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현재 남한의 좌파단체(연방제 적화통일 지지)
1) 전교조(전국 교직원 노동조합) 약 77,000명
2) 민주노총(전국 민주노동조합 총연맹) 47만 명
3) 민노당 - 국민 70만 명 지지
4) 한총련(한국 대학 총 학생연합)
5) 한청(한국 청년단체 협의회)
6) 전국 통일위원회
7) 전국연합(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
8) 평통사(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9) 실천연대(남북공동선언 실천연대)
10) 통일연대(6.15남북공동선언 실현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통일연대)
11) 범민련 남측본부(조국 통일 범민족연합), 범청학년 남측 본부.(황장엽은 남한에 간첩이 5만 명 정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12) 범청련 및 천주교 정의사제단, 기독교좌파 13) 민중연대 14) 전국농민회 총연맹
15) 한국 민권문제 연구소 16) 평화연구소 17) 21세기 코리아 연구소
18) 송두율 사건
송두율은 1967년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한 후 서독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 1973년 극비에 북한에 입국, 노동당원이 되었다. 독일에서 한국 민주화운동을 외치면서 한국 지식인들을 상대로 공작 시작.
1988년 좌파 출판사인 한길사 「사회와 사상」잡지 12월 호에 “북한 사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기고하였다. 이 내용은 “내재적 접근방법” 즉 북한을 북한의 입장에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이 남한의 지식인과 전대협 주사파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어 반미․ 친북 좌파를 양성하였다. 「사회와 사상」에 기고한 자들은 김대중, 이해찬, 이종석, 김락중, 강만길(모대학 총장) 등이다.
1991년 5월 송두율은 노동당 정치국 후보가 되었고, 김일성 사망 시 장례식에도 참석하였는데 그 때 그는 김철수라는 가명으로 참석하였다. 전 통일부장관 이종석 씨는 송두율 씨가 제창한 내재적 접근법을 보강, 한국에 이 사상을 확산시킨 인물이며, 그는 2004년 6월 19일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2004년 무궁화 회에서 육․ 해․ 공군 장성 70여명이 참석했을 때 “이제부터 장병들을 교육할 때는 북한에 대한 적개심을 토대로 국방에 임하기보다 조국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 시민정신을 기초로 교육하는 것이 훨씬 강한 군대를 만들지 않을까”라고 하여 북한을 주적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이종석은 또한 미국에 “한국 정부의 동의가 없는 한 미국은 한반도에서 군사작전을 수행할 수 없다”고 하였다. 평강의 장사전포가 대한민국을 공격하기 위하여 발사하려면 35분이 소요된다. 미군이 5분 내에 이를 폭파해야 대한민국은 산다. 위와 같은 발언은 미군의 방사전포방어를 제지하는 내용이다.
2003년 9월 송두율은 한국행을 감행하였다. 이때 국정원 담당 과장은 상부의 명령을 거부하고 1973년 송두율 씨가 노동당에 입당했다는 자백을 받아 그를 기소하였다. 송 씨는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 받았으나 2심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고 석방되어 독일로 갔다. 그 후 대법원에서는 무죄를 선고하였다. 송 씨의 입국 전에 kbs는 송 씨를 민주화 운동가로 방영하였고, 보안법은 비민주적인 법이라고 비판하였다. mbc도 송 씨의 내용을 방영하였다. 송 씨의 영향은 지금도 크다. 이것으로 보아 좌파가 언론을 장악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2007년 방송사나 언론사에서 6.25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은 것이 증거이다.
※ 국민의 43%가 진보성향을 지지하고 있고, 우리끼리 통일을 국민 80%가 지지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100여명, 열린우리당 60여명이 전대협 출신 주사파이고, 한나라당에도 민중당 출신과 10명 정도 있으며, 각 기관과 언론을 장악하고 있어 6.25전 때 좌파 남로당보다 현재가 많다.
2. 친북 좌파의 통일방안
1) 고려연방제 - 자주, 평화, 민족연합(실제 주체사상에 의한 적화통일)
※ 북한은 남한을 북한의 일부로 규정하여 남반부라고 하지 국가로 인정하지 않아 휴전 문제나 핵 문제도 미국과 만 의논하고 있다. 그리고 2008.3.10 월드컵 예선전인 남․ 북한 축구시합 을 북한에서 열기로 하였는데 북한은 태극기와 애국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여 상하이에서 하였다. 그러기 때문에 북한의 자주 평화는 위장선전이지 절대 평화협상이나 평화통일은 안 된다.
