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비상사태 선언
트루먼 대통령은 제1, 2차 세계대전 때도 하지 않았던 조치를 취했다.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것이다.
대통령은 물가와 임금의 통제, 그리고 500억 달러 규모의 새로운 국방예산 편성을 선언했다.
이 예산규모는 연초에 책정된 예산의 4배였다.
미국이 한국전을 계기로
거대한 경제력을 본격적으로 가동하여 대소 전략 수행에 나섰다는 증거였다.
냉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공산주의자 색출에 여념이 없던 매카시 상원의원은
트루먼 대통령의 두 팔 격인 애치슨 국무장관과 마셜 국방장관의 사임을 요구했다.
고민하는 애치슨 장관에게
고민하는 애치슨 장관에게
1950년 12월4일 조지 케넌(전 주소련 미국대사. 대소 봉쇄론 주창자로 유명)이
메모를 전달한다.
애치슨은 이 메모를 읽고
머리가 맑아지고 용기가 우러나오더라면서 참모들에게 읽어 주고는
자신의 회고록에 그 전문을 소개했다.
<친애하는 장관님, 어제 저녁의 논의를 계속하는 입장에서 한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사적인 일에서도 그렇지만 국제문제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 일어난 일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이 그 일을 어떻게 감당해 내느냐 하는 것입니다.
같은 논리로, 우리 조국의 운명에 지금 큰 실수와 재앙이 일어난 사실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데, 문제는 미국인들이 이 사태에 대해서 어떤 자세로 임하느냐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 사태를 솔직하고 당당한 각오로써 받아들이고 그로부터 교훈을 얻고 배전의 노력과 결의로써 전화위복의 계기를 만든다면, 즉 진주만의 경우처럼 필요하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자세로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자신감이나 우방이나 소련과의 협상력까지도 잃지 않게 될 것입니다.
만약 우리 국민들과 우리 우방들에 대해서 우리가 직면한 불행한 사태를 숨기거나 고함을 지르고 신경질을 내는 방식으로 대응한다면 이 위기는 우리의 자신감뿐 아니라 미국의 세계적 위상을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해치게 될 것입니다. 조지 케넌>
맥아더는 중공군의 대공세에 대한 저항선 구축을 포기하고 38선으로의 전면 철수를 명령했다. 유엔군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철수 길에 오른 것이다.
중공군의 참전 직전까지 자신만만하던 맥아더는 완전히 탈진한 사람이 된 듯이 행동했다.
그는 워싱턴에 대해서
요구사항을 들어 주지 않으면 한국을 포기하고 철수할 수밖에 없다는 식의 위협을 가했다.
그러나 워싱턴의 국무부 국방부 수뇌부는 그런 맥아더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
그러나 워싱턴의 국무부 국방부 수뇌부는 그런 맥아더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과 워커 8군 사령관을 즉각 교체해야 한다는 생각은 모두 하고 있었으나 그 말을 꺼내는 이가 없었다.
맥아더 해임 이란 생각은 그들 모두에게 상상의 범위를 벗어나 있었던 것이다.
한국 포기를 권유한 영국, 트루먼의 단호한 거절
애치슨은 훗날
“결정적 시기에 나와 마셜, 그리고 브래들리 합참의장이 대통령을 망쳤다”
고 술회했다.
대통령에게 단호한 정책을 건의하지 못한 책임을 이른 말이었다.
맥아더는 합참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그래도 어느 누구도 맥아더를 해임해야 한다는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12월3일 고위대책회의에서 참다못한 육군 참모차장 '매튜 릿지웨이'가 한마디 했다.
“회의만 할 게 아니고 즉각적인 조치가 취해져야 합니다. 전장에 있는 군인들과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책임을 지고 행동해야 합니다.”
이 회의 역시 아무 결론 없이 끝났다.
릿지웨이는 공군참모총장 반덴버그 장군에게 물었다.
“왜 합참은 맥아더 장군에게 이렇게 저렇게 하라는 지시를 내리지 않고 회의만 하는 겁니까?”
반덴버그 장군은
“그렇게 해도 맥아더는 명령을 듣지 않을 것이다”
고 말했다. 릿지웨이가 화가 나서
“명령에 불복종하는 장군은 누구든지 해임할 수 있지 않습니까”
라고 했더니 반덴버그 장군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나가버렸다고 한다.
중공군의 총공세와 유엔군의 총퇴각이 진행되던 1950년 12월의 쌍방 병력수는
유엔군이 약 54만 명, 중공군이 약 45만 명이었다.
무기의 양적 질적 비교에선 유엔군이 당연히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당시 중공군은 공군과 해군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중공군은 총을 갖지 않은 병사들조차 많았다.
그럼에도 유엔군은 총퇴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맥아더가 전쟁의지를 상실한 것을 뜻했다.
맥아더는
“한국을 포기할 수 있다”
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트루먼 대통령은 그런 맥아더를 어떻게 하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트루먼은 여기에 덧붙여 영국 애틀리 총리와 신경전을 벌여야 했다.
게다가 트루먼은 여기에 덧붙여 영국 애틀리 총리와 신경전을 벌여야 했다.
트루먼은 11월30일 기자회견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다가
“원폭 사용도 검토하겠다”
는 실언을 했다.
미군이 한국에 묶여 있는 사이에
소련이 유럽을 공격할 수 있다고 걱정한 애틀리 총리가 워싱턴으로 날아가 트루먼과 담판했다.
영국은 1개 여단을 한국에 보내놓고 있었으므로 무시할 수 없는 발언권이 있었다.
애틀리는 트루먼에게 한국을 포기하는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중공군과 휴전할 것을 권유했다.
“군사적 상황이 워낙 불리하니 한국에서 철군하고, 대만을 포기하고 중국을 유엔에 가입시키는 대가로 휴전을 얻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시아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회의에 배석했던 애치슨 국무장관은
“여론보다는 미국의 안보가 더 중요하다”
고 했고, 마셜 국방장관도
“우리의 전투력에 대한 아시아 사람들의 신뢰가 좋은 평가에 이르는 길이다”
라고 반박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경제난이 심각했던 당시 영국은 중국시장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과 중국을 화해시키고 싶어 했으며
영국 정부는 그 과정에서 한국이 희생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것이다.
이런 애틀리의 압박에 대해서 트루먼 대통령이 단호하게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한국에 머물 것이고 싸울 것입니다. 다른 나라들이 도와주면 좋습니다. 도와주지 않아도 우리는 어떻든 싸울 것입니다. 우리가 한국을 버리면 한국인들은 모두 살해될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 편에서 용감하게 싸웠습니다. 우리는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간다고 해서 친구를 버리지 않습니다.”
맥아더는 자신의 야심을 앞세우면서 싸웠지만
트루먼은 한국인에 대한 인도주의와 동정심을 가지고 한국전쟁에 임했다고 판단되는 대목이다.
맥아더의 이기적인 천재성과
트루먼의 우직하고 순수한 인간성이 위기를 맞아 극명하게 대조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