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상처, 아파도 감추지 마라

2005. 5. 13. 오전 8:4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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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상처, 아파도 감추지 마라
가족의 비밀/ 세르주 티스롱 지음/ 정재곤 옮김/ 궁리
최홍렬기자 hrchoi@chosun.com
입력 : 2005.05.06 18:04 44' / 수정 : 2005.05.09 17:17 05'

앙리 퀴에코는 언청이다. 정작 본인은 이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고 자랐는데, 5세 되던 어느날 주치의가 집안의 어느 누구도 발설하지 않았던 단어를 말해 ‘비밀의 대장정’이 시작된다. 그가 퀴에코를 “우리 토끼”(프랑스에선 언청이를 ‘산토끼 주둥이’라고 일컫는다)라고 부른 것이다.

문제는 주변 어른들의 반응이었다. 호기심에 사로잡힌 퀴에코가 “산토끼가 뭐냐”고 묻자 아무도 제대로 대답해주지 않고 허둥지둥 외면해 버렸다.

이후 어떤 답변을 듣게 될지 몰라 겁이 났던 소년은 자신이 식구들의 명예에 먹칠이라도 하거나 벌을 받아 마땅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게 되었다.

그는 어른이 되어서야 간단한 수술로 언청이를 고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는 과도하게 쉬쉬한 비밀이 아이의 정신세계에 어떤 해악을 끼치는 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문제는 비밀의 내용이 아니라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아이에게는 아무런 얘기가 없었다는 데 있었다.

비밀은 야누스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온전히 자기만의 세계에 속한 기쁨이나 슬픔은 개인의 정체성을 지탱해 주는 버팀목이 된다. 반면 비밀은 삶을 구속하며 옥죌 때 세상에서 가장 고약한 것이 되어버린다.


▲ 에드워드 호퍼의 '뉴욕의 어떤 방'(1932년). 대화가 단절된 현대 가족의 소외와 황량함이 담겨 있다. 가족 내에 비밀이 있을 경우 비밀을 쥐고 있는 당사자가 이 사실을 털어놓는 것이 침묵을 고수하는 것보다 낫다.
비밀은 어디서부터 치명적인 해악을 끼치게 되는 걸까. 저자는 가족으로부터 그 실마리를 풀어낸다. 가족은 개인의 인성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어떤 식으로든 가족의 비밀에 연관되어 있으며 이로 인해 알게모르게 고통받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정신분석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저자가 가족의 비밀이 개인의 정신세계에 미치는 영향을 실제 임상 사례를 통해 분석했다.

가족의 비밀은 대개 출생이나 사회적 차별, 죽음 등과 관련된 것이 많다. 사생아나 혼외관계, 자녀 본인은 모르는 두 번째 결혼으로 인한 출생, 양자, 이혼, 육체적·정신적 질환 같은 것이다.

부모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자녀에게 감추면서 “아이가 아직 너무 어려서”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주면 곤란하니까” 등으로 언제나 자녀를 위해서라고 이유를 댄다. 그러나 비밀을 숨기는 것이 비밀을 밝혔을 때보다도 오히려 자녀에게 더욱 해로운 결과를 가져오게 마련이다.

훗날 비밀이 밝혀진 뒤에도 그 비밀 때문에 이미 둘로 쪼개진 아이의 정신세계는 여전히 상흔이 남기 때문이다.

저자는 비밀이 초래하는 해악과 정신적 균열을 피하기 위해 숨어있는 상처와 정면으로 마주하라고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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