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6일 수요일

2012. 6. 6. 오후 11:29:36

글자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8-27
그때에 18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다. 19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 아내만 두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20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21 그래서 둘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지만 후사를 두지 못한 채 죽었고, 셋째도 그러하였습니다. 22 이렇게 일곱이 모두 후사를 남기지 못하였습니다. 맨 마지막으로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23 그러면 그들이 다시 살아나는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2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25 사람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
26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에 관해서는, 모세의 책에 있는 떨기나무 대목에서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읽어 보지 않았느냐?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너희는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묵상>


하느님은 '임마누엘'이시다.

언제 어디서나 함께하시는 하느님이시다.

그러므로 언제 어디서나 우리는 하느님께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실때 제자들이 머물던 방은 꼭꼭
잠겨져 있었습니다. 그러한 방에 나타나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신 존재임을 드러내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도, 이사악에게도, 야곱에게도 드러내시는 하느님이시며
오늘 이시간 나에게도 드러내시는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천진암 성지를 다녀왔습니다.
좋은 시간 보내었습니다.
광암 이벽선생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한국천주교의 발생을 생성하신 분이십니다.
우리신자들은 최초의 한국인 신부이며 순교자이며 성인신부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에 대해서는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천주교를 갖고와 뿌리를 내리게 한 광암 이벽선생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잘 모르고 있는 실정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개인적으로는 103위 성인보다 더 이 땅에 복음씨를 갖고와 생명을 피운 
이 분의 큰 업적이 잘 알려지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오래전 교회사에 관한 글을 읽을며 처음으로 이벽이라는 이름을 접했습니다.
그 당시에 참 의아했습니다.
이 땅에서 이런 분께서 우리신앙을 가져오셨다는 것에 놀라움을 느끼며, 그 분에
관한 이야기가 교회내에서는 크게 관심을 끌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도 놀라움
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오늘 봉사자모임에서 천진암성지를 방문하고 그 분의 묘앞에서
큰절을 모두 하였습니다.
안내 봉사자 신부님께서 안장된 다섯분의 이력에 대해 설명해 주셨습니다.
모두 감명깊게 이야기를 경청하였습니다.
아무쪼록 오늘 광암 이벽선생님앞에 찿아 뵐 수있게 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그 분께서는 250년전 이 땅에서 복음말씀을 이야기 해 주셨고
지금 이시간에도 우리에게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야기 해 주고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있는 무언의 이야기를 해 주고 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항상 임마누엘의 하느님으로 존재 하시는 것 일 것입니다.


 
한국천주교회 창립선조 약력


 
韓國天主敎會發祥地 天眞菴聖地는
韓國天主敎會의 뿌리요 얼굴입니다.

우리 모두 정성을 다하여 자손만대에
지키고 아끼고 가꿉시다 !

韓國天主敎 發祥地 天眞菴 聖地와
韓民族100年計劃天眞菴大聖堂은
우리나라의 자랑이요,
우리겨레의 精神이고,
우리 國民의 精誠입니다.


한국천주교회 창립선조 약력

이벽 성조(曠菴, 德祖, 李檗, 세자 요한)
본문 이미지
 
· 1754 : 경기도 포천군 내촌면 화현리에서 탄생
· 1779 : 천진암 강학회에서 천학논증.
           성교요지,천주공경가 저술, 그 후 천주밀험기, 험세문득기,
           래세예언기, 령득경신기, 숭례의, 상천도 저술
· 1783 : 이승훈 성조를 북경 천주교회로 파견
· 1784 : 이승훈 성조에게서 영세
· 1785 : 명례방 집회로 을사박해 중, 가내 연금상태에서
           아사벌(餓死罰)로 단식순교(斷食殉敎)

 이벽성조약기
   이벽성조전기
   이벽성조의 [성교요지]


이승훈 성조(蔓川,子述, 李承薰, 베드로)
· 1756 : 서울 중림동 만초천 언덕에서 탄생
· 1779 : 천진암 강학회 참석
· 1783 : 북경 천주교회로 파견
· 1784 : 영세받고 귀국
· 1785 : 명례방 집회참석, "만천유고"남김
· 1787 : 북경주교에게 보고서 저술, 발송
· 1801 : 서울 서소문 형장에서 참수순교(斬首殉敎)

 이승훈성현약전
   이승훈성현의 서간


권일신 성조(沙右居士, 稷菴, 權日身, 프란치스꼬 사베리오)
· 1742 : 경기도 양평군 양근면 양근리 갈산에서 탄생
· 1779 : 천진암 강학회 참석
· 1784 : 이벽 성조에게서 영세
· 1785 : 명례방 집회에 참석
· 1791 : 신해박해 때 서울 감옥에서 혹심한 장타(杖打)로 귀양도중 순교(杖打殉敎)

