 생각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전하여지는 메세지는 사람마다 각각 다를 것입니다.
인식의 범위와 깊이, 그리고 그 사람이 처한 환경등 여러가지 조건에 따라
주어지는 메세지는 다르게 전달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그 중심에는 예수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고 함께하여 주십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믿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한다고 하십니다.
영원한 생명 즉 구원에 이르게한다는 말씀이기도합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예수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그 분의 몸을 받아 모십니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정녕 내가 믿는 자일까? 또는 나는 믿음이 있는 자일까?
나는 종교인인가 아니면 신앙인인가하는 질문도 던집니다.
이러한 질문의 가장 근원적인 원천은
'신은 존재하는가?'하는 자기회의에 대한 질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들으며 생각나는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은 토마사도는
가장 냉정하고 이성적인 사고로 단언을 합니다.
"나는 그분의 옆구리에 내 손가락을 넣어보지 않고서는 믿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어 하시는 말씀이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래서 신앙은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믿음을 받아드리는 자세는
"똑똑하고 잘난자들에게 나타내 보이지 않으시고, 어린아이에게 나타내 보이시니
감사합니다"라는 말씀에서
어린아이는 있는 그대로 수용을 합니다.
오늘도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며
그 말씀을 잘 수용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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