2) 국가 연합통일방안(대한민국 통일방안)을 분단고착화 통일방안이라고 규탄.
3. 친북 좌파 실천방안
1) 2012년 낮은 단계 연방제 진입
2) 2013년 높은 단계 연방제 (적화통일 의해)
4. 친북 좌파의 공작 내용
1) 6.15 공동선언 2항 -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의 절충에 의한 통일을 한다.
2) 전한반도의 주체사상화 즉 김일성과 김정일 찬양의 공산주의화 작업.
3) 국가보안법 철폐, 주한미군철수, 평화협정체결, 연방제 통일방안 합의 확산.
4) 군사훈련 중지, 국정원, 기무사, 경찰보안수사과 해체, 친미 우익 수구세력 척결.(특히 군 전력을 약화시키고 좌경화 한다.)
5) 자주교류, 자주통일 운동사업 확대.(금강산 관광과 개성관광을 확대하여 북한에 대한 적개심을 없게 한다.)
6) 전교조를 통해 학생들을 좌파 사상교육.(학생들을 좌경화 한다.)
7) 교과서의 현대사에서 국군과 미군을 규탄하게 한다.(현재 교과서는 좌경화 되었다.)
8) 방송국과 언론 장악.(애국심을 없게 하고, 북한에 대한 적개심을 품지 않게 국민을 선동한다)
9) kbs의 남북의 창을 약화시키고 통일전망대를 신설하여 북한을 집중 소개한다. 김구 화폐 도입하여 국민들로 하여금 분단국가를 반대하게 한다.
10) 영화․소설, 각종 단체 장악, 주체사상을 선전한다.
11) 현대사를 통해 젊은이들에게 반미 감정을 선동, 한반도에서 미군을 철수시키고 적화통일을 한다.
12) 선거를 통해 국회와 남한 정부 장악. 연방제 적화통일을 한다.
13) 김영삼 정부 때 비서와 통일부장관 한완상 등 좌파를 등용 이들에 의해 김영삼 정부 때부터 좌파들이 침투하여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햇빛정책으로 이상을 잘 실천시키고 있다. 1950년 이승만 정부 때도 내무부장관 김효석이 남로당 좌파이었으며, 국방부장관 겸 국무총리 신성모와 육군참모총장 채병덕 소장이 좌파 남로당으로부터 공작을 당하여 6월 25일 인민군이 남침했을 때 4일 만에 국군 8개 사단 중 6개 사단 4만4천명이 죽거나 실종되었고, 국군이 재기불능이 되었으며, 서울이 점령되었다.
5. 북한의 군사력
북한이 38선에 배치한 170밀리 자주포와 240밀리 방사포가 1,100문 있는데 방사포에는 독가스가 장착되어 있고, 사정거리는 160킬로로 평강에서 발사하면 송탄에 떨어진다. 미군은 이를 막을 수 있으나 국군은 이 무기를 아직 막을 수 없다. 북한은 독가스가 5,000톤이 있다. 북한의 170밀리 자주포가 서울시의 5개 도시가스를 공격하고, 방사포로 독가스를 장착하여 남한을 공격하고, 800기의 미사일이 남한의 22개 원자력 발전소와 중요 시설을 공격하면 대한민국 국민 4,800만은 거의 전멸할 것이다. 특히 북한은 핵을 보유하고 있다.
정부는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 좌파들은 이런 위기의식을 대한민국 국민들이 갖지 않도록 주력하고 있다. 그 방안으로 금강산과 개성을 구경하게 하고, 북한과 교류하게 하고, 평화 협상을 하자고 하면서 민족 공존론을 떠들면서 서로 돕자고 선동하고 있다. 좌파정권 10년 동안 10조 원을 북한에 퍼주어 미사일과 핵을 개발하여 남한을 위협하고 있고, 금강산과 개성 관광객들이 많은 돈을 북한에 지불하여 군사력이 강화되고 있다. 그리고 10년 동안 좌파 정부가 심어놓은 1,500여명의 고급 공무원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 현재 북한은 이명박 대통령을 역도라고 비판하면서 위협하고 있다.
6. 친북 좌파들이 학생들과 국민을 허위 선동하는 현대사 내용
1) 미군정이 이승만을 앞세워 친일파를 청산하지 않아 남한은 정통성이 없다고 하면서 미국과 대한민국을 규탄하는 선동에 대하여.
