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경제풍월 2009년 9월호에 게제된 것입니다.
제주도가 해군기지 문제로 시끄럽다. 정부가 서귀포시 강정마을에 2014년까지 민·군 복합형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사업을 추진 중인 가운데, 이 사업을 수용한 김태환 제주지사에 대한 주민소환투표가 실시될 예정이다. 이 투표에 3분지1 이상의 유권자가 참여하여 과반수 찬성으로 가결하면 도지사의 직위는 해제된다.
대형 국책사업이 추진되면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찬성도 하고 반대도 하기 마련이지만, 제주도 해군기지의 경우 꼭 짚어야 할 대목들이 있다. 첫째, 국가안보의 백년대계를 위해 건설되는 군사기지가 주민소환투표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곤혹스럽다. 한국은 경제의 대부분을 무역에 의존하는 무역국이자 해운국이다. 한국은 세계4위의 석유수입국이자 하루 220만 배럴을 소비하는 7위의 석유 소비국인데, 한국의 유조선들은 말썽많은 걸프만을 통과하여 해적이 출몰하는 인도양과 말라카 해협을 거쳐 석유를 실어 나른다. 이 유조선들의 행렬이 멎으면 한국경제의 숨결도 멎는다. 특히, 한반도에서 대만에 이르는 600해리의 남방해상로는 대부분의 수출상품과 석유를 실어 나르는 생명선이다. 게다가 한반도 주변에는 영유권 분쟁이 남아있고, 해저 천연자원을 둘러싼 분쟁의 소지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토의 최남단에 해군 기동부대를 배비하는 것은 남방 해상로 보호를 위해 긴요할 뿐 아니라, 해적, 테러, 해상분쟁 등 여러 가지 돌발상황에 신속히 대응함으로써 해양주권을 지켜내기 위해서도 매우 시급하다. 국가안보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국가가 전략적 판단에 따라 결정할 문제이지 주민소환투표를 통해 찬반을 다툴 문제는 아닌듯 싶다.
셋째, 그럼에도 더욱 중요한 것은 이념적ㆍ정치적 목적을 가진 제3의 세력들이 가세하여 주민갈등을 부추기고 정쟁화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곤란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입으로는 환경보호나 주민보호를 앞세우지만 사실은 미군철수, 보안법 철폐,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 등을 관철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활동해온 NGO들이 제주도를 ‘남남갈등의 전장’으로 만들려고 한다면, 이를 결코 방치할 수 없는 일이다. 일부 NGO들의 “해군기지가 건설되면 제주도가 공격목표가 된다”라는 주장은 지역이기주의를 부추기는 것이어서 더욱 심각하다. 제주도 해군기지로 남방 해상로가 보호되면 그로 인한 경제적 혜택은 제주도민을 포함한 모든 국민에게 돌아간다.
어쨌든 해군기지에 찬성하는 사림들이 개인적 차원에서 의견을 개진하는데 반해 반대하는 쪽은 제3세력들의 개입에 힘입어 조직과 체계를 갖추고 적극적으로 반대논리를 확산시킬 수 있다면, 또는 이로 인해 환경영향 설명회나 토지‧어업보상 설명회조차 제대로 열리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이를 두고 공정한 논의라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상의 과정에서 보듯 천주교 제주교구의 반대운동에는 다소의 기복과 굴절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며, 현재에는 ‘온건 반대’ 입장을 견지하면서 과격한 반대활동을 자제시키는 건설적인 역할도 함께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평신도들의 입장에서 보면 천주교 사제들이 해군기지 반대운동에 깊숙이 개입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며, 세칭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사제들이 벌인 극렬한 반미운동을 기억하는 교우들은 또 한번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이다.
이에 더하여, 반대운동에 참여한 사제들은 성제(聖祭)를 주관하는 성직자의 직분으로 국가안보 사업에 반대하는 것이 올바른가 하는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평화의 섬으로 지정된 곳에 군사시설을 지을 수 없다”는 자신들의 주장에 문제가 없는지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의사가 질병을 극복하기 위해 질병을 연구하듯 국가는 전쟁을 막기 위해 전쟁에 대비한다. 군대는 사람을 죽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행위를 예방하기 위해 존재한다. 미 태평양사령부와 7함대 사령부 때문에 하와이의 평화가 깨진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제주도 해군기지도 제주도를 포함한 대한민국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건설된다.
천주교 제주교구에게도 당연이 되짚어 봐야 할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정부가 국가생존 차원에서 필요한 곳에 군사기지를 건설하는 문제에 반대하고 나선 천주교 지도자들의 모습을 대다수 가톨릭 교우들이 어떻게 바라봤을 것인가. 적지 않은 국민이 “또 천주교인가”라고 놀라지 않았을까. 대규모 국책사업이 추진되면 지역개발 규모, 보상문제 등을 놓고 ‘이익 중심’의 갈등이 야기되는 것은 당연한 과정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협상 또한 정당한 과정이다. 하지만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제3세력의 개입과 함께 대주민 이데올르기 학습이 실시되어 결국 ‘가치와 이념’을 둘러싼 갈등으로 변질되는 것을 종종 보아왔다. 이번에도 천주교 사제들이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이러한 망국적인 현상을 부추기는데 기여한 바가 없었는가. 주민소환투표의 결과를 떠나 한번쯤 고민해봐야 할 대목이 아닐까 싶다.
김태우 미카엘