 권일신성조 약전
   권일신 성조의 수난기


권철신 성조(鹿菴, 權哲身, 암브로시오)
· 1736 : 경기도 양평군 양근면 양근리 갈산에서 탄생
· 1779 : 천진암 강학회 참석, "유한당 언행실록" 서문 저술
· 1784 : 이벽 성조에게서 영세
· 1801 : 신유박해 때, 서울 감옥에서 옥중 고문으로 장타순교(杖打殉敎)

 권철신성조 약전
   권철신 성조의 「유한당 권씨 언행실록(有閑堂 權氏 言行實錄)」序文


정약종 성조(選菴, 丁若鐘, 아오스딩)
· 1760 : 경기도 남양주군 와부면 능내리 마재에서 탄생
· 1779 : 천진암 강학회 참석
· 1785 : 명례방 집회 참석
· 1795 : 명도회 회장으로 활약
· 1797 : 이벽 성조의 "성교요지"를 본따서 그 해설판으로 "주교요지"를 저술
· 1801 : 서울 서소문 형장에서 참수순교(斬首殉敎)

 정약종성조 약전
   정약종 성조의 저서 [주교요지]






[한국교회 창립 선조를 찾아서] 1. 이벽(7)

 

“경주 이씨 모두가 천주학 배워야”

 

 
▲ 이벽 성조는 아버지의 자살시도와 경주 이씨 문중의 핍박 속에서도 천주학을 따라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사진은 한국천주교 발상지 천진암성지를 알리는 표지판.
 
 
▨ 한국 천주교회가 최초로 겪는 을사박해와 이벽 성조의 장렬한 최후 (2)

이벽 성조의 아버지 이부만 장군은 아들 이벽 성조를 불러 놓고 달래기도 하고, 야단치기도 하고, 위협도 하는 등 갖가지 수단을 다 써가면서 천학운동을 하지 말 것과, 집안 어른들을 찾아다니면서 잘못을 빌도록 하였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문중에서는 평창 이씨 집안에서 이승훈 선생의 사과와 라주 정씨 집안에서의 정약용 등의 사과 소식을 들은지라, 사과조차 하지 않는 이벽 성조의 태도에 대하여 한층 더 격분하였다. 그래서 서울 시내 양반들의 통문이 사방으로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규탄의 모임과 소리가 요란한데다가, 이 압력에 더 한층 불붙어서, 경주 이씨 문중회의는 더더욱 격렬하게 끓어오르고 있었다.

따라서, 성질이 급한 이부만공은 펄펄 뛰며, 아들 이벽 성조를 집안에 앉혀 놓고, 발을 굴렀다. 온갖 수단 방법으로도 도무지 꿈쩍도 하지 않는 아들의 굳은 마음과 의지를 보고, 아버지는 이제 아들의 마음을 돌린다는 것이 불가능함을 느끼고, 모든 것을 포기 하고 아들도, 세상도, 명성도, 가정도 다 버리는 마음으로, 자살의 길을 택하기에 이르렀고, 대들보에 노끈을 걸어, 목을 매달기에 이르렀다. 이부만공은, 둘째 아들이 천학을 함으로써 인하여, 족보가 삭제되고, 상놈이 되는 동시에, 가족들이 벼슬에서 모두 떨어져서 패가망신을 하고 살아가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천학을 하는 이벽 성조가 보는 앞에서 목을 매달아 죽기를 결심하고, 주저없이 실천에 옮기었다.

이부만공이 목을 매달게 되자 온 집안이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인과, 자녀들과 친척들과 벗들이 모두 이벽 성조에게 달려들어 아버지의 목매달은 모습을 보이며 야단을 쳤다. 특히 그 어머니는, 아들 이벽 성조에게 "천학이 아무리 좋은 종교라지만, 아버지를 목매달아 죽게 하는 그런 종교를 누가 믿으란 말이냐? 아버지가 목매달아 죽는데도, 그래도 천학운동을 하러 다니겠다는 말이냐?"하며 애원과 탄식과 절규로 부르짖었다. 이벽 성조께서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한국사회는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사회윤리의 제일로 삼는 때였다. 사실 아버지를 목매달아 죽게 하는 종교로 알려지면, 아무도 이러한 종교를 믿을 사람이 없었다. 형제들과 친지들과 어머니는 애걸하며 절규하였다.

"지금 아버지가 저렇게 목매달아 죽는데도, 그래도 그 천학인지 무엇인가를 또 하러 다니겠느냐?"