① 1948년 9월 22일 국회에서는 친일파를 청산하기 위하여 반민법을 통과시켜 약 7,000여명을 파악 검거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1948년 4월 3일 제주도에서 좌익폭동이 발생하였고, 48년 9월 15일 좌익 반란이 더욱 심하여 48년 11월 17일 계엄령을 선포할 정도로 좌익 폭도들과 진압군과는 치열한 전투를 하고 있었다.
② 1948년 10월 19일 여수 14연대에 제주도 좌익 반란을 진압하라고 명령하자 좌익 지창수 상사 외 40여명이 명령을 거역하고 반란을 일으켜 장교 20여명과 반란에 저항한 하사관과 사병 43명을 죽이고 14연대 전체가 반란군이 되었다. 이들은 여수․․순천․ 벌교․광양을 점령하고 구례에서 진압군 12연대를 대패시켜 대한민국은 위기에 처하였다.
③ 이때 이승만 대통령이 친일파 숙청은 다음에 해도 되나 반란을 진압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망한다고 설득하자 49년 2월 24일 국회에서 반민법이 폐기되었다. 그 후 북한에서 인민유격대를 10차에 걸쳐 38선을 넘어 남파시켰고, 1950년 6월 25일 인민군이 38선을 넘어 6.25동란을 일으켜 3년 동안 전쟁으로 인하여 친일파를 숙청하지 못하고 현재에 이른 것이다. 미군정과 이승만 때문에 친일파를 숙청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좌익 반란과 인민군의 남침 때문에 숙청하지 못한 것을 좌익들은 미군정과 이승만에게 뒤집어씌워 규탄하면서 반미 친북 좌파를 양성하고 있다.
2) 제주4.3폭동 때 경찰과 국군이 미군정의 지도에 따라 제주도민 8만여 명의 양민을 학살 하였다고 하면서 미군정과 국군을 규탄하는 선동에 대하여.
①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은 대한민국 건국 5.10선거를 반대하기 위하여 김달삼 외 500여명이 무장을 하고 제주도내 12개 경찰지서를 공격하여 고일수 순경의 목을 잘라 죽이고, 김장하 부부는 대창으로 찔러 죽이고, 일반인 문영백의 딸 10세와 14세를 대창으로 찔러 죽이는 등 인간으로서는 차마 할 수 없는 만행을 저지르는 폭동을 일으켰다.
② 1948년 7월 말경 제주도 폭동은 거의 진압된 듯하였는데 이덕구가 제2 반란군 사령관이 되면서 지서를 공격하고 11월 3일에는 국군 9연대 6중대를 공격하여 하루 만에 중대장 이하 21명이 죽자 진압군과 반란군 사이에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반란군과 반란군 협조자와 양민 등 약 13,564명이 죽었다. 제주 폭도들이 국군을 공격하지 않았다면 국군은 제주 폭도들을 죽일 이유가 없다. 그런데 좌파들은 국군이 아무 잘못이 없는 양민 3~8만 명을 학살하였다고 선동하고 있다. 좌파들은 허위주장을 선동하면서 ‘4.3정신 이어받자’ 하며 반미 친북 좌파를 양성하고 있다.
3)여수 14연대 반란은 이승만 분단 정부에 항거하는 여․순 항쟁이 발생하였다고 하면서 이승만과 대한민국을 규탄 선동에 대하여.
① 1948년 10월 19일 14연대 안의 남로당 좌익 지창수 상사 외 40여명이 제주도 반란을 진압하라는 명령을 거역하고 14연대 김일영 대대장 외 장교 20여명, 장병 43명을 순식간에 죽이고 반란을 일으켜 여수․순천․벌교․광양을 점령, 구례에서 진압군 12연대와 1차 전투에서 진압군이 대패하였으나 2차 전투에서 진압군이 대승하여 14연대 반란군은 지리산 문수리로 숨어 들어가 49년 5월 반란군 대장 김지회 중위 이하 반란군이 전멸되면서 14연대 반란군은 진압되었다. 14연대 반란은 제주도 반란 진압을 거부하는 좌익 군인들에 의해서 일어난 반란이다. 그런데 좌익들은 14연대 반란을 분단정부에 항의하는 여․순 항쟁이라고 말도 안 되는 허위주장을 하면서 대한민국은 태어나서는 안 될 정부라고 규탄 선동하고 있다.
