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미꽃은 봄을 세는 술래란다.

2005. 4. 4. 오후 6:18:24

글자

 

 

이 청준 동화/최 정훈 그림, 할미꽃은 봄을 세는 술래란다, 열림원

 

교황님께서 본향으로  떠나셨습니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오리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먼저 떠나시는 그분과 남는 우리 사이엔

그리움이란 큰 강이 흐릅니다.

 

얼마 전, 제 할머니도 길떠나셨어요.

100세 생신을 지난 얼마 후예요.

할머니가 제 머리 위 하늘에서

빙그레 웃고 계시는 것만 같아요.

"할머니! 잘 있지?'

 

마음 잔잔하다가도

어느 한 순간

울컥 쿨컥

그리움이 솟아 오릅니다.

 

그래서 빼든 책,

 

`할미꽃은 봄을 세는 술래란다`

 

이 청준 동화예요.

 

`동화`라고 씌여 있고

은지라는 아이에게 들려주는 할머니와 아빠, 엄마의 얘기지만

차라리 연로하신 부모님을 둔 우리 중년의 가슴을 울려 주는 얘기예요.

 

은지가 묻습니다.

"할머니는 엄마나 아빠보다 나이가 많으신데도 키는 어째서 더 작으세요?

그리고 지금도 나이를 잡수실 수록 키가 더 크지 않고 거꾸로 작아지세요?"

"그건 우리 은지가 이 할미의 나이를 다 빼앗아 먹으니까 그렇지!"

아빠나 엄마도 할머니께서 나눠 주시는 나이를 먹으면서 할머니보다 더 키가 크게 되었다는군요.

 

할머니는 말씀하세요.

"우리 은지가 건강하게 잘 자라서 훌륭한 어른이 된다면

이 할머니의 나이를 덜어주는 것쯤 아무 것도 아까울 것이 없지.

은지의 키가 자라기 위해 할미의 키가 작아지는 것도 더할 수 업는 기쁨이구."

"그래. 어서어서 이 할미의 나이를 가져가고 키를 가져 가거라.

이제 이 할미의 시절은 지나가고 우리 은지의 세상이 올 거니께."

 

은지는 또 묻습니다.

"할머닌 얼마나 더 작아지실까요?

할머니가 나이를 모두 나눠 주시고 나면

할머니의 나이가 하나도 없어지게 되면,

그 땐 할머닌 어떻게 되시는 거예요?"

 

"그거야 나이를 다 나눠 주시고 나면

할머닌 나이가 한 살도 없는 갓난쟁이 작은 어린애가 되시는 거지."

 

"그러시다

끝내 그 모습이 더 작아질 수 없을 만큼 조그마해지시면

할머니는 어느 날 이 세상에서 모습을 거두시고 우리 곁을 떠나시게 된단다."

 

"그렇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라.

할머니께선 우리 곁을 떠나시더라도 할머니의 모든 것이 사라져 없어지는 것은 아니란다.

사라져 없어지는 것은 자꾸만 작아져 간 할머니의 모습뿐,

그 속에 간직되어 있는 할머니의 영혼은 옛 육신의 집을 빠져나가 ......"

 

"하느님만이 아시는 일이니까..."

 

우리의 키와 기억과 지혜

그 모든 것들은

우리보다 먼저 살다 가신 분들이 다 나눠주고 가신 거라는 군요.

 

교황님도 우리에게 다 나눠 주고 가셨지요.

아낌없이!

어린아이의 그 맑고 빛나는 미소를 두고

가셨습니다.

선하디 선한 모습을 두고 떠나셨습니다.

 

지은 이는 이렇게 말하네요.

제비 하나, 종달새 둘, 뻐꾸기 셋...... 벌나비, 혹은 민들레 하나, 살구꽃 둘, 진달래 셋...... 그리하여 온 산과 온 들녘에 푸른 생명의 봄 잔치가 어우러지면 할미꽃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어 사라진다. 우리 할머니들의 생애같다.

 

은지 엄마는 이런 얘길 들려 주네요.

"슬픈 일이지만, 한편으론 기쁘고 다행스런 일일 수도 있잖겠니?

그것은 할머니의 영혼이 낡은 옛날의 모습을 벗고 나가

다른 새 갓난 아기로 태어나실  준비의 일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교황님도

제 할머니도

은지 할머니도

모두 다

숨을 세는 술래, 할미꽃 아닐까요?!

댓글 3

  • 2005년 4월 4일 오후 10:15

    그분들께선 푸른 생명의 봄 잔치를 마련하고 떠나신 거군요.

  • 2005년 4월 7일 오후 11:15

    이 청준님은 제 고향 선배님이십니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 작가의 산실인 생가가 있습니다.

  • 2005년 4월 8일 오전 10:07

    고운 인사 감사드립니다. 교황님 가시는 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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