이벽 성조께서는, 우선 아버지의 죽음을 막기 위하여, "그럼 안나가겠습니다"하고 말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두 가지 뜻을 가진 말이었다고 달레는 기록하였다. 이벽 성조께서는 그때까지 명례방 김범우 선생네 집으로 마재 정약종네 집으로, 양근 권철신네 집으로, 이리저리 천학강론을 하러 항상 나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우선 서울시내가 소란하고 양반문중마다 종친회가 열려 시끄럽고, 가정이 불목으로 극에 달하여, 아버지가 목을 매달고 있으니, 이 상태에서 천학을 강의하러 다닐 수도 없고, 또 다녀도, 김범우 선생은 감옥에서 혹심한 매를 맞고 있고, 양반집 문중마다 천학배척의 기운이 감돌며, 반발과 규탄이 요란하므로, 실제로 당분간 다니며 전처럼 활동하는 것을 줄이고, 조용히 즉 집안과 문중이 가라앉을 때까지, 좀 고요히 있겠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즉시 목을 매달고 있는 이부만공, 즉 남편에게 아들 이벽 성조가 이제 천학운동을 하러 나가지 않겠다고 하였으니, 죽지 말라고 하여 끈을 풀자 집안이 잠시 조용하게 되었다. 그래서, 형제들과 친척들이 모두 천학을 하러 안나가기로 한 것은 정말 잘한 일로써, 아버지도 구하고 가정도 구하고, 문중의 체면도 살려주는 지극히 마땅한 처신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였다. 그러므로 이부만공은 사람을 문중회의로 보내어 아들이 천학을 하러 나가지 않기로 하였으니 모두들 안심하고 족보는 삭제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나 문중회의에서는 특히 강경파 편에서는 이를 신용하지 않았다. 평소부터 천학도사 이벽 성조가 어떠한 인물이며, 그 기백이 어떠한 지를 잘 알고 있던 터이므로, 강경파 문중에서는 자신들을 우롱하지 말라고 일축하면서 절대로 신용할 수 없는 일이니 본인 자신이 직접 문중회의에 나와서 자명소를 하라고 하였다. 자명소란 자신의 입장을 자신이 직접 밝히는 것이다.

이부만공은 아들 이벽 성조를 불러서 천학운동을 하러나가지 않기로 하였으니, 문중회의에 출두하여 사과하는 동시에, 자명소를 하고 오라고 말하였다. 즉 천주학을 그만둔다는 것을 직접 본인의 입으로 말함으로써 족보에서 명단이 삭제되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벽 성조께서는 아버지에게 말씀드리기를, "문중회의에는 출두하겠으나, 거기 가서 천주학을 배척하거나 그만두겠다는 말을 안할 것이고, 오히려 우리 경주 이씨 문중 모두가 천주학을 해야 한다는 일장의 강설을 하고 오겠습니다"하고 말하였다.

사실 이가환, 이기양, 권철신 같은 대학자들이 설복되지 않을 수 없는 깊고 넓은 학식과, 밝고 확실한 논법으로 달변가인 이벽 성조에게 대적할 만한 선비는 경주 이씨 문중에 없었고 경주 이씨 문중에 뿐 아니라, 당시 한국 학계에도 없었다. 그렇지만, 경주 이씨 문중이 들고 일어난 그 참된 원인은 당시 사회 풍습상 경주 이씨들의 체면 손상이 말이 아니라는 점과 또 문중에서 이벽 성조의 가정이 과거에 급제하고 이벽 성조의 인품이 출중하여 많은 선비들의 흠모의 대상이 되어 있어서 사기와 질투심이 자극제가 되었다는 점이다.

사실상 문중에서는 천학도리에 대하여 깊이 알려하지도 않았고 다만 예로부터 전해오는 전통적 관습에 어긋난다는 점 하나만을 내세우며 집단적으로 소란을 피우며 박해를 가하였다. 이러한 상태에서 아버지 이부만공은 아들이 천학운동을 그만두기로 했다고 문중에 이미 성급하게 통고한 후였기 때문에 이제 아들 이벽 성조께서 문중회의에 자명소하러 나타나서 천주학은 만인이 다 해야 하며 경주 이씨 문중부터 모두가 신봉해야 한다고 강설을 하게 된다면, 아버지 이부만공은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이고 문중회의를 우롱한 것이 되며 또 이벽 성조의 변론을 비록 머리로는 알아듣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될지 모르지만 마음으로는 더욱 무섭게 반발할 것이 분명하였고, 따라서 문중에서 족보를 빼어버리며 제명 처분할 것이 확실하였다.

※ 자료출처 : 천진암성지 홈페이지(chonjina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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