② 소설 태백산맥 1권 67쪽에서 14연대 반란은 미군정의 탄압 때문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말도 안 되는 허위주장이며, 2권 42쪽에서는 ‘사회주의 건설 그것만이 최선의 길이요 유일한 길 일 뿐’이라고 선동하면서 4권 46쪽에서는 ‘대한민국을 매국노의 단독정부 한민족을 말살하는 한국군이 되지 말라’라고 선동하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 소설이 엄청나게 팔려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 친북 반미 좌익사상을 심어주고 있고, 지금도 이 책은 계속 팔리고 있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이상 제주4.3 폭동과 14연대 반란은 김일성으로 하여금 남침하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하게 하여 남침의 동기가 된 사건이다.
4) 6.25 한국전쟁은 이승만을 앞세운 미국의 대리전쟁이며, 미군이 개입하여 전쟁이 확대 되었고, 한반도가 미군 때문에 초토화 되었으며, 민족해방전쟁이 실패하였고, 남한은 미국의 식민지로 미국 때문에 38선으로 분단되었다고 선동, 젊은이들로 하여금 미군을 적으로 인식하게 선동하여 미군을 한반도에서 추방시켜 우리끼리 하자고 선동하는 점에 대하여.
① 1950년 6월 25일 새벽4시 인민군 11만 대병은 240대의 전차를 앞세워 38선 전역에서 일제히 남침하였다. 인민군 1사단은 9시 30분 개성을 점령하고, 오후3시 임진강까지 점령하였고, 인민군 3사단은 11시 포천을 점령, 오후 6시 송우리까지 점령하였다. 이것으로 국군이 북침하지 않고 인민군이 남침한 증거이며 미국의 대리전쟁이 아닌 것이 입증되었다. 50년 6월 26일 오후 1시 인민군 3사단은 의정부를 점령하였고, 27일에는 방학동․ 수유리를, 28일 11시30분 서울을 점령하여 국군 8개 사단 중 6개 사단 44,000여명을 죽이거나 포로로 잡아 국군은 재기불능 상태였다.
인민군이 서울에서 3일을 쉬지 않고 즉시 진격하였다면 남한에는 강릉 8사단과 춘천 6사단 등 2개 사단 뿐이므로 인민군의 11만 대병과 240대의 전차를 막을 수 없어 6월 28일 오후 한강을 건너고, 29일 수원, 30일 조치원, 7월 1일 대전, 7월 2일 김천, 7월 3일 대구, 7월 4일 밀양, 7월 5일 김해, 7월 10일까지는 부산을 점령하여 미군의 한반도 상륙을 막아 김일성과 박헌영의 뜻대로 남한을 완전히 점령할 수 있었다.
그런데 서울을 점령한 인민군이 6월 28일, 29일, 30일 등 3일 동안 천금같이 귀한 시간에 서울에서 먹고 자고 놀고 있으면서 남한에서 제주도 4.3폭동과 14연대 반란 같은 폭동을 기다리며 공격하지 않아 참패해놓고 미군 때문에 민족해방전쟁이 실패하였다고 인민군이 참패한 것을 국군과 미군에게 뒤집어씌우며 반미 친북 좌파가 되도록 선동하여 우리의 적은 미국이다, 미군을 한반도에서 추방해야 된다고 60여 년 동안 국민을 선동하고 있다. 좌파들을 그냥 둔다면 대한민국은 머지않아 자동 연방제 적화가 되고 말 것이다.(*이상의 사건을 자세히 알고 싶으면 이선교 저 ‘6.25 한국전쟁 막을 수 있었다’는 상․ 하권을 참고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연락처 011-320-2019)
7. 현재 우리가 해야 할 일
1) 2000년 1월 12일 16대 국회에서 제주4.3사건 특별법이 통과되어 제주4.3폭동을 민중항쟁이라고 하면서 제주인민유격대의 훈련 장소였던 봉개동 12만평에 993억 원을 들여 평화공원을 세워 2008년 4월 3일 준공하여 여행자들의 반미․친북 학습장으로 만드는데, 이를 즉시 중지시키고 18대 국회에서 제주4.3특별법을 폐기시켜야 하며 사립학교법도 폐기시켜야 한다.
2) 전교조 특별법을 18대 국회에서 폐기시키고 전교조를 학교에서 추방시켜야 한다.
3) 보도연맹 사건의 조사를 중단시키고 특별법을 폐기시켜야 한다.
4) 08년 4월 9일 18대 총선에서 국민들이 우익에 힘을 모아주었으니 18대 국회에서는 이상의 4대 악법을 즉시 폐기시켜 좌파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 그리고 14개 과거사 위원회를 즉시 폐기시키고 그들이 폭도를 의인으로 간첩을 민주인사로 조사한 것을 폐지시켜야 한다.
5) 소련 공산당 붕괴와 북한의 실정을 젊은이들에게 교육시켜 사상을 바꾸게 한다.
6) 좌파 시각에서 쓴 국정교과서를 폐기하고 젊은이들과 국민들에게 현대사를 철저히 교육시켜 의식을 변화시키고 좌파들과 선거와 사상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대한민국은 현재 사상내전 중에 있으며, 특히 선거내전 중에 있어 계속 우파에서 대통령이 당선되고 국회의원 250석 이상 우익에서 당선되어 국회를 장악해야 한다. 18대 총선에서 문제의 좌파 지도자들 몇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낙선시킨 것은 아주 잘한 것이다. 육군본부 정훈국에서는 60만 장병을, 교육부에서는 전국 종․고․대 학생들에게, 우익은 일반인들에게 현대사 교육을 철저히 시켜 젊은이들을 좌익에서 우익으로 돌려놓아야 연방제 적화를 막을 수 있다.
8. 제주4.3사건 허위 진상조사보고서
2000년 1월 12일 제주4.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여 정부에서는 고건 국무총리가 위원장이 되고, 법무․국방․행정․보건․법제처장 외 수십 명의 조사단이 조직되어 진상조사보고서 작성기획단에 의해 2003년 10월 15일 제주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가 작성되어 대통령에게 보고되었다.
그런데 이 진상조사보고서가 허위로 작성되었다. 이 진상조사보고서의 허위 핵심 내용은 ‘제주4.3 좌익무장폭동’을 “제주4.3 무장봉기이다”라고 한 것이다. 폭도들은 ①대한민국 건국 5.10선거를 반대 ②적화통일과 ③반미투쟁과 ④남로당을 수호하기 위해 폭동을 일으켰다. 그리고 48년 11월 3일 폭도들이 9연대 장병 21명을 기습 공격하여 4.3폭동이 악화된 것을 싹 빼버리고, 국군이 폭도들을 죽인 것만 부각시키는 허위보고서를 작성하였다.
이처럼 진상조사보고서를 허위로 쓴 이유는, 제주4.3폭동에 가담한 사형수․무기수 606명과 2,530명의 법원에서 선고한 폭도들을 제주4.3 희생자로 만들기 위함이다. 그렇게 함으로 해서 폭동을 진압한 경찰과 국군을 13,564명을 학살한 자로 만들어 대한민국에 역적을 만들어 놓았다. 국군 186명, 경찰 153명, 5.10 선거관리위원 및 우익 1,425명이 죽었다. 국군과 경찰이 폭동을 진압하지 않았다면 제주도는 공산화 되었고, 제주4.3 좌익무장폭동은 6.25 한국전쟁 동기이기도 하였다.
제주시 봉개동(제주인민유격대 훈련장소) 12만평에 993억 원을 들여 평화공원을 조성하여 2008년 4월 3일 개관을 하였는데 사료관에는 국군과 이승만 대통령을 학살자로 묘사하였고, 국군이 폭도들을 죽인 것을 부각시켜 전시하였고, 군사재판에서 재판한 것도 불법이라고 악선전을 하고 있다. 그리고 폭도사령관 김달삼을 영웅같이 사진을 전시하였고, 좌파에서 만든 영상물인 ‘레드헌트’를 계속 보여주고 있다. 이 평화공원은 제주도 관광객과 수학여행 온 학생들에게 국군과 경찰을 증오와 타도의 대상이 되게 하고 반미․ 친북 좌파양성의 학습장이 되어 대한민국을 연방제 적화통일 학습장소로 만들고 있다. 이대로 둔다면 대한민국 젊은이들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반미 친북 좌파가 되어 머지않아 대한민국은 연방제 적화통일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보통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은 2회에 걸쳐 제주도민에게 사과를 하면서 “제주 민중항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는데 이것을 사료관에서는 영상물로 부각시켜 계속 방영하고 있다.
특히 제주대학에서 교양과목으로 ‘제주4.3의 이해’라는 정규과목을 개설하고 2학점을 배정하여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의 허위내용을 진실인양 배우고 있어 보통 문제가 아니다.
2008년 5월 1일
현대사포럼(www.625war.kr) 대표 이 선 교 (011-320-2019)
출처: 현대사포럼 http://www.625war.kr/
출처 : http://blog.naver.com/ksijlove04/